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병'이 왜 치명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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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이 왜 치명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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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정권의 대표적 '악의 꽃'의 하나가 역사전쟁이다

▲ ⓒ뉴스타운

민주화 초기인 1990년대 한국 사회의 화두는 소위 '한국병'이란 국가 지도력의 실종이었다. 그후 20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잃어버린 20년" 증후군에 싸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있었던 사정은 결코 간단치가 않은 소위 과학계가 말하는 '쥐들의 외퉁'에 걸린 형국이기 때문이다.

'쥐들의 외퉁'이란 활발하고 집단적인 쥐들도 때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여 집단적으로 자멸하는 자연계의 현상에서 연유한다. '쥐들의 외퉁'은 북유럽지역 레밍쥐들의 주기적인 집단자살과도 비유되는 현상이다.

한때 한국은 게으르고 무지한 나라에서 근면하고 발전 지향적 시대를 겪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이 시대는 세계가 부러워 하는 성공신화로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국가 지도자는 나라와 미래를 위해 혼신의 정열을 쏟았고, 관료들은 장기발전계획을 입안하는 비교적 청렴하고 헌신적이었으며,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산업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국제사회는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부러워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민주화는 근본적 지형을 바꾸었다. 단임제=민주화의 등식으로 대통령은 무책임제로 바뀌었고, 잦은 정권교체로 국가 비전과 장기적 발전계획은 실종되고 강력한 행정국가의 중심축은 붕괴되었다. 민주화 불과 10년만에 IMF를 맞이하고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정권교체는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종북 정부인 김대중(DJ) 노무현 정부 10년은 단순히 정치 지형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제2건국"의 미명하에 사회주의화를 이식한 것이다.

한국의 사회주의화는 남북 대치의 상황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호전적인 반체제 단체들을 양성화하여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 영원히 화동할 수 없는 소위 '국공연합'을 제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탈냉전 이후 존폐의 위기에선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였다. 종북 정권 10년의 "악의 꽃"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보수 정부 아래서 오히려 공세적으로 반전되고 있다.

종북 정권의 대표적 '악의 꽃'의 하나가 역사전쟁이다. 역사전쟁이란 전후 동서냉전 속에서 건국과 조국 근대화를 이룩했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반공역사의 이면은 독선과 군사독재가 있었다는 약점아닌 약점에 대한 전면전이다. 민주화의 환경변화 속에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에서 기동전의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보수주의의 윈칙을 잊은 한국 정치계의 현실은 처참한 것이다.

2012년 대선은 종북세력과 보수(민족)세력의 균형으로 볼 수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마침내 전후 대표적 반공 국가 한국은 더 이상 반공 국가도 남북대치 국가도 아닌 이념적 내전 국가 였다. 후진국의 과제는 국제적 불평등과 국제 경쟁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부적 음모와 갈등이 주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국은 결국 후진국적 증후군인 이념적 다운증후군에 걸린 꼴이 되었다. 실지로 민주주의는 교양과 선진 시민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선 국가적 취약성을 증대시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일찌기 근대 정치학자 마키아벨리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들어 혼란한 자국 이탈리아에 부적합한 제도로 규정한 바 있다. 실지로 대표적 파시스트 국가 였던 독일과 일본이 자유민주국가로 탈바꿈하는데는 결국 자유화란 자유의 무한확대가 아니라 "법익(제도적 제약)의 제한 속에 자아의 실현"이란 교양과 집단 지성의 코드가 있었다. 독일(서독)의 경우 밀(J.S.Mill)의 자유론의 원칙을 헌법에 규정하고, 이를 헌법 원칙(가치)으로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후일 동방정책도 이러한 원칙의 연장이었고 마침내 통일에 성공했었다.

서독의 동방정책과 종북(김대중 노무현)정권의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 인식에서 차이였다. 서독의 경우 전후 친서방 정책의 일환의 하나가 서방정책 즉 동서단절(대결)정책이었다. 그리고 체제적 우위는 1960년초 동독정부의 일방적 베를린 장벽 건설로 1차 확인되었고 2차적으로 '라인강의 기적'이란 서독의 부흥이었다. 이러한 토대에서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사민당 정부의 동방정책은 서독의 우위 속에 동독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동독의 변화를 전제한 서독정부의 지원정책은 실지로 동독정부의 정책변화로 이어졌고, 서베를린 자유왕래, 노인의 고향 방문, 서독방송 시청, 유학생 교류 등 일련의 개방과 교류를 가져왔고, 마침내 1989년 통일의 마지막 전환점인 국경 개방으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햇볕정책은 평화 정책을 고수해온 동독과 달리 대결(호전)정책을 고수해온 북한에게 일방적 친북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이미 정권의 운명을 핵무기에 걸고 총력으로 핵개발을 수행하다가 미국의 국가정보기관 NIMA에 의해 발각되어 북폭을 포함한 국제적 제재가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었다. '고난의 행군'속에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상태에서 일방적 대북지원정책으로 구사회생한 북한은 마침내 핵개발에 성공하고 대남 정책도 공세적으로 돌리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한국 정치의 암울함은 민주 vs 반민주(독재), 청렴 vs 부패, 과거 vs 미래 와 같은 일차원적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독재(전제정)속에 문맹과 반교양의 뿌리 깊은 반자유민주적 토대가 있어 왔다. 전제정의 전통이 무서운 것은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지가 결여된 엘리트를 양산하고 민중들은 문화 지성적 토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화 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공산주의와 유사한 전제적 전통은 순식간에 한국 사회를 점령한 것이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ectual)이 마비되자 성공 신화는 신기루였고 하찮은 전통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의 보수정객 나카소네 전총리가 지적한 것 처럼 국가발전 성취와 공산주의와 대결한 전통과 가치의 중요성을 망각한 한국 보수주의는 외부적으로는 북한과 내부적으로는 진보를 내세우는 종북세력에 열세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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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백정 2015-04-23 03:02:05
내가 봉께 망하기 5분전이랑께요. 청와대까지 검증된 삘갱이 모셔다 수석질 시키고 있는디요? 앗쌀하게
종북담단수석자리고 만들고 반미담당 수석자리도 만들어 이놈저놈 불러다 감투한개씩 씨워주고 빨리 망해뿌리랑께로… 삘갱이들이 데모만 하면 뻘벌떠는 오줌싸개가 먼 대통령질 하고 있다요? 개엄령 발동할
용기없으면 방빼고 나오랑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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