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와 5.18 기념재단은 아래 사진 해명하라
조갑제와 5.18 기념재단은 아래 사진 해명하라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8.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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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제62광수 리을설이 전남도청을 장악 통제하고 현장 총지휘

<조갑제 편> 

아래 사진은 5.18의 진수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아래 노숙자담요님이 정리한 사진들은 5월 22일 또는 5월 23일에 찍힌 사진으로 보인다. 이는 무슨 뜻인가? 5월 23일 조갑제가 광주에 갔다면, 북한특수군이 리을설(제62광수)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지휘되는 모습을 도청 앞에 구름처럼 몰려든 광주인들과 함께 구경할 수 있었거나, 광주로 진입할 때 신분을 긍정적으로 인정받았던 것처럼 북한특수군의 허락을 받아 도청안으로 쉽게 들어 갈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당시 모든 시체는 도청 안에 모집돼 있었다. 5월 22일까지 발생한 시체는 103구, 23일까지는 123구다. 27일까지 발생한 시체는 166구다. 조갑제는 그의 강연에서 27일까지 발생한 시체 105구를 확인 했는데 대부분의 머리가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고 했다. 도청에서 나머지 61구의 시체는 보지 못했다는 말로 이해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갑제가 23일 북한군의 허가를 받아 시청 안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시체는 모두 시청 안에 있었다. 23일까지 시체는 북한특수군이 집중 관리하고 있었기에 시체를 관찰하려면 북한특수군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5월 22일과 23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계엄군을 추방시키고 북한군이 장악했던 도청이다. 도청 앞에 운집한 시민들을 보라. 도청 말고는 볼거리가 어디에도 없었다. 5월 23일 그가 광주에 갔다면 가장 먼저 갔어야 할 곳이 광주사태의 앙꼬라 할 수 있는 도청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자의 자격 조차 없다.  

결론적으로 5월 23일 조갑제가 광주에 갔고, 그날 시체의 일부를 확인 했다면 그는 먼저 도청으로 들어갔을 것이고, 들어 갔다면 아래 사진에서 풍기는 살벌한 장면들과 공기를 느낄 수 있었어야 했다.

▲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특수군 인민군 상장 리을설 제62광수가 전남도청을 통제 장악하고 총지휘하는 현장 분석 자료 사진. ⓒ뉴스타운

<조갑제 강연 내용> 

"수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나는 5월 23일에 광주에 갔다. 가서 27일까지 105구의 시체를 확인했는데 대부분이 머리가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 광주사태가 비극으로 간 이유는 공수대의 과잉진압 때문이었다. 내가 광주시민이라 해도 총을 들어 계엄군을 쏘았을 것이다. 광주에는 수백명의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단 1명도 북한특수군을 보지 못했다. 죽은 사람 중에 북한군은 없다. 현제 신원미상이 5명뿐인데 그 5명은 북한특수군이 절대 아니다."  

"도대체 북한군 1개대개가 어떻게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느냐, 전 해안은 모래바닥이고, 북한군이 오면 반드시 발자국이 남는다. 아침이면 모든 부대가 출동하여 비자루로 쓴다. 당시의 전방과 해안은 완전 밀봉상태에 있었다. 단 1명도 들어 올 수 없었다. 울진 삼척에 들어온 무장간첩은 130명이다. 그 다음 큰 부대가 김신조 부대다. 그런데 600명이 흔적도 없이 들어 왔다? 누가 그걸 믿겠나, 이런 사람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불통의 인간들이다. 내 말에 동의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없으시네요."  

그러면 나는 왜 5월 24일 이후의 시간대를 고려하지 않는가?  

5.18 항쟁 자료집 제1권 75-92쪽에서 5.18 최상위급 유공자 허규정은 이렇게 증언했다.  

"21일 누군가가 도청을 탈환했다. 이걸 장악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닌가? 도청을 장악한 사람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도청으로 간 거다. 장악한 사람들은 위엄 있는 높은 관료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우리에게 '곧 계엄군이 들어올 것이니 학생들은 나가라'고 말했다. 종교계 지도자, 재야인사만 들어가고 학생들은 들어오지 말고 나가라 했다. 계엄군이 곧 들어온다 하니까 누구든 책임감 없이 나와 버렸다. 종교지도자들도 나갔고, 일반 시민들도 다 나갔다. 도망 나온 거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멀리 안 가고,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일부 시민들이 도청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렸다. 나도 다시 도청에 갔다. 갔더니 시국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높아 보이는 사람들은 안 보였다. 어른들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 젊은 사람들은 학생수습위원회, 어른 청년이 각각 위원회 만들어 가지고 서로 말이 다르고 통제가 안 되었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엉망이었다. 그런데 윤석루(19세)가 나이도 굉장히 어린데 기백이 있어서 기동타격대를 장악했다. 윤석루는 학생도 아니었다. 특별한 방법은 안 나오고 맨날 회의만 했다. 운동권 간부들은 모두 다 예비검속으로 미리 잡혀 가버렸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개념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23일의 이런 모습을 본 위엄 있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24일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허규정은 분명히 23일의 도청은 위엄 있는 사람들, 높은 관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도청을 체계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는데 24일부터는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북한특수군은 누군가가 시체에 관심을 가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후미진 곳으로 데려다가 사살 했다. 만일 조갑제가 23일에도 도청의 시체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고도 살아 남았다면 이는 북한특수군의 사전 양해를 얻었어야 했을 것이다. 여튼 조갑제가 23일에 광주에 갔다면 도청에 갔을 것이고, 도청에 갔다면 북한특수군의 존재를 확인했어야 했다. 일개 허규정(당시 30세)도 이를 즉시 파악했는데, 당시 35세의 기자 조갑제가 이를 보지 못했다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5.18 기념재단 편> 

5.18 기념재단은 '아시아저널'을 발행한다. 2014년 봄(제8호), p.4에는 아래의 글이 있다.  

"항쟁 기간 중 22~27일 닷새 동안은 시민들의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어 세계사에서 그 유래가 드문 자치공동체를 실현하기도 했습니다." 

위 사진 분석에 의하면 이 아시아저널 글 내용은 모두 허위다. 북한특수군의 업적(?)을 가로 채 자기들의 업적으로 하여 전라도를 민주화의 성지로 선전하고, 국민세금을 도둑질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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