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 470명 규모, 5.18 역사전쟁 승패는 결정났다!
광수 470명 규모, 5.18 역사전쟁 승패는 결정났다!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6.04.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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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람들과 서울광수들은 더 이상 추태부리지 말라

평양광수, 서울광수, 내국인 광수

발표된 광수가 445명이다. 어제 찾아낸 서울광수의 수를 더하면 공개 안 된 서울광수는 무려 13명이나 된다.

광수는 평양광수가 주류를 이루고 평양광수들은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그 다음은 60여명의 서울광수다. 서울광수의 특징은 누구나 한 가닥씩 하며 골목리더십을 발휘하고 TV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남한에서 김대중-노무현에 붙어 출세를 하려던 논객(?)들을 접수하고, 돈들을 잘 벌며, 북한에 둔 가족-친지-지인들의 안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북한체제를 마구 비난한다. 각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포섭하고 통일 분야의 정책기관과 단체들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대형교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 한다. 안보에 관심 있는 애국자들은 이들을 트로이목마로 의심하고 우려 한다. 광주에 10세 전후의 나이로 동원돼 왔던 어린이들이 몽땅 서울에 와서 어느 세력의 도움을 받았는지 이들은 남한의 똑똑한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벼락출세들을 했고,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이는 결코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고 우연한 일도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기획된 광수', 이것이 서울광수 집단의 정체다.  

그 다음은 김일성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한출신 광수들이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수준의 거물, 간첩당 오야 였던 사람,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시절에 장관을 했던 여러 사람들, 유명한 소설가 등이 1980년 광주에 얼굴을 드러냈다. 어떤 사람은 지프차의 상석에 앉아서 평양광수들의 호위를 받는 사람도 있다. 광수들 중 서열이 높은 사람으로 보인다. 

광주사람들과 서울광수들은 더 이상 추태부리지 말라. 이미 끝난 게임에서 바보 같이 형량이나 올려쌓지 말고 솔직히 국민에 무릎 꿇라.  

광주시와 5.18 단체들, 지하철공사가 광주 현장사진들을 광주시 곳곳에 전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월말까지 무려 6개월 동안 "사진 속의 5.18주역"을 애타게 찾았지만 나선 사람 없다. 450명 중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광주인들이 5.18의 주역이었다면 적어도 100명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 하나만으로도 5.18의 주역은 북한군인들과 공작집단이다.  

또 다른 하나는 5.18 단체들과 정부기관들이 한결같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1997년의 대법원 판결이다. 그런데 그 판결은 시위 주체에 대해 조사 조차 하지 않고 전두환 죽이는 데에만 몰두했다. 검찰과 국방부 검찰부가 합동으로 14개월에 걸쳐 작성한 "5.18 관련사건 수사결과 보고서"(증1) 92-93쪽만 제대로 읽고 추적했어도 5.18의 주역이 광주사람들이 아님을 금방 인식했었을 터인데도 이를 게을리 하여 저질러서는 안 될 "사실오인"을 범한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발견하여 성명서로 내놓았다.  

사실오인 6개중 제1번

증1의 92쪽에는 "시위대 300명이 전투서열이 높은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톨게이트를 5월 21일 08시에 통과 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몽둥이 화염병 등을 소지한 채 매복해 있다가 08시가 되자 통과하는 차량부대를 기습해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털어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갔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감히 대학생들이 정규 사단을 기습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 같은 상식이다. 이 차량대열을 마주한 군납업체 사람들이 놀라서 신형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28대(증3의 376쪽)에 열쇠를 꽂아주었다. 증1의 93쪽에는 5월 21일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이 이 공장에 합류하여 도합 600명이 집결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증2의 53-64쪽에는 이 600명이 전라남도 17개 시-군에 꼭꼭 숨겨져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12시부터 불과 4시간 만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꼭꼭 숨은 38개 무기고를 부수고 5,403정의 총기를 털었다는 기록이 있다. 단 증2는 5월 21일, 각 시간대별로 털린 무기고 이름과 무기별 수량만 12개 쪽에 걸쳐 지루하게 나열돼 있었다. 500만야전군은 이 12개 쪽에 산만하게 나열만 되어 있는 시간대 별 기록을 통계처리 했다. 1) 무기고가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분산돼 있었다는 사실, 2)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38개 무기고가 털렸다는 사실이 비로소 정보로 나타난 것이다. 3) 북한 책인 증4의 35-37쪽에는 38개 무기고 이외에 6개 무기고가 더 털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44개 무기고가 4시간 만에 털렸고, 그 양이 총기인 경우만 해도 5,403정인 것으로 집계되었다(증3의 375쪽).  

증1은 "여러 무기고가 털렸다"는 인식만 가질 수 있도록 증2의 12개 쪽에 나열된 기록들 중 극히 일부만 발췌하여 서술식으로 나열했기 때문에, 증1의 기록만을 보면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털어 총기의 경우 5,403정을 탈취했다"는 매우 중요한 정보를 생산해 낼 수 없었다. 증2의 안기부 보고서 역시 괄목할만한 정보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검찰과 사법부는 원천자료를 통계적으로 가공하지 않아 사실을 사실로 인지하지 못한 반면 500만야전군은 원천자료를 통계적으로 가공했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인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법부의 사실오인인 것이다.  

시위대는 광주공원과 학운동 등에서 총기사용 교육을 실시했다(증1의 101쪽). 폭도들은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을 탈취해 도청 지하실에 폭탄으로 조립해 놓았다. 폭도들은 그것에 불을 붙여 광주시를 날려 버리겠다고 협박했다(재판기록). 그 양이 2,100개였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발견됐다. 전라도 계엄군에는 폭탄조립-해체 기술자가 단 1명 밖에 없었고, 그 1명인 배승일 문관은 5월 25일과 26일 양일간 도청으로 잠입해 목숨을 걸고 그 조립된 폭탄을 제거했다(증5).  

당시는 자가용 시대가 아니라 400명에 가까운 운전수를 더구나 신형 장갑차를 4대씩이나 몰 수 있는 운전수를 광주에서 즉흥적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였다. 학생시위대 600명은 광주의 부나비들을 선동해 4,000여명의 공수대원들을 몰살상태로 몰아 넣었다.(증1의 103-105) 계엄군을 시외곽으로 몰아 내고 21일 밤에 교도소를 5회나 공격했다(증1의 91쪽, 증3의 136-137쪽). 이 모든 작전들은 판결문에 기록된 것처럼 5월 18일 아침 즉흥적으로 실행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된 작전이었고, 세계 최고의 특공작전인 엔테베 작전보다 더 높은 고난도 작전이었다. 그런데 1996-97년의 재판부는 이 작전을 시민군이 수행한 가벼운 작전인 것으로 사실오인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애국운동을 방해하는 장진성에 대해 취할 조치

장진성은 4월 15일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나를 고소하겠다 협박했다. 이에 원칙적인 대응을 하자, 그 다음은 영국 출판사 랜덤하우스를 팔아 나를 협박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뉴스타운

나는 이 장진성의 글과 함께 그 번역문을 영국 프리덤하우스에 보낼 것이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 미해군대학원에서 받은 석사학위와 박사학위증을 첨부하겠다. 그리고 우리 500만야전군이 추진하고 있는 5.18 역사바로잡기 프로젝트의 개념을 소개하고, 60여명의 서울광수들 중 장진성의 얼굴분석 내용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이 분석에 대해 장진성이 그동안 보인 협박 내용을 소개하면서 페이스북에 설치한 장진성의 협박 작품을 소개하고 이를 번역해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랜덤하우스가 여기에 끼어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진짜로 랜덤하우스가 나를 상대로 고소나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하였는지, 이를 장진성에게 통보해 주었는지의 여부를 문의할 것이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이는 무거운 범죄에 해당한다.  

여기까지가 아마 서울광수들이 장진성을 내세워 주도 했던 게임인 모양이다. 게임치고는 참 유치했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작가라며 으스대던 장진성의 문장력에 참으로 실망했다. 도대체 무슨 실력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앞으로 장진성의 글을 자주 구경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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