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탄압 속에서 발굴해낸 5.18 진실, 승리할 수 있게 모두 도와 달라 (화보용)
모진 탄압 속에서 발굴해낸 5.18 진실, 승리할 수 있게 모두 도와 달라 (화보용)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6.01.31 03: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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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가정보원은 무엇을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 이시대 진정한 애국신문 뉴스타운 호외지 ⓒ뉴스타운

김대중의 아바타라 불리는 임동원이 국정원장을 하던 시절, 임동원은 직권을 남용하여 국정원의 제2차장과 8국장, 그리고 수명의 과장 및 직원들을 총 동원하여 저자에 대해 불법 도청을 실시했고, 특히 임동원은 저자를 특별관리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제2차장과 8국장에게 원고를 철저히 감시하고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누차 내렸다. 당시 국정원의 도청 행위는 원고 말고도 1,800여명의 인물들에 대해 실시하였다. 국정원의 제2차장 김은성은 대통령이 원고를 가장 미워했다고 검찰에서 밝혔다. 제2차장 김은성은 원고에 대해 제대로 감시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임기간 중 피고 임동원으로부터 고문에 가까운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국정원장 임동원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원고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라 했고, "예 예 하지만 말고 실제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대답해보라"며 닦달 하였다. 김은성 차장은 국방부와 협력하여 원고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고, 월간지에 원고의 글이 나가지 못하거나 변형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진술했다. 이로 인해 저자의 프리랜서 생활은 순간적으로 차단되었다. 2007년 저자는 국가기관이 한 자연인에 대해 행한 이러한 탄압이 징벌돼야 한다는 뜻에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를 배상해 달라는 민사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은 국정원이 행한 모든 탄압행위는 인정하면서도 겨우 2,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소송가액의 4%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2002년 8월16일, 저자는 동아일보에 '좌익세력의 최후발악이 시작된다' 는 제목의 광고를 냈고, 거기에 김대중을 '김정일에 약점 잡힌 간첩'으로 묘사했다. 3,500자의 신문 광고문에는 "5.18은 소수의 좌익과 북한 특수부대가 순수한 시민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다" 라는 35개 문자로 구성된 문장이 있었다.  

전라남도 광주시에 5.18 단체들이 검은 유니폼과 군화를 착용한 11명의 어깨들을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왔다. 이들은 서울 충무로에 소재한 자자의 사무실에 가서 저자의 사무실 기기를 파괴하고 소란을 피우면서 이웃 주민들에 공포감을 주었고, 경찰은 이들 앞에 주눅이 들어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어서 저자의 아파트로 몰려와 아파트 대문을 부수고 승용차를 파괴하고 주민들에 소란을 피웠다. 식구들은 피난을 갔고, 경찰은 바라 보기만 했다. 이어서 광주검사 최성필이 안양에 경찰들을 보냈고, 이들은 처음부터 조폭과 같이 험악한 얼굴로 폭력을 가했다. 그들의 나이는 저자보다 30살 정도 낮아 한국식 사고방식으로는 그들은 나에게 아버지에 준하는 정중함을 보였어야 옳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들 같았다. 그들은 나의 두 팔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뒤로 채우고, 서울근교인 안양에서 전라남도 광주에까지 가는 6시간 동안 온갖 폭력을 쉬지 않고 가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수갑을 등 뒤로 채우면 단 10분을 견디기 어려워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들어 보지도 못한 험하고 살벌한 욕설을 쉬지 않고 들었으며, 뺨, 이마, 턱, 머리 등을 번갈아 가면서 맞았다. 그것은 생지옥이었다. 거룩한 민주화운동의 성지라는 광주가, 그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고 선전된 광주사람들이, 문명을 등지고 사는 맹수들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서 경험한 아픔은 고통을 넘어 생지옥이었다. 저자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5.18에 북한특수군이 관여했다는 1980년 대법원 판결을 5.18에 대한 사관으로 확신하고 이것을 35개의 글자로 표현하였기 때문이었다.  

1987년 대법원은 5.18에 대한 판결문에서 "5.18 광주시위대는 전두환 등 헌법을 파괴하는 군인들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성스러운 존재"라고 표현 했는데, 저자가 그 성스러운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5.18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광주검찰청에 도착해서도 검사는 2시간 동안 수갑을 뒤로 채운 채 조사를 받게 했고, 때릴 듯이 덤벼들면서 고함을 질렀다. 이웃에 있는 여성 검사는 손가락으로 저자의 턱을 들어 올리면서 이 자가 무슨 육사를 나왔고 무슨 미해군대학원 박사 랑가, 사기를 친 것 같으니 조사 좀 해보라는 식으로 한동안 조롱하였다.  

이어서 사전구속연장을 발할 때까지 두 사람의 판사가 있었는데 그들은 탁자를 주먹으로 때리고 저자를 노려 보면서 고성을 질렀다. 그리고 변호를 맡은 광주 소재의 변호사에게 "변호인은 광주시민들로부터 무슨 욕을 먹으려고 서울사람 변호를 맡았소" 하면서 변호인이 변호를 하는 도중 "시끄럽소, 닥치시오" 하고 고성을 질렀다. 그리고 저자는 엄동설한의 101일 동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목재 바닥의 틈새들이 벌어진 차디 찬 교도소 건물에서 광주사람들 12명과 함께 한 방에 수감되면서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 한국의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바에 따르면 저자는 서울 소재의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서울 소재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화의 화신으로 선전돼 있는 김대중 시대에는 광주가 대한민국 위에 군림했고, 전라도 주민이 완장 찬 점령군 장교들이었다. 

김대중 시대에 대한민국 법은 필요할 때만 이용되었고, 김대중 세력이 곧 법이었다. 하나의 예만 들더라도 이것이 과장이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부산 소재의 동의대학교가 있었다. 극단적 좌파학생들이 불법시위를 벌였고, 이를 진압하려고 경찰이 출동했다. 극단주의자들은 7명의 경찰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그어 던져서 7명 모두가 불에 타서 즉사 했다. 당시 법원은 주동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 했지만 2002년 김대중 정부는 그 주동자에게 6억원의 보상을 해주었고, 민주화 열사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노태우 정부는 군사정권이고 그 때의 경찰은 군사정권이 부리는 개이기 때문에, 그 경찰을 불태워 죽인 행위는 가장 위대한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었다. 국가가 공산치하로 돌변했다는 공포감이 사회 일각에 엄습했다.  

저자는 이 시기부터 18만 쪽에 달하는 5.18 관련사건 수사기록과 공판기록 모두를 정리하여 2008년, 1,720쪽에 이르는 4권의 책에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책명은 "수사기록으로 쓴 12.12와 5.18" 이었다. 5.18 단체들은 또 이 책에 대해 고발을 했다. 5.18 사관에 대해 1997년 민주화 시대의 대법원 판결과 다른 표현을 했다는 것이 5.18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시대인 이때에는 2002년처럼 광주검사가 저자를 광주로 끌고 가지 못했다. 서울근교의 안양법원에서 3년 동안 제1심 재판을 받았다. 처음에는 단독판사로 지정되어 판사 1명이 재판을 열었지만 2명의 단독 판사가 지극히 정치적인 5.18 사건을 맡기가 부담스럽다며 시간을 끌다 인사 이동이 되었고, 나중에는 3명으로 판사로 구성된 합의부가 새로 구성되어 피를 말리는 방어 끝에 2011년 1월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제2심을 거쳐 2012년 12월 27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선고를 받았다. 5.18을 건드린 저자가 이번에는 2002년의 판결과는 달리 무죄를 받았다는 이 사실은 인터넷 인구들에게 커다란 뉴스였다. 2개의 방송국에서 저자를 초청했고, 저자는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4회에 걸쳐 방송에 출연해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와서 내란폭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수많은 책들을 안고 가서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다. 남녀 진행자들은 물론 이 방송들을 듣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저자의 설명에 동감했다. 여론의 뜨거운 호응을 받자 두 개의 방송국들이 서로 경쟁하듯 5.18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많은 논객들을 불러 대담프로를 진행했다. 2013년 5월 15일에는 실제로 5.18 광주작전에 직접 참전했던 탈북자가 소개되었다. 5.18의 진실이 밝혀지고, 왜곡된 역사가 바로 잡힐 수 있는 매우 희망적인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위기를 느낀 광주사람들이 광주출신 정치인들을 동원하여 박근혜 정권을 압박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나섰다. 2013년 6월 10일. 정홍원은 국회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할 수 없는 발언을 했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반하는 표현은 역사왜곡이고, 역사왜곡은 반사회적 행위로, 이에 가담한 일베회원들의 글은 삭제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북한특수군 개입을 증언시킨 방송들은 방통위를 통해 제재할 것이며 역사왜곡자들은 검찰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이어서 대통령 직속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권력을 남용했다. 5.18을 주제로 하여 방송을 진행한 두 방송국 관계자들을 중징계하고, 앞으로는 5.18 방송을 일체 중지할 것과 이제까지의 모든 5.18 방송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선포하고 방송진행자가 사과할 것이며, 출연자들을 영구 출연중지 시키라는 독재적 처분을 강행하였고, 유튜브와 포털 사이트에 게시된 북한군 관련의 글들과 동영상을 모두 차단하고 삭제처리 했다. 이는 저자의 연구결과를 일체 확신하지 말라는 탄압이었다. 이러한 삭제 처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저자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몰래 처분했다.  

저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반민주적 검열 및 밀실 처분에 대해 행정법원과 민사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두 개의 재판부 모두가 저자의 게시물이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 판결과 다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어 인터넷과 방송에 표현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두 개 사건은 현재 제2심에 계류중이다. 5.18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저자가 이끌고 있는 애국단체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의 영상분석팀 및 전략연구팀은 2015년 5월 5일부터 현재까지 1980년 광주시민군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들에서 308명의 얼굴이 평양 김씨 왕조의 핵심 인물들이었고, 그 중 50여명은 탈북하여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기인들로 성장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사실과 영상분석 과정을 문서화하여 제출하였지만, 양개 법원은 판결문에서 영상분석 결과물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상분석물들은 최소한의 기본 가치를 갖는다.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왔었다는 데 대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법원이 이 영상분석자료를 무시하려면 이러한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화와 양개 법원이 1997년의 대법원 판결결과만 사실이고, 그 외의 가능성을 모두 무조건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기초 상식논리에도 어긋나는 독재적 전횡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신문 뉴스타운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직 이 하나의 신문만이 5.18에 대해 세로 밝혀지는 모든 사실들을 기사화 했고, 2015년 7-9월에는 4면 짜리 호외신문 1,2,3호를 각 10만부씩 발간하여 전국의 전열적인 회원들에 의해 뿌려 졌고, 이로부터 5.18 진실에 대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추측하건데 지금은 60% 이상의 국민들이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특수군 수백 명이 와서 저지른 국가전복 공작이었고, 이를 총괄 지휘한 김대중은 간첩이라는 인식들이 널리 전파되고 있는 중이다. 이와 아울러 대통령은 무얼 하고 국가정보원은 무엇을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도 대통령과 국정원은 이 새로운 진실에 함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는 동안 광주의 5.18 단체들은 허위사실들을 내세워 광주법원에 뉴스타운 호외지 발간 및 배포를 중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고, 광주법원은 소장을 제출한지 3일만에 소송의 상대방에게 아무런 통지도 하지 않고 법정을 열지도 않은 채, 광주의 5.18 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100% 그대로 수용하는 이른바 전대미문의 도둑재판을 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탈북하여 남한의 모든 방송국에 출연함으로써 인기인들이 되고, 명망가들이 되고, 국회에까지 진출하고, 정부의 정책기관에 주요직책으로 침투한 50명의 위장탈북자들의 명단과 그들에 대한 영상분석 내용들을 2015년 11월 7일부터 12월까지 인터넷에 널리 공개했다. 이들의 얼굴들이 1980년 광주에서 찍힌 사진들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개인에 대해서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5.18 광주사건은 북한이 주도하지 않았다고 반박을 했다. 거의 모든 일반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내용 "북한에서는 5.18을 김일성과 김대중이 야합해서 일으킨 폭동이다" 와는 정반대 주장들을 하였다. 이들 50명의 이름과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이들은 저자를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미국대사가 당했던 것처럼 커터 칼로 자르겠다는 협박도 했고, 저자를 강제로 외진 곳에 데려다 감금하겠다는 말도 했고, 매우 심한 욕설들도 했고, 저자가 미쳤다는 말도 했다. 신변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끄는 전략분석팀은 이들을 위장간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 10월 29일, 국정원에 '간첩신고'라는 명분으로 신고했다. 그런데 국정원의 태도가 참으로 수상했다. 간첩신고를 하러 간 저자에게 "봉투를 창구에 그냥 맡기고 가라"는 것이었다. 여기로부터 저자는 국정원으로부터 적대적인 대접을 받았다. 그 후 국정원은 3개월이 넘는 지금까지 신고자인 저자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 김대중이 좌익들로 채워놓은 대북정보 요원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양심가들에게 호소 한다. 앞에서 약술하였듯이 저자는 오직 역사의 진실을 밝혀 왜곡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잡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인류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진실을 밝혀 징벌해야 한다는 오직 한 가지 마음으로 개인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지난 13년 동안 걸으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저자는 무엇이 나에 이로우냐에 따라 세상을 살지 않고 무엇이 정의냐에 따라 세상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익을 추구했다면 아름답고 여유롭게 살아야 할 61세로부터의 인생 황혼기를 13년 동안이나 이렇게 험한 가시밭길에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70세를 훨씬 넘긴 지금에야 저자는 역사의 진실, 악의 진실을 밝히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제부터 저자가 한국 국민과 세계인들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 발굴된 진실이 승리로 기록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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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2016-02-01 16: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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