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알고 있었다. 전남도청 북괴군 점령 사실을!
광주는 알고 있었다. 전남도청 북괴군 점령 사실을!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8.28 01: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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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들은 5.18 족들의 거짓말들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는 매우 귀한 사진들이다

아래 노숙자님이 제공한 사진들은 전남도청의 주인은 북한 사람들이고, 광주 사람들은 완전한 피지배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당시의 광주는 광주인들이 빼앗아 만든 해방구가 아니라 북한군이 점령한 북한 땅이 었으며 광주인들은 북한 주민들처럼 천대 받는 인민이었다.  

아래 사진들은 5월 22일과 23일 양일 사이에 찍힌 사진들이다. 북한특수군은 5월 24일 도청을 떠났다. 5월 21일 오후 5시 계엄군은 북한특수군의 사격망을 뚫고 구사일생으로 시외곽으로 달아났고, 그로부터 북한군 전투요원들은 광주교도소 수용자들을 해방시키라는 북의 지령을 무리하게 수행하다가 미리부터 참호를 파고 대기 했던 공수부대(3공수, 11공수)의 방어에 의해 22일 새벽까지 대부분의 전투력을 잃었다.  

광주작전 총 사령관 리을설(제62광수)은 400여명의 북한군 시체와 160여명 정도의 광주인 시체를 분류 해야만 했다. 북한군 시체에 최우선을 두어야 했기에 광주인들의 시체는 찬밥이었을 것이다. 북한군 시체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리을설은 일단 모든 시체를 전남도청 안으로 운반케 했고, 여기에서 가장 먼저 북한군 시체부터 따로 분류해 보관했을 것이다. 이 숫자는 600명 중 400여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 였다.  

더운 날씨라 시체는 금방 부패하고 썩은 물이 흘러내려 긴급성 포장 방법이 등장 돼야만 했다. 이렇게 고안된 것이 칠성판(두꺼운 나무 판) 위에 시체를 올려 놓고 이를 두꺼운 비닐로 둘둘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포장 방법은 도청에 있는 광주시민들의 시체에도 적용됐다. 리을설은 북한 시체의 포장 위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그 일련번호가 각각 누구를 의미 하는지 기록을 해 갔을 것이다. 이 세상에 시체 포장 430개에 일련번호를 부여한 시체는 여기 말고 없을 것이다. 리을설은 북한군 시체 430구를 분리해 멀리 청주의 산으로 뽑아내 잘 보존하였다.  

광주에는 1980년 당시의 현직 대남사업부 총책인 김중린까지 넘어 왔다. 제134광수다. 당시의 김중린 이라면 3성 장군인 리을설보다 더 상위직책이었다. 그 유명했던 김중린이 광주에 왔다면 대한민국에 기 침투해 있던 똘똘한 고정간첩들이 다 광주로 동원됐을 것이다. 이들의 능력으로는 이 세상에 못할 게 없다. 2014년 5월 13일 청주에서 발견된 430구의 시체 유골은 누가 무슨 내용으로 변명을 해도 100% 북한특수군의 시체다.  

도청 안에는 리을설이 지휘하는 모습이 들어 있고, 리을설과 제68광수(여성) 황순희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광주시민으로 자기 식구가 죽었는지 알고 싶어 도청을 찾아 온 사람들이 북한군 특히 제14광수인 김영철과 우의를 입고 총을 거꾸로 멘 북한군에 의해 통제 받으면서 초조하게 줄을 서 있다. 도청 밖에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를 보면 감히 도청 앞까지 오지 못하고 도청에서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콩나물 처럼 운집해 고개들을 내밀고 있다.  

전남도청을 5.18 유공자들이 점령했다는 그간의 선전 내용은 모두 아래 사진들로 인해 거짓말이었음이 백일하에 탄로 났다. 도청의 정문은 광주사람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살벌하게 통제되고 있었음이 아래 사진들에 잘 나타나 있다.  

5월 22일 이후부터의 북한군은 1) 북한군의 엄청난 시체를 어떻게 처리 하느냐 2) 어떻게 하면 광주의 모든 피해를 공수부대의 소행으로 돌리고, 전라도를 영원히 대한민국과 등지게 만들도록 정치공작을 하느냐, 3) 어떻게 하면 북한군의 정체를 감쪽 같이 숨기느냐, 이 세 가지 였을 것이다.  

황장엽은 3)항을 수행하기 위해 정탐꾼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을 데려가 사살 했고, 김중린은 유언비어를 만들어 전파하고, 으깨진 얼굴 사진, 임산부 배를 가르는 사진, 여성의 젖가슴을 오리는 사진 등을 만들어 배포케 했고, '광주 비디오'를 만들어 전 전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몰래몰래 보게 했고, '찢어진 깃폭'을 저작하여 그 내용들을 담아 소준섭과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케 하는 등의 정치공작을 했을 것이다.  

경악할 일은 북괴가 도청을 시체 분리장으로 활용 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도청 앞에 운집해 있는 인파가 말해 주듯 광주사람들 전체가 북한군의 도청 점령 사실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35년 동안 찰떡 같은 결속으로 타 지역 국민에게 절대비밀로 보존해 왔다는 사실이다. 광주는 아니 전라도는 북한특수군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5.18 이전 이미 목포 등 지역 도시 및 광주의 가정집, 민박집, 여관, 호텔은 600명의 북한특수군과 전국에서 몰려든 고정간첩들에 의해 1개월 이상에 걸쳐 점거돼 있었을 것이다. 지형이 낯설고 문화가 낯선 지역에 들어오자마자 게릴라 전쟁과 정치공작을 하는 군대는 이 세상에 없다. 유언비어는 수십일 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광주와 전라도는 북한특수군의 존재와 활동 내용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전체 국민을 감쪽 같이 속이면서 민주화의 화신으로 행세하며, 국민 세금을 사기 쳐, 억대의 일시금 + 수백만원 대의 연금 + 무경쟁의 취직 및 입학시험, 공짜 잔치로 호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들을 보고 5.18이 민주화운동이라 할 인간은 전 세계에서도 없을 것이다. 전라도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곡학아세의 존재들 말고는!!

▲ ⓒ뉴스타운
▲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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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호 2016-05-26 17:48:57
지만원 박사님 글대로 리을설이 광주폭도를 총괄지휘 했다는 증거는 사진속에 분명히 있습니다
사진속에 전남도청은 분명히 삼엄한 통제하에 출입을 하고 있었는데 광주인들이 주장하는 진짜 민주운동이였다면 어떻게 저렇게 삼엄한 통제를 하는 도청에 아무런 이유없이 아줌마(리을설)이 입구안에서 자연스럽게 있었겠느냐 말입니다.
그외 여러가지 의문점을 들어 광주폭동은 분명 북괴의 소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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