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은 군사 쿠데타인가? 군사 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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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은 군사 쿠데타인가? 군사 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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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은 한강의 기적 조국 근대화 산업화의 초석 이었다

▲ 조국 근대화 산업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있었던 사람들, 오늘날 박근혜 전 위원장과 대권을 경쟁하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종북 좌파 사람들은 5.16 정신을 폄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될 것이며,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국민들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그 시대를 체험하며 조국 근대화에 앞장섰던 60~70대의 어른들이 올바른 인식을 하고 있다. 5.16 군인들은 물론 쿠데타 방식으로 집권했다. 그리고 그들의 쿠데타는 이승만 시대를 붕괴시킨 4.19 혁명 이후의 혼란했던 헌정질서를 정지 시켰다. 그러나 5.16 군사 혁명의 동기나 과정과 집권 후 18년 동안 한국은 상전벽해(桑田碧海 :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는)의 변혁을 거쳤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그 변혁을 통해 한국은 근대화되고 글로벌화 되었다. 이 근대화 변혁을 겪고 나서 한국인들은 오늘의 발전된 ‘세계 속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이 발전에는 국민들의 노고가 있었다. 이 점을 세계인들이 높이 평가하는데 우리들 자신이 폄하해서야 되겠는가.

이는 절망과 기아선상(飢餓線上)에서 허덕이는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그런 국민대중의 에너지를 끌어낸 당시 각계각층 엘리트들의 리더십과 국가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한 그 국가발전 진로선택에 대한 평가에도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5.16 혁명 공약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재건에 총력을 경주 한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필자는 당시 직접 참여했던 군인으로서 5.16 혁명 공약을, 아침저녁 점호시마다 큰 소리로 외쳤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나라가 극도로 혼돈 속에서 안개정국이었다. 곳곳에 부정부패와 구악이 창궐하고, 이에 더하여 공산주의자들의 발호, 거리에는 깡패천국, 국민들은 보릿고개에 삼순구식(三旬九食 : 30일 동안에 9 끼니만 식사하는)의 가난 속에서 오로지 절망과 기아 뿐, 특히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매우 궁핍하였다.

5.16 혁명전의 대한민국은 북한보다도, 필리핀보다도, 말레이시아보다도, 베트남보다도 더 가난한 후진국이었다. 민주주의는 후진국에서 정착할 수 없다. 반드시 선진국대열에 올라서야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좌파들은 독재자라고 폄하하지만 그분이 집권하는 동안 국민들은 불편함이 없다. 반대자들, 정치지망생들 일부가 불편했을 뿐, 히틀러나, 무쏠리니, 스탈린, 김정일 처럼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지도 않았다.

마르코스처럼 부를 축재하지도 않았다. 대통령부부가 비운의 총탄에 목숨을 바치셨다. 친일파라고? 그 당시를 살았던 모든 우리 민족은 다 친일파인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을 계기로 우리는 모든 국민이 햇볕의 몽상에서 깨어나 국방을 더욱 굳건히 하고 정신무장을 강화해서 후손들에게 안녕과 평화를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흠모하고 있다.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후손들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애국자이시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셨다.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다. 5.16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의 나라로 성장하였을까?

박정희 대통령 치적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후의 대통령들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국민들은 그의 공이 과보다 훨씬 큰 것을 안다. 수많은 그의 반대자들이 그가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고, 독재적인 정치를 펴고, 유신으로 정권을 이어 갔음을 비난했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한국은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함께 성취했었으리라고 가정 하에서였다. 그러나 그 가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 그가 아니었더라면 한국은 아직도 빈곤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 한다. 그 가정은 오늘의 한국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주고 있다. 이성적 정치보다는, 폭력적 대치 상황, 양극화된 사회가 혼돈을 겪고 있다. 지금도 민주주의가 어려운데 60년대, 70년대 민주주의가 가능했겠는가.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박 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감옥 갔다 온 것을 무슨 위대한 훈장인 것처럼 자랑하는 소위 민주투사들, 집권하여 권력을 거머쥔 후 그들이 한 것은 국가의 안위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식들을 비롯한 친족패거리들의 부정부패와 구악의 창궐은 물론 종 북 좌파 양성 및 방치에 의한 남남갈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등의 그들이 한 치적? 은 박정희 대통령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것이다. 만약에 북한 군인들이 그들의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북쪽 국민을 지옥에서 구한다면, 이는 쿠데타인가 혁명인가? 후세에 역사가들이 5.16은 쿠데타인가 혁명인가? 설왕설래 하지만, 지금도 그 당시를 회고해보면 이는 틀림없는 5.16 군사 혁명이라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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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백정 2012-08-03 14:46:55
구테타니 혁명이니 그런 제목이 뭔 소용이다요? 궁민들 끼니 긂지 않게 만들어줬으면 감사할줄도 알아야제.
그때 팔푼이 김대중이나 칠푼이 영샘이가 나라를 경영했다면 시방도 라면까지 일본에서 사다 묵을껏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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