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대한민국 혁명의 본산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혁명의 본산이다
  • 하봉규 논설위원(부경대 교수)
  • 승인 2015.03.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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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에서 "시국대강연회(2015.4.7)"가 개최되는 것은 상징이자 전조이다

▲ 지만원 박사, "광주 5.18은 북한특수군의 대남공작이었다" 지난 3월19일 서울 프레스센타 국제회의장, '5.18 역사의 진실 대국민 보고회'에 애국 시민 600여명 참석 대성황 모습 ⓒ뉴스타운

대한민국의 해양수도 부산은 대한민국의 역사중심 도시이다. 한반도가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세계와 호흡을 하게된 개국(개국)의 원도이자 건국 직후 6.25 국난의 임시수도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전환점에서는 항상 주요 무대가 되었다. 4.19 의거, 5.16 혁명, 10.26, 87 민주항쟁의 중심무대였다.

부산이 한국 현대사의 중심이 된 것은 오랜 전통과도 관계가 깊다. 주지하다시피 부산은 개항후 급성장한 신흥도시로 경상우(남)도에 자리 잡고 있다. 경상우도는 옛 가야의 땅이 었다. 삼국시대의 정립과 함께 가야는 신라에 복속되거나 일본(도래인)으로 가야하는 운명이었다. 이후 이곳은 독특한 문화지형 즉 중심이 아닌 주변지에 대한 의식이었다.

고려말 개혁의 선봉장이었던 신돈의 출사지가 경상우도이고, 영남사림의 양대산맥을 이룬 조선중기 대학자 남명 조식의 발자취가 어린 곳도 이곳이다. 남명은 조선중기 사화 등 비정으로 끝내 출사하지 않고 은거하며 미래를 위해 제자들을 키워낸 실학의 비조이다. 조식의 사후 그의 문하생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인홍, 곽재우 등 수많은 의병장들이 되어 구국의 길에 동참한 것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가야의 땅과 전통이 키워낸 지역문화는 직정성과 의분이다. 영원한 역사적 변방으로 중심(서울)에 대한 거부권과 해양의 열린 환경은 자연스럽게 부산을 정치 변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마산소요는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재점화되어 봄과 함께 북상하여 4.19로 귀결되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구상이 구체화된 것도 빈곤과 정치부패 척결을 위해 군사혁명을 설파해온 지역인사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5.16 군사혁명으로 경상우도는 이후락, 박종규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조국근대화의 과정에서 울산, 창원 등 산업 신도시를 건설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에 대한 거부권 정서는 상존했다. 바로 야당의 중심인물이자 후일 실패한 대통령 김영삼(YS)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유신말기 박정희 정부의 패착인 김영삼 총재에 대한 정치적 탄압은 마침내 부산과 마산을 흔들었고 부마사태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10.26이 일어 났고 신군부가 나타났다.

하지만 중앙에 대한 거부 정서는 이후 부산은 대표적인 야당도시로 자리매김했고 이에 따른 불이익도 감수하게 되었다. 이후 부산은 "잃어버린 30년"으로 '제2의 도시'란 자부심도 상처를 받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두번(YS와 노무현)에 걸친 지역출신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지역 정서는 변하지 않고있다.

부산의 대표적 국립대학의 하나인 부경대학교에서 "시국대강연회(2015.4.7)"가 개최되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자 전조이다. 부산은 과거 민주화의 중심도시였으나, 이미 민주화는 방향과 내용(성과)에서 실패했다. 잘못된 민주화에 대한 본질적 비판과 새로운 방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구체화되고 있다. 이미 부패와 종북 등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국민적 여망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부산은 세계로 열린 민족의 문이다. 세계와 미래를 향한 몸짓은 혁명수도 부산에서 재점화되어 4월의 봄과 함께 북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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