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혁명 55주년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께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냅시다
5.16 군사혁명 55주년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께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냅시다
  • 편집부
  • 승인 2016.05.16 0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까지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어야 하는 것입니까?

▲ ⓒ뉴스타운

오늘은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지 55년이 되는 날입니다. 저는 그때 초등학교 5학년 이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임포라는 바닷가 조그만 한 시골마을 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하일면에는 자전거도 전화도 라디오도 하나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있는 것은 지게와 똥장군과 굶주림과 절망과 한숨뿐이었습니다.

120명 이었던 저의 하일 초등하교 동기들은 절반이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습니다. 도시락을 싸오는 동기의 절반은 고구마나 감자를 싸왔습니다. 밥을 싸 오는 친구들도 시커먼 보리밥을 싸 왔습니다. 한 두 명만 하얀 쌀밥을 싸 왔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친구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친구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떠 운동장 한 켠에 있는 우물물을 퍼 마시고 배를 채웠습니다. 학교에서 간혹 가마솥을 걸어놓고 미국이 원조해 준 우유 가루와 옥수수 가루로 죽을 쑤어 한 그릇씩 주기도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 길이 진창이 되었습니다. 우산이 없어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학교에 갔습니다 산골 아이들은 풀로 엮은 도롱이라는 우의를 입고 왔습니다. 이런 것도 없는 상당수 학생들은 비를 그냥 맞고 왔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옷이 빗물에 젖었습니다. 갈아 입을 옷이 없고 말릴 곳도 없어 여름에도 벌 벌 떨면서 체온으로 젖은 옷을 말렸습니다.

봄이 되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누런 황달이 들었습니다. 산으로 가서 소나무 가지를 꺾어 송곳이라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습니다. 아침 낮 해질녘 하루 세 번씩 매번 한 시간 이상씩 물드레로 웅덩이 물을 퍼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손 바닥이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군살이 박혔습니다. 나무로 밥을 짓고 난방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학교 갔다 오면 오후에 나무 한 짐을 해야 했습니다. 일요일이나 방학 때는 매일 20리가 넘는 산길을 걸어 먼 산으로 가서 나무 한 짐을 해야 했습니다. 어깨가 내려앉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비료가 없어 퇴비로 농사를 지어야 하니 풀도 베어다 날라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이른 새벽에 개똥을 주우러 다녔습니다. 똥도 집에 와서 누게 했습니다. 농한기가 되면 할 일이 없어진 어른들이 곳곳에서 술 노름 싸움판을 벌렸습니다. 겨울에는 씻지 못해 때가 새까맣게 끼고 손등이 갈라 터지고 피가 났습니다. 옷에 이가 우글거렸습니다. 저녁이면 온 식구가 등잔불 앞에 모여 앉아 이를 잡았습니다. 이가 하도 많아 등잔불에 옷깃을 태워 이를 잡았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머리에도 이가 우글거렸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이발소 기계 독이 올라 머리에 부스럼을 달고 다녔습니다.

뱃속이 온통 회충으로 꽉 차 있어 입으로 회충이 넘어 오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봄이면 회충약을 주고는 몇 마리 나오는지 세어서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회충약을 먹은 날은 똥은 없고 회충만 뭉쳐서 나왔습니다. 어머니들은 통상 열명이 넘는 자식을 낳았는데 홍역이나 천연두가 지나 가면 절반 이상의 어린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향 사람들만의 실태 였겠습니까?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2차년도가 끝나가는 1969년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이런 고통이 서서히 해결 되어갔습니다. 통일벼가 나와 배곯는 사람이 없었졌습니다. 비료며 농약이며 양수기가 나와 농사 짓기가 편해졌습니다. 리어카가 나왔고 앰프와 라디오가 보급되었습니다. 자전거와 경운기가 보급되었습니다. 연탄 난방이 보급되면서 땔나무 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벌겋던 산들이 푸르게 되었습니다.

소총 한 자루도 만들지 못했던 우리 국방이 전투기, 함정, 대포, 탱크, 미사일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수백 년간 방치되어있던 문화재 급 도시와 성곽들이 정비 되었습니다. 제철, 조선, 자동차, 비료를 생산하여 쓰고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만들고 공단을 만들고 배를 만들어 무역을 하여 돈을 버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국 곳곳에 산업단지가 세워지고 농어촌에서 한숨만 쉬면서 뒹굴던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형제들 공부를 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동창회 하면 살찐다고 고기도 밥도 적게 먹으려고 야단들입니다. 모두가 핸드폰을 갖고 있고, 명절 때는 자가용을 가지고 와 고향 골목이 몸살을 앓습니다.

저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국방부 감사과장으로 방위산업체와 육해공군의 주요 전투장비에 대한 감사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자동차로 헬기로 함정으로 모시고 다니면서 국가 기간산업의 시설 위치를 선정하는 데 동참한 예비역 선배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방과학연구소, 거제 옥포조선소, 포항제철소, 울산 미포조선소, 창원공단 구미공단 등을 선정할 때 먼저 헬기를 타고 공중정찰을 하시고 이후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접근해 보시고 바다에서 군함을 타고 접근해 보시고, 그리고 나서 정확한 위치를 선정하셨다고 했습니다. 경주 고도를 정비할 때도 직접 개발 요도를 그려 주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육군 훈련소장으로 부임해서 보니 조경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훈련소 조경을 잘 했느냐고 물으니 훈련소 조경사가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조경사에게 어떻게 해서 조경을 이렇게 잘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조경사는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께서 하셨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육군 훈련소를 방문하시어 훈련소 조경을 아름답게 해서 훈련으로 고단한 훈련병들을 위안하고 무궁화를 많이 심어 애국심을 고취하라고 하시면서 조경 지침을 주시고 조경 예산을 청와대에서 직접 내려 주시고 조경사를 인가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때 임용되어 지금까지 훈련소 조경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술과 노름 싸움으로 날을 보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실의에 빠져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셨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그것을 선두에 서서 직접 지휘하신 분 이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국민소득 60불도 채 안되었던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 나라를 국민소득 1,700불 현재 환율로 약 3,500불의 중진국으로 만드셨고 현대 국가의 기틀을 세워주시고 우리 곁을 떠나신 분 이셨습니다.

이후 37년간 어느 대통령이 이렇게 하신 분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 결과 국가가 부도가 나서 IMF를 겪고 알짜배기 기업과 기술과 건물과 땅이 외국인 손에 넘어 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산층이었던 우리 국민 70퍼센트가 저 소득층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별다른 부채가 없었던 국가 기업 개인의 부채가 각기 1,000조를 넘었고 부채 증가율이 년 25퍼센트를 넘고 있어, 그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부지런하던 국민들이 공짜를 바라고 놀고 먹으려고 합니다. 그렇게도 선량했던 국민들이 충성심도 효심도 우정도 신의도 예절도 없어져 버리고 자기만 아는 극단적 이기주의 국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급기야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되는 재수 없는 나라라고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고도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도로 우리 체제로 남북통일을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누가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을 자격이 있습니까? 누가 5.16을 군사쿠데타라고 비하할 자격이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에게 많은 사람들이 5개년 경제개발계획은 자유당 정부에서 이미 세워져 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안 나왔어도 경제개발은 하게 되어 있었으며 5.16 군사쿠데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었다고 비아냥 그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자 스페인 왕이 귀족들을 모아 환영연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귀족들이 누구나 배를 타고 계속 가기만 하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이를 들은 콜럼버스는 귀족들에게 달걀 한 개씩을 나누어 주면서 이를 탁자 위에 세워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귀족들은 저마다 달걀을 세우려고 야단이었으나 아무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를 본 콜럼버스는 달걀 한쪽 밑을 탁 깨뜨려 탁자 위에 세웠습니다.

하늘이 박정희 대통령을 우리 대한민국 땅에 내려 주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5.16 군사혁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시여! 4.19와 5.18은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저렇게도 많은 국가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모여 칭송하면서 언제까지 5.16은 군사쿠데타라고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어야 하는 것입니까?

5.16을 군사혁명으로 인정하고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5.16 날 모든 국가 지도자들과 온 국민이 모여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고 칭송하면서 그분의 근면, 자립, 자조정신을 실천할 때 우리는 진정 위대한 대한민국이 되고 위대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우리라도 하늘에 계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올립시다!

자유민주평화통일연합 회장 허 평 환 (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국군기무사령관)


관련기사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성재영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온종림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