'제2 건국'과 '제2 혁명'은 교육혁명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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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건국'과 '제2 혁명'은 교육혁명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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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건국과 혁명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청빈과 헌신의 리더십을 되찾고 이를 국가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 (좌)개인집 돌담 밑에 처박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동상. (우)강제철거하여 밧줄에 묶인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 영웅 박정희 대통령 동상.
위 사진들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과 대한민국 산업화 근대화 대통령 동상들을 좌파들이 고의로 파괴하여 방치되어 있는 자료사진들입니다. 동상철거 주인공 : 김용삼(50.경기 군포시 산본동) ⓒ뉴스타운

최근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조국 근대화 산업화 영웅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그야말로 외우내환으로 점철되고 있다.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가 21세기의 발칸반도가 되고 있고, 북한 핵개발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위기의 중심에는 민주화 이후 팽배한 극심한 국론분열과 국가정체성이 자리잡고 있다.

건국 67년을 맞이한 한국의 역사는 초기의 건국기(1940-50년대), 중기의 근대화기(1960-80년대), 후기의 민주화기(1987년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반도는 곧 동서냉전의 변경이 되었다. 스탈린과 모택동의 승리 속에 한반도의 운명은 하나의 시험대가 되었다. 해방 정국에서 북한은 소련군의 점령정책으로 곧 평정되었으나 남한은 혼란과 분열이 가중되어 건국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6.25는 헐벗은 탈식민지 국가에게 극한의 시험이었다. 3년에 걸친 전쟁은 초기의 북한우위, 남한우위로의 반전을 거쳐 중공군이 개입된 6개월후부터 기나긴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6.25는 참화였으나 전후세계에는 오히려 거대한 기회였다. 특히, 패전국 일본과 독일에게 6.25가 야기한 코리아붐은 전후복구의 기회였던 것이다. 민족해방을 내걸었던 김일성의 모험은 의도와 무관하게 일본을 도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6.25를 통해 자유세계의 일원이 된 대한민국은 휴전을 앞두고 한미동맹이라는 값진 전리품(?)을 얻게 된다. 신생 독립국이 초강국 미국의 우방국이 되었으며, 유라시아의 붉은 바람을 막는 보루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기적과 성공의 나라로 자리 매김한 것은 1961년 군사혁명(5.16)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가난하고 부패가 만연한 조국 현실에서 조국근대화와 산업화의 기치속에 단행된 군사혁명은 비전과 실천, 목표와 구현에서 세계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박정희 정부는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위업을 위해 미증유의 도전을 하게 되는데 바로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전 참전이었다. 군사혁명으로 출범한 신정부에 비협조적이었던 미국의 대한정책으로 한계에 부딪히자 독일을 출발으로 산업화에 필요한 민족자본 형성을 위한 노력은 마침내 두개의 신의 수로 귀착된 것이었다. 미국의 협조 속에 시작된 한일국교정상화는 국내여론의 비판속에 미래제시적 지도력의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또한 월남전 참전은 전쟁(6.25)의 참화 속에 무너졌던 신생국의 꿈을 복원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근대화가 위대한 것은 남북대치란 높은 군사비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한 점이다. 또한 이속에 초기(1960년대)의 경공업중심정책과 중기(1970년대)의 중화학공업정책, 그리고 후기(1980년대)의 무역자유화란 적절한 전략과 정변(10.26)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일관성이었다. 한국의 근대화는 불과 30년만에 이루어진 집약성으로 영국(300년), 미국(150년), 일본(60년)과 비견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성공은 곧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정치적 민주화와 탈군사화의 요구는 마침내 1987년 극적인 민주화로 이어졌다. 경제성장의 성공신화가 마침내 정치민주화로 나타난 것이고 직후 올림픽(88), 동구권붕괴(탈냉전), 걸프전과 같은 대내외적 변화에 편승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방향과 이념, 제도와 지도력, 과거와 미래 등에서 방황과 혼선이 내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 즉, 자유와 규율(질서), 권리와 책임, 교양과 지식 등 상이한 요소의 결합임을 무시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한국병"이란 국가 지도력의 실종속에 방황과 혼선이 중복되었다. 그 결과 불과 민주화 10년만에 IMF를 당하고 정권교체로 진행되었다. 정권교체로 집권한 종북(친북)세력은 이후 10년의 정권기간 일련의 개혁(왜곡)에 돌입하게 되었다. 즉 전교조 등 반체제 단체를 공식화시키고 과거사진상조사의 미명하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식이었다. 이후 보수적 색채의 정당으로 권력교체가 이루어 졌으나 혼란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최근 김동길 박사는 한국의 민주화를 "민주화의 미명아래 국가는 흔들리고 질서는 사라지고 경제는 도약을 멈추었다"고 평가 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치명적인 것은 경제적 효율성이 결여된 '검은 민주화(Black Democracy)'와 반체제적이고 종(친)북적인 '붉은 민주화(Red Democracy )'가 겹치고 있는 점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여당은 애국심과 헌신을 찾을 수 없고 진보를 자처하는 야권은 반역과 여적을 공공연하게 행하고 있다. 내우외환의 국가 위기 속에 이를 극복할 진정한 새로운 정치는 실패와 왜곡의 민주화를 거부하고 건국과 근대화와 산업화의 위대한 성공신화를 재현하려는 제2 건국과 제2 혁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질서와 자유, 책임과 권리, 교양(독서)과 지성을 균형적으로 결합시킨 시민교육혁명이 있는 것이다.

시민교육혁명은 오늘날 싱가폴을 만든 리콴유 총리의 비전과 일치 한다. 그는 싱가폴을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야만과 가난이 지배하는 동남아 도시 국가는 돈과 권력이 아닌 품위, 교양, 청렴이 지배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일련의 질서 국가로 나아간 것이다. 리콴유는 스스로 공포도시(엄격한 법질서가 지배하는 도시)의 지도자로서 청렴과 솔선수범에 앞장서 "부패의 대륙" 아시아의 이단자로 우뚝선 것이다. 일본 경영의 신 마쓰시다의 언급처럼 "실패의 중복은 보다 본질적 변화를 요구"하는 법이다. 제2 건국과 혁명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청빈과 헌신의 리더십을 되찾고 이를 국가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바람직한 선택은 바로 건국과 근대화와 산업화의 르네상스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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