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가인 경우 전임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을 지칭할 때 이름만 거명한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앓을 것이지만, 굳이 이를 밝히는 것은 명백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제어인 영어의 경우 권위(authority)란 직위에 합당한 내적 존중(authenticity)을 개념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진 지도자(leader)와 그렇지 못한 자(boss, elite)로 구분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직선제(민주화)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으나, 대한민국의 적인 북한을 재임기간 내내 옹호하고 심지어 일명 퍼주기식 대북정책으로 일관했었다. 독일 통일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빌리 브란트 수상의 경우 서독의 기본정책인 (친)서방정책을 계승하여 동방정책 즉 동독과의 개방정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동방정책은 병든(비정상의) 사회주의 국가 동독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고, 이를 고치려는 명백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실지로 브란트 시절 동독에 대한 지원은 동독의 개혁과 개방을 위해 지원되었다. 예컨대 동독정부의 서독TV시청 허용, 노인고향방문 허용, 서베를린 방문을 위한 동독지역 육상통과 허용, 심지어 동독 대학생의 서독유학 까지 개방없는 지원은 허용되지 않았다.
반면 김대중 노무현 양정부의 일방적 대북지원은 북한에 어떠한 개혁과 개방을 전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북한은 동독과 달리 동족상잔(6.25 전쟁)과 끊임없는 무력도발, 인권유린, 대량학살무기의 주체이다. 그리고 이후 김대중은 노벨상을 수상하고 북한은 핵개발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미 1994년 미국의 정보기관 NIMA가 찾아낸 영변핵시설의 개가를 뒤엎고 대북지원을 감행한 직후 이기에 김대중과 노무현의 친북 종북외교는 영원한 반역과 매국의 상징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오랫동안 적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이후 남북대치 상황에서 가능한 정국불안정을 조기에 수습하고 개발(경제성장) 정책을 지속시켜 근대화를 완성한 공로는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민주화 이후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 한때 군사반란죄로 복역하기도 하였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 침체와 저성장의 늪에 빠져버린 한국에게 마지막 발전과 성장시대를 상징하는 영광의 인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박근혜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먼저 조국 근대화 산업화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서 자기 계발에 실패하고, 그 결과 불통과 문고리의 준동 나아가 국정난맥의 중심이 되고 있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굴곡진 한국 역사가 가정사에 투영되어 부모님의 죽음과 소외, 가족의 희생 등을 겪었을 인간 박근혜에게 연민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에 오르면 국가원수로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군통수권자로서 엄정한 자질과 업적에 의한 평가가 동반될 수 밖에 없다. 박근혜의 경우 6공화국의 역대 대통령 들처럼 잘못된 정치를 반복한다는 것에 더해 잘못된 정치 자체의 개념도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정치 자체를 회피하고 퇴행시키며 축소시키고 나아가 위장한다는 점에서 파국적이라 하겠다.
지난 세기 한국은 위기와 극복, 성공과 실패, 도전과 응전의 극적인 예였다. 세기초 일본식민지로 편입되어 민족국가의 천년 역사에 오점을 남겼으며, 태평양 전쟁, 해방과 전쟁을 겪기도 하였으며 월남전 참전과 조국 근대화 산업화의 기적도 이루어 냈었다. 또한 민주화에도 성공하여 세계의 성공사례였으나 불과 10년후 IMF를 겪기도 하였었다.
이제 한국은 대외적으로 북한 위협, 인접국과 선진국들의 견제, 국가적으로 장기침체와 이념과 계층간의 대립과 걀등, 지역적으로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저발전이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압축성장의 신화속에 교양, 문화, 지성이 사라진 정신적 공백이 문제의 관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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