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과 5.18 두 개의 5월 역사
5.16과 5.18 두 개의 5월 역사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12.09.06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바른 역사는 날조 미화돼서도 왜곡 은폐 돼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1961년 5.16과 1980년 5.18이라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5월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이중에서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고 보는 5.16에 대하여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면서 박근혜에 정치적 적대세력과 반대세력이 5.16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논란을 재연하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한편, 우파 논객 지만원(70,시스템크럽 대표)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시스템클럽 게시판에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는 요지의 글을 올린데 대하여 5.18관련 단체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여 1심과 2심(2009.108~2012.8.23)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5.18은 우여곡절 끝에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에 대해 1993년 2월 24일까지는 공소시효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제정된 5.18 특별법(1995.12.21)과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1997.12.17)에 의해서 5.18 관련자들의 재심청구와 명예회복, 기념사업추진과 피해보상 및 배상이 이루어지고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 등재(2011.5.25)를 완료했다.

논란의 핵심인 5.18 사망자는 발표기관과 시기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계엄사 발표(1982.3.15), 189명(민간인 162명, 군인 23명, 경찰관 4명),서울지검 발표(1995.7.18), 193명(민간인 166명, 군인 23명, 경찰관 4명),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 등 4개 유관단체 발표(2005.5.13)에서는 민간인 희생자는 총 606명으로 항쟁당시 사망자 165명, 행방불명 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사회 일각에서 5.18 진행 과정에 외부세력이 개입했을 개연성을 제기 하고 있어, 특정지역 정서나 특정세력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실증적 자료와 증거를 발굴, 객관적 분석과 평가를 거쳐서 사실에 입각, 역사적 진실을 규명,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올바로 정립(正立)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 문제에 새롭게 접근해야할 필요가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북괴 특수부대의 개입의혹 중에서도 193명 사망자 중 13구의 무연고 시신과 수백여구의 암매장 설에 대한 추적 발굴 및 DNA검사 등을 통한 연고자 확인과, 국적추적이 절실하며, 현재로서는 다소 허황되게 들리는 북괴 특수군 600명 남파 설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불과 수 시간 만에 17개 시 군 38개소 무기고가 동시에 털린 정황 등에 대한 재조사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도에는 엄청난 노력과 비용응 물론 개인적 희생과 헌신이 수반 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을 초월하여 확실한 역사관을 가진 인사나 학자가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양심에 입각하여 끈기 있게 도전하한 한편,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적극적 후원도 뒤 따라야 할 것이다.

일찍이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5)은 한 무제에 의해 궁형(宮刑)을 당하자 “이것이 내 죄인가, 도대체 내 죄인가, 내 몸이 상하여 쓸모없게 됐노라(是余之罪也夫是余之罪也夫身毁不用)”라고 한탄을 하면서도 “나는 황제(黃帝)로부터 태초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서술하여 130편을 끝 맸다(余述歷黃帝以來至太初而訖百三十篇)”라고 불후의 사서 사기의 완성을 술회 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의 제국주의 침략역사 부인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역사왜곡 은폐 교과서검정제도에 반대하여 32년에 걸친 교과서 재판(1965-1997)으로 유명한 일본 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1913.9.3~2002.11.29)씨의 역사에 대한 태도와 1997년 8월 29일 일본정부의 역사왜곡 검정교과서 위법판결을 내린 오노마사오(大野正男) 대법관의 역사인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노마사오 대법관은 이에나가(家永)교과서재판에서 “교과서에 거짓말을 쓰는 나라, 특히 최근년의 일을 슬쩍 바꿔치긴 한 수사(修辭)로 쓰는 국가는 머잖아 망가진다.”라고 남경대학살 등 침략사실을 은폐 왜곡한 일본정부를 호되게 질책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근현세사에 대하여 바로 알고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일본 대법관의 양심(良心)이 시사해 주는 바는 크다.

이처럼, 역사적 진실을 천착(穿鑿)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념과 용기 그리고 자기희생의 각오 하에 사명감 하나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미완이라고 할 5.18 역사를 대함에 있어서도 어제의 역사는 오늘의 토양이며 오늘의 현실은 미래의 지표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엄숙한 태도와 경건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핫이슈포토
핫이슈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성재영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온종림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