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5.18 세력이 최후 발악하는 순간
지금은 5.18 세력이 최후 발악하는 순간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6.05.21 01:4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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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를 했으면 조용히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민주화 고장 사람들의 도리다

▲ ⓒ뉴스타운

인터넷을 보면 웬 찌라시 신문들이 그리도 많은가? 이러니까 1980년에도 전두환이 영혼 없는 구더기 존재 같은 찌라시 언론들을 정리한 것이다. 지금의 언론들을 보라. 폭력을 행하려고 광주에서부터 버스를 대절하고, 법원에까지 와서 폭력을 휘두른 광주족들의 야만행위들은 옹호하고, 집단 폭행을 당한 지만원을 집중 마녀 사냥하고 있다. 이런 존재들이 무슨 언론이요 기자들이란 말인가?

전두환 하면 찢어죽이자 하고, 전두환 동상을 5.18 묘지 입구에 묻어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이 짓밟고 가도록 하고 있는 광주족들이 지금은 전두환을 엄청나게 감싸고 옹호한다. 전두환도 보고 받지 못한 광수를 어이 없게도 지만원이 주장한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싶어서다. 필요하면 전두환은 자기들 편이고 불필요하면 전두환은 찢어 죽일 존재가 되는 인종이 광주족이다. 이랬다 저랬다 거짓에 능숙한 광주족들, 아마 나를 공격하는 찌라시 언론 기자들이 대부분 광주족일 것 같고, 5.18 유공자 떨거지들일 것 같다. 그런데 이를 어찌하나.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사용해온 1997년은 모래위의 성곽이었으니.  

1997년의 대법원 판결이 사실을 오인한 쓰레기로 인식되고 있다. 그 재판에 손을 댔던 판사 검사들이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광수들의 존재가 국민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래서 5.18 족들이 최후 발악을 하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생각해서 고소를 했으면 조용히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민주화 고장 사람들의 도리다. 그런데 이 무슨 짓들인가? 이를 옹호하는 찌라시 구더기 기자들은 또 어떤 존재들인가?

1997년 판결이 무슨 판결 이었는지 아래에 자세히 옮긴다

사실오인 #1) 세계최정상급 특수 맥가이버(MacGyver: 못할 것이 없는 기술과 능력의 소유자를 의미) 능력을 가진 대학생이 광주에 600명씩이나 있었다고 사실오인을 하였으며, 그들이 수행한 작전내용들이 세계 최정상급 특공대의 실적보다 더 높은 것들이었는데도 이를 광주대학생들이 5.17 계엄에 공분하여 즉흥적으로 일으킨 민주화운동이라고 사실오인하였다.  

증1의 92쪽에는 “시위대 300명이 전투서열이 높은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톨게이트를 5월 21일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몽둥이 화염병 등을 소지한 채 매복해 있다가 08시가 되자 통과하는 차량부대를 기습해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털어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갔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감히 대학생들이 정규사단을 기습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 같은 상식이다. 이 차량대열을 마주한 군납업체 사람들이 놀라서 신형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28대(증3의 376쪽)에 열쇠를 꽂아주었다. 증1의 93쪽에는 5월 21일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이 공장에 합류하여 도합 600명이 집결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증2의 53-64쪽에는 이 600명이 전라남도 17개 시-군에 꼭꼭 숨겨져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12시부터 불과 4시간 만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꼭꼭 숨은 38개 무기고를 부수고 5,403정의 총기를 털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 증2는 5월 21일, 각 시간대별로 털린 무기고 이름과 무기별 수량만 12개 쪽에 걸쳐 지루하게 나열돼 있었다. 500만야전군은 이 12개 쪽에 산만하게 나열만 되어 있는 시간대 별 기록을 통계처리 했다. 1) 무기고가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분산돼 있었다는 사실, 2)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38개 무기고가 털렸다는 사실이 비로소 정보로 나타난 것이다. 3) 북한 책인 증4의 35-37쪽에는 38개 무기고 이외에 6개 무기고가 더 털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44개 무기고가 4시간 만에 털렸고, 그 양이 총기인 경우만 해도 5,403정인 것으로 집계되었다(증3의 375쪽).  

증1은 “여러 무기고가 털렸다”는 인식만 가질 수 있도록 증2의 12개 쪽에 나열된 기록들 중 극히 일부만 발췌하여 서술식으로 나열했기 때문에, 증1의 기록만을 보면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털어 총기의 경우 5,403정을 탈취했다”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생산해 낼 수 없었다. 증2의 안기부 보고서 역시 괄목할만한 정보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검찰과 사법부는 원천자료를 통계적으로 가공하지 않아 사실을 사실로 인지하지 못한 반면 500만야전군은 원천자료를 통계적으로 가공했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인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법부의 사실오인인 것이다.  

시위대는 광주공원과 학운동 등에서 총기사용 교육을 실시했다(증1의 101쪽). 폭도들은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을 탈취해 도청 지하실에 폭탄으로 조립해놓았다. 폭도들은 그것에 불을 붙여 광주시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재판기록). 그 양이 2,100개였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발견됐다. 전라도 계엄군에는 폭탄조립-해체 기술자가 단 1명밖에 없었고, 그 1명인 배승일 문관은 5월 25일과 26일 양일간 도청으로 잠입해 목숨을 걸고 그 조립된 폭탄을 제거했다(증5).  

당시는 자가용 시대가 아니라 400명에 가까운 운전수를 더구나 신형장갑차를 4대씩이나 몰 수 있는 운전수를 광주에서 즉흥적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다. 학생시위대 600명은 광주의 부나비들을 선동해 4,000여명의 공수대원들을 몰살상태로 몰아넣었다.(증1의 103-105) 계엄군을 시외곽으로 몰아내고 21일 밤에 교도소를 5회나 공격했다(증1의 91쪽, 증3의 136-137쪽). 이 모든 작전들은 판결문에 기록된 것처럼 5월 18일 아침 즉흥적으로 실행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된 작전이었고, 세계 최고의 특공작전인 엔테베 작전보다 더 높은 고난도 작전이었다. 그런데 1996-97년의 재판부는 이 작전을 시민군이 수행한 가벼운 작전인 것으로 사실오인을 하였다.  

사실오인 #2) “서슬 퍼런 계엄령이 선포되어 모든 운동권과 학생들이 다 꼭꼭 숨어 있을 때에, 광주에만은 만능의 맥가이버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600명씩이나 조직돼 있었다고 오인하였다.  

증6은 2006년에 발간되었지만 여기에는 일부만 발췌한다. 여기에는 5.18의 두 영웅이자 운동권 주동자인 윤한봉과 정동년의 증언이 있다. 윤한봉은 역할보다 허명이 높은 자임을 읽을 수 있다. 정동년으로부터 200만원의 폭동자금을 받은 것으로 수사당국에 기록돼 있지만 그는 5.18 직전에 이리 저리 숨어 다니기에 바빴고, 1년 후에 미국으로 밀항했다. 김대중으로부터 500만원의 자금을 받았다는 정동년은 5월 17일 밤중에 체포되어 폭동에 참가하지 못했다.  

증7에는 5.18최상의 주동자들인 정상용, 허규정, 박남선의 자술 증언록이 수록돼있다. 발췌한 내용들 중 줄친 부분들을 요약하면 도청은 5월 23일까지 '시민군본부'(주:북한군)에 의해 통제됐고, 그들은 5월 24일에야 비로소 도청에 들어갔으며, 서로가 서로를 도청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조직화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1980년 5월 18일 새벽부터 전국은 계엄령 확대선포와 폭넓은 예비검속으로 인해 전국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운동권 인물들일수록 숨을 곳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이는 증6 및 7의 빌췌물들에 잘 묘사돼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서울지역에 비해 시위가 활발하지 못했다. 광주의 학생운동권 지도자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인 박관현, 축산학과 학생회장인 윤한봉, 38세의 복학생 정동년, 5.18의 영웅이라는 윤상원 정도였다. 그런데 박관현과 윤한봉은 5월 17일 밤부터 도망을 다니며 광주사태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정동년은 5월 17일 자정에 체포됐고, 윤상원은 5월 21일까지도 숨어 있다가(증7의 68쪽) 5월 24일 오전까지 도청을 배타적으로 장악했던 북한세력이 안개 같이 사라진 이후 어슬렁거리며 도청에 들어가 5월 25일과 26일,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을 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계엄령의 선포로 당국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았던 모든 학생과 젊은이들은 모두 숨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광주에서만은 이렇게 고도로 훈련된 대학생들이 600명씩이나 뭉쳐서 존재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판검사들이 사실오인을 주도한 것이다. 이 600명 작전은 신출귀몰하다는 이스라엘 특공대의 엔테베 작전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고난도 작전에 속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검찰과 판사들은 이러한 고난도 작전을 광주의 대학생 600명이 수행한 것이라고 쉽게 간주했다. 판-검사들이‘주의의무’를 등한시 한 것이다. 군사부분에 대해 군사전문가를 제치고 그들의 상식만을 가지고 가볍게 재판한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검사들과 판사들은 북한의 침략작전을 놓고, 숭고한 광주시민의 민주화운동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대한민국 판사 검사들은 이 엄청난 저지레에 대해 수치를 느껴야 할 것이고, 국민에 사죄해야 할 것이며, 빠른 시일 내에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사실오인 #3) 5월 18일 오진 9시경, 가방에 돌을 넣어 감히 계엄군 집결지를 찾아가 7명의 공수대원에게 부상을 입히고, 공수부대원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아나 광주 도심 파출소들을 불태워 시민들을 끌어 모으고, 준비된 공작용 유언비어들을 살포한 250명의 날래고 대담한 학생들이 광주학생들이라고 오인하였다. (증1의 58쪽)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은 무시무시한 계엄령 선포로 모두 숨죽이고 숨어 지냈으며 2사람 이상이 몰려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광주에서만은 대학생 250여명이 감히 400여명으로 구성된 제7공수여단 제35공수대대 집결지인 전남대를 찾아가 가방 속에 숨겨간 돌멩이로 공격을 하여 7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공수부대원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아나 도심의 파출소들을 불태우거나 파괴하여 시민들을 끌어 모으고, 수많은 군중들에 준비해온 유언비어들을 살포하였다. 이런 고도의 백병전 능력과 자신감을 가진 대학생, 도심에 불을 질러 사람들을 끌어 모인 후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정교한 공작 능력을 가진 대학생들이 광주에 250명이 몰려다닌 모습들이 증1의 57-59쪽에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도 판검사들은 이 250명을,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결집된 정의로운 시위대라 오인하였다.  

사실오인 #4) 감히 정규사단의 이동계획을 탐지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몽둥이를 들고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 14대의 지프차를 빼앗아 몰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직행한 300명의 날래고 조직화된 시위대가 광주학생들인 것으로 오인하였다.(증1의 92-93쪽)  

광주 대학생들이 극비의 군부대 이동계획을 수집하고, 매복지점을 선택하여 매복을 하고, 몽둥이 등을 가지고 정규군인들을 혼비백산케 만들고, 군 지휘차량을 대량으로 빼앗아 곧장 운전해서 군용 차량을 생산하는 방위사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직행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300명의 집단과 합세하여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무기고로 직행하다가 광주 부나비들을 태운 후 44개 무기고를 파괴하여 무기를 털고 광주시민들에게 무기 사용법을 교육하는 맥가이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판결한 것은 분명한 사실오인이다.  

사실오인 #5) 재판부는 위 600명을 광주학생 시위대인 것으로 오인하고 시위대에 대해서는 헌법수호세력으로 오인했고, 이를 진압한 신군부를 국가반역자들로 사실오인 하였다.  

5.18사태가 종료되었을 때 주동자들이라고 잡혀 1심에서 집행유예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 328명이다(증3의 354-367). 증3에는 처벌자 명단이 있고, 나이와 직업이 기록돼 있다. 넝마주이, 구두닦이, 껌팔이, 목공, 석공, 자개공, 구두공, 식당종업원 등 59개 직종에 걸쳐 있는 10-20대의 최하층 계급들이다. 증6,7에서 여러 증언자들이 증언했듯이 “개념 없는 부나비”들이었다.  

이들 328명 중에 5월 21일의 빛나는 작전을 기획하고 감당할 자가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실지로 5.18유공자들 중 5월 21일 작전을 주도했다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며 엄청난 포상금과 연금과 수많은 공짜들을 제공해주는 이 마당에 5월 21일 참가자들은 어째서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주동자라고 잡힌 자들 중 대학생은 5월 25-27일 도청에서 자기들끼리 갑론을박 하던 자 두 사람뿐이었다.  

광주시청과 5.18단체들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 31일까지 지하철, 광주시청로비, 번화가, 각 지역의 노인시설, 복지시설 등에 500만야전군이 분석한 북한군 영상들을 크게 전시해 놓고 “5.18 당시 사진 속 광주시민 찾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500만야전군이 북한군으로 지목한 이 얼굴이 바로 나요” 하고 나타나 달라고 6개월 동안 호소했지만(증8) 그날까지 500만야전군이 발견한 총 433명의 북한얼굴들 중 단 1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들 스스로 5.18의 주역 역할을 하다가 촬영된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이 모두 다 북한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사실오인 #6) 총상으로 사망한 사람 116명 중 70%-7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무기고로부터 탈취한 카빈총 등에 의해 사망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계엄군이 쏜 것으로 사실 오인을 하였습니다. 당시 계엄군은 M16만 보유하고 있었다. (증2의 96-103쪽-70%, 증3의 131쪽-75%)  

광주사람들조차 이 600명을 ‘시민군’이라 부르기도 했고 ‘연고대생 600명’이라 부르기도 했다. 광주시민이 광주시민을 쏘았다는 것은 광주의 치욕이다. 북한군이 광주시민을 쏘아놓고, 또는 황해도 신천박물관이 미군을 증오하도록 모략한 방법에 따라 몽둥이, 톱 등의 흉기로 처참하게 살해해놓고 이를 계엄군의 소행이라고 모략함으로써, 광주시민들로 하여금 계엄군에 대한 적개심을 갖도록 했고, 여기에 더하여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느니, 여성들을 농락한 후 유방을 도려냈다느니 하는 온갖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이런 여러 가지 흑색 공작들은 전쟁 매니어들의 전문공작에 속하는 것이지 즉흥적으로 모인 일반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이 못된다.

증거자료  

증1: “5.18 관련사건 수사결과” 1995/7/18.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검찰부
증2.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1985.5. 국가안전기획부
증3. “계엄사(戒嚴史)-1026사태와 국난극복-” 1982.3.15. 육군본부
증4. “광주의 분노” 1985.5.28. 조선로동당출판사
증5. 배승일씨 광주진압유공 오명벗고 명예회복
증6. “5.18의 기억과 역사2” 2006.2. 5.18기념재단
증7. “5.18항쟁 증언자료집 I, 2002.12. 전남대학교 출판부
증8. 뉴스1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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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 2016-05-22 22:14:18
대한민국의 법원에서 또 광주폭동 사태가 일어나고 있어도, 법과 공권력은 침묵하고 방조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전라도 표심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철새...
정치하는 놈들의 표심에 정의도 팔아 먹는 세상에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의 질서는 없었다.
또 한번의 광주폭동 사태는 그들만의 잔치였다.
무수한 광주폭동 사태의 유공자 신청에 갖은 폭력, 조폭들도 자해해서 신청해서 나랏돈을 수억씩 받고...
전라도.....위대한 승리

대한민국 만세!!! 2016-05-21 15:22:28
지만원 박사님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자유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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