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 하봉규 논설위원
  • 승인 2014.04.29 09: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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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창업자형 DNA나 전쟁을 감수 할 위기 의식이 있는가

▲ 조국 근대화 산업화 영웅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지난 대선은 5년전 이명박(MB)과 달리 어려운 싸움이었다. 당시에는 좌파정권의 온갖 선전 선동의 실체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 속성을 뒤늦게 깨닫고 종북좌파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대세였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MB 정부는 철저히 배신했다. 집권 초기부터 친이 친박을 분리시켜 당의 내분을 야기하고 소위 광우병 파동에 백기를 들어 실용이란 이름으로 이념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재벌가의 집사 출신은 상고 졸업자 답게 부패에 혈안이 되어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4대강 프로젝트로 위장 집행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이후 MB의 일과는 4대강 사업 참여 회사들의 사업조정으로 시작되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실지로 이후 모든 국정은 뒷전이었고 심지어 대선 과정에서 패널들이 청와대는 도둑의 소굴이라는 극언에도 초연(?)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초부터 집요하게 부정 선거와 대통령 하야를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종북 좌파 세력에게 세월호 참사는 최대의 호기가 되고 있다. 정부의 초기대응이 미숙하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 책임자들의 자질이 만천하에 공개 되었기에 고무된 것이다.

이미 전국은 노란 리본으로 확산 되었고 촛불시위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적 우울증을 이용한 전국 규모의 반정부 시위는 예정된 상태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전과 콘텐츠, 국정 운영 능력이 결여된 박근혜 정부는 부패 의혹만은 자유롭다는 점이다.

집권 2년차 지방 선거를 앞둔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이제 기로에 서있다. 이미 지난 일년 동안 많은 지지 세력(짧게는 5년 이상, 길게는 10년 이상 외곽에서 묵묵히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사람들)이 떠나 갔고 국민들은 지쳐 갔다. 구체적 목표도 없었고 제대로된 현장, 경청, 소통도 없었다. 받아쓰기, 창조경제, 신뢰 프로세스, 외교와 영어 연설만 기억에 남아있어 명실 상부한 NATO (no action talk only)정권이 된 것이다.

6공 역대 정부의 실정들을 겪은 국민들은 이제 본능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부족함을 느끼는 단계이다. 국가경영에서는 국가지도자가 스스로 초래하는 위험은 부정부패, 외교실패, 자원 배분의 왜곡, 정국 불안정으로 구체화 한다. 문제는 비전과 장기적이고 구체적 목표와 실행이 없는 정부는 외부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 당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존재 자체가 국가 위기의 구조인 것이다.

남북대치 속에서 보수(애국)와 진보(종북)의 갈등과 같은 불안한 정국 상황은 흔히 자전거 타기로 비유된다. 자전거는 가장 불안한 메카니즘이다. 두바퀴에 의존하며 전진하지 않으면 넘어진다. 전진 아니면 파멸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것은 조국 근대화를 통해 전세계에 쿠데타를 위대한 혁명으로 반전 시킨 것이다.

위대한 대통령의 2세(박근혜)는 불행하게도 많은 시간과 기회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비전, 카리스마, 국정 운영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우수한 두뇌나 진정한 책임감은 초기의 실패에서 더 큰 지혜를 배우는 법이다. 초기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도 화폐개혁과 수입 대체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는 우를 범했었다. 하지만 참담한 실패를 조기에 깨닫고 수출 전략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다.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지난 1년 처럼 정책의 기조와 인적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6공 역대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김영삼(YS) 정부의 길을 답습 할 것이다. 평생 스스로 가계를 책임져 보지 못한 부자집 아들인 김 대통령은 비교적 청렴했다. 하지만 아들을 비롯한 무능한 측근들은 정권의 실패를 재촉하여 종국에는 IMF와 종북 세력에의 정권교체를 가져왔었다.

역사에선 창업자형 DNA가 없는 지도자의 역전 드라마는 희귀함을 보여준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과도기와 전환기에는 카리스마형 지도자가 적합하고, 버트 호셀리츠(Bert Hoelitz)는 혁신의 수행자는 엘리트나 사회 일탈자, 주변 집단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린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대처 수상의 성공은 왕권의 위협과 남성 우위 사회에서 인생을 전쟁처럼 임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 박근혜 대통령에겐 창업자형 DNA나 전쟁을 감수 할 위기 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의 미래가 밝지 못한 것은 나만의 기우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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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대단하다 2014-05-03 13:09:20
이딴것도 기사라고 써서 올릴 수 있구나 가장 공평해야할 언론이 종북좌파 이지랄 ㅋ

왕짜증 2014-04-29 10:28:56
스타일이 좋은 것은 타고 난 복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군살 없는 늘씬한 스타일은 본인으로서는 더 없는 행운이다. 어쩌면 그 장점이 대통령이 되는 데 일정 부분 일조 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경쟁력 강화란 장점은 북돋우고 약점은 숨기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의 외관치장과 관리는 대단히 치열하다. 옷은 많을수록 좋고 액세서리는 다양할수록 좋다. 보통 여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대통령이 되기 전 까지는 박근혜 역시 보통여자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시각각 변모하는 그의 패션에 대해 그다지 비판을 가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난 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시시각각 수시로 변모하는 대통령의 패션이 짜증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치장에 매여 있는 모습은 아무래도 저자거리의 일반 여성들처럼 인격적으로 깊은 신뢰를 주지는 못한다. 단순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서라면 감성적 호소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전략이라 할 수 있겠지만 국민을 상대로 한 대통령이 매번 감성 패션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단정하고 격이 있어 보이며 나이에 걸맞은 의상 차림으로 국정을 살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은 오피스걸들에게나 어울릴 테크니컬한 복장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무엇보다 멋을 내려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멋을 내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면 보일수록 대통령은 가벼워 보이는 법이다. 대통령의 멋은 능력과 품위에 있지 말초적 패션에 있지 않기에 하는 얘기다. 참고로 나는 지난 대선시 여성 대통령의 패션에 반하여 한 표를 던진 그런 우매한 남성유권자가 아님을 밝힌다.

매번 목덜미 칼라를 올려 세워 젊은이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해 보이는 60넘은 대통령의 복장이 이제는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