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5.18로 집단사기 그만 치고 석고대죄 하라
광주는 5.18로 집단사기 그만 치고 석고대죄 하라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3.08 23: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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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꼭두각씨 노릇하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북한특수군 활약을 자기공로로 가로챈 세계 최고수의 5.18사기꾼들

▲ ⓒ뉴스타운

전라남도와 광주가 온갖 파렴치범들의, 상종하면 뒤통수치는 특수 인종들의, 소굴이라고 소문이 나 있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들 광주 사람들이야 말로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는 날사기꾼들이다. 

이들은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와서 저지른 게릴라 작전의 공로를 자기들의 민주화 공로로 둔갑시켜 첫째, 타 지역 국민이 낸 세금으로 평생 자식들까지 호강을 시키는 중이고, 둘째, 빨갱이 세력에 그 공로를 팔아 민주화의 성지라는 새로운 족보를 날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역사를 짓밟는 북한의 총독부 노릇을 하고 있다. 광주 말고 세계의 그 어느 나라 집단이 이런 기막힌 사기를 칠 수 있을까?  

이런 사기집단들과 한 하늘 아래 섞여 산다는 것이 참으로 불안하고 소름끼친다. 이는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최 고수의 사기집단이다. 5.18 유공자들은 1990년에 지금의 돈 가치로 1인당 수억-수십억씩의 목돈을 받고 그것도 모자라 그 후 지금까지 매월 연금과 학비 의료비 등 두툼한 공짜 보따리에 가산점 혜택까지 누리고 있으며, 광주의 썩은 영혼들은 이런 사기행위를 집단적으로 호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이런 고약한 지역, 고약한 집단은 광주 말고 없을 것이다.  

광주는 북한의 총독부로 군림하며 집단사기 치는 중

한국 사회를 뒤집어 놓고 세계를 요란하게 만들었던 광주의 5.18, 거의 모든 국민들이 신성한 민주화운동이라고 믿었던 그 5.18, 그것은 세계 최고 그리고 최대의 집단 사기였다. 5.18은 나의 12년 동안의 끈질긴 연구로 북한특수군 600명이 저지른 게릴라 작전이었음이 명백히 밝혀졌다. 이런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광주사람들은 나에게 천벌을 받고도 모자랄 고약하고 악랄한 테러-학대 행위를 계속해 왔다.  

"통일돼서 북한 비밀자료 나온다면 모를까, 무슨 수로 그걸 알겠어?"

아는 척하는 시건방진 사람들은 말한다. "아, 그거 탈북자들의 카더러 통신이야" 이런 사람들은 빨갱이이거나 무슨 이유로든 5.18을 옹호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통일이 돼서 북한의 비밀자료가 나온다면 모를까 그 전까지 그걸 무슨 수로 알겠어?" 이런 사람들은 분석이라는 걸 학문적으로 배우거나 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TV정보가 실력의 전부인 건달들이다. 보자기를 펴 보아야 비로소 사실을 파악 한다면 수없이 많은 분석학자들은 왜 밤낮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가? 이제 더 이상 과거에 각자가 알았던 5.18 상식을 말하지 말라. 그건 모두 북한의 대남공작부가 만들어낸 유언비어들이다. 아직은 이 나라에서 발굴된 5.18의 진실은 여기에 기재된 것, 이 하나 뿐이다.    

나의 5.18 분석 요령

분석이란 복잡하고 방대한 자료들로부터 진실을 간단명료하게 뽑아내는 고도의 연금술에 해당한다. 나는 18만쪽의 수사기록과 여기에 더해 5.18 유공자들이 쓴 자기 고백서, 유네스코에 위탁된 5.18 재단 자료, 통일부의 북한 분석 자료, 북한이 발행한 자료 등을 다루어 왔다. 그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분석하였는가? 여기에서 분석 능력이 판가름 된다. 패러다임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 복잡한 자료들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다. 복잡한 자료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분석이다. 5.18에 대한 최종결론을 이끌어 낸 데에는, 독특한 분석 개념과 요령이 있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5.18 분석의 핵심 전략은 광주 소요 10일을 분해한 것

나는 10일간의 광주사건을 3등분 했다. 10일간의 소요를 그냥 바라보면 아무리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다, 그냥 복잡한 소요로만 보인다. 그러나 상항들을 처음 4일(5.18-21), 그 다음 4일(22-25일), 맨 나중의 2일(26-27일)로 분해해 놓으면 실체가 확실하게 보인다.  

< 5월 18-21일 상황 >

처음 4일(18-21)은 북한특수군의 도깨비 작전(내가 붙인 명칭) 기간이었다. 계엄군이 북한군의 도깨비 작전에 말려들어 이리 저리 매타작을 당하다가 21일에 광주시를 포기하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면서 외곽으로 달아 났던 기간이다. 

남한의 대학생들은 당시 서릿발 같은 공안분위기에 짓눌려 모두 숨어 있었다. 광주의 운동권 지휘자들은 사전 체포됐거나 숨었고, 광주의 대학생들도 다 숨었다. 이는 5.18 유공자들 스스로도 밝힌 내용들이다. 이런 시기에 경찰보다 더 무섭고 일반 군인보다 더 무서운 공수부대 주둔지를 200명의 집단이 찾아가 대학생 행세를 하면서 돌멩이로 공격한 사실이 검찰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이는 대학생을 가장한 북한특수군일 수밖에 없다.  

학생으로 위장한 더 많은 대학생들은 광주의 파출소들부터 불태웠다. 연기기 나면 사람들이 자연 모이게 된다. 모인 사람에게 유언비어를 뿌렸다. 파출소에 불을 지르고 경찰을 공격하고 유언비어를 뿌리는 것은 이 나라 공산주의 폭동의 기본 공식이다.  

공수부대 요원들이 3-4명씩 거점들을 지키고 있을 때와 대대 단위로 집결해 있을 때의 도깨비 작전 방법이 재빠르게 변환했다. 이에 대한 전술은 북한의 5.18 책에도 기록돼 있다. 이 기간의 작전 주도권은 북한군이 잡았고, 공수부대는 피동적으로 목숨 부지하기에 급급했다. 대대장들은 상부에 철수시켜주거나 실탄을 달라고 아우성 쳤다. 어느 중령 대대장은 현장실정을 몰라준다며 상관인 대령에 욕설까지 했다. 5월 20일 밤에서부터 21일 오후 5시까지 공수부대는 도청과 전남대에서 완전히 포위돼 있었다. 공수부대가 곤봉으로 때린 것은 첫날의 일이었고, 5월 19일부터는 공수부대가 일방적으로 매타작을 당했다.  

북한특수군 600명 중 300명은, 현역 사단인 제20사단 사령부가 08시 정각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하여 매복하고 있다가 급습했다.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하여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했다. 그 지휘부 차들을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몰고 가 "이 봐라, 잘 보이지?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0여대에 키를 꽃아" 명령했다. 그리고 그 600명이 동시에 그 많은 차량들을 끌고 나왔다. 광주의 양치치 계급들이 어떻게 600명이나 공장에 집결해 장갑차를 4대씩이나 동시에 몰고 나가고 370여대의 군용트럭을 동시에 몰고 나가겠는가?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들 600명은 차들을 몰고 각자가 사전 숙지한 길을 따라 전남 17개 시군에, 그 위치가 '대외비'로 숨겨져 있는 44개의 무기고를 향해 달려가, 불과 4시간 만에 2개 연대 분의 총기와 탄약 등을 노획하여 광주공원에 쌓아놓고 사격훈련을 시켰다, 무기고를 향해 달려갈 때는 눈을 감고 가듯이 곧장 달려 가더니 광주로 복귀할 때에는 여러 차례 길을 믈었다. 유동삼거리에 와서도 유동삼거리가 어디냐 묻기도 했다. 이 자료는 탈북자 자료가 아니라 검찰 자료와 국정원 자료 그리고 유네스코 자료에 있다. 이런 600명 집단을 식당 보이, 구두닦이. 넝마주이들이 구성할 수 있으며, 이런 작전을 넝마주이들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세상 사람들에 물어보라.    

5월 21일 오후 5시, 계엄군이 쫓겨나가자마자 북한특수군은 새벽시간까지 교도소를 6차례에 걸쳐 공격했다. 이는 북한으로부터 받은 다급한 지령이었고, 이 무리한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치열한 공격전을 감행했다. 공수부대는 호 속에서 쏘았고, 북한군은 노출된 맨몸으로 공격하다가 많은 손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그들의 증거인멸 수칙에 따라 소멸됐을 것이다. 

8톤트럭 분의 TNT를 순식간에 폭탄으로 조립하여 도청 지하실에 쌓아놓고 이를 폭파해 광주시를 날려 버리겠다고 정부를 위협했다. 이런 조립능력을 가진 사람은 전라도 지역 계엄군에도 단 한사람, 배승일 문관 밖에 없었다. 5급 갑의 배문관은 그것을 해체 하는데 이틀이 걸렸지만 북한특수부대는 조립하는데 순식간이었다.   

이런 고도의 게릴라 작전은 여러 달 동안 치밀하게 사전계획된 것으로, 누가 봐도 콩가루처럼 따로 노는 광주의 부나비들이 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었다. 광주 부나비들은 그들 스스로 인정했듯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질도 없었다. 만나면 논쟁으로 다투는 집단이고 그들의 증언대로 총을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집단이다. 예비군 출신이 단 1명도 없었다.   

시위에 앞장섰다가 죽었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희생자들을 모두 합해야 불과 404명, 600명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사진에 찍힌 도깨비들의 날렵하고 단단한 모습(사진첩은 3월 19일 배부)과는 어울릴 수 없는 양아치 계급들이다. 결론적으로 처음 4일 동안의 상황은 확실하게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주도권을 쥐었던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 5월 22-25일의 상황 >

그 다음의 4일(5.24-25)은 이른바 "수습대책 위원회"가 가동됐던 기간이다. 광주 유지들이 도청에 모였다. "저 무서운 무기들을 반납하고 계엄당국과 협상을 하자"며, 그 무기들을 탈취한 날랜 도깨비 대학생들을 애타게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얼굴을 보일 수 없는 집단이기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그들 대부분은 이 기간에 복면을 하고 거리에 다니며 구경하는 광주 시민들에게 다시 총을 들라고 설득하고 다녔다(사진첩 참조).  

대학생들을 애타게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동그래 나타난 대학생은 겨우 21세의 전남대 학생 김창길 이었다. 운동권이 아니라 매우 착한 학생이었다. 이들 어른들과 몇 몇 대학생들은 도청에 모여 매일 갑론을박하며 자기들끼리 싸우며 고성을 교환했다. 어른들은 마치 공무원 출퇴근하듯 넥타이 매고,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때 퇴근했다. 이들은 4일 동안 아무런 행동지침도 도출해 내지 못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광주사람들의 진면목이다. 위 도깨비들의 과단성 있는 집단적 군사행위외 비교해보라.

< 5월 26-27일 상황 >

이렇게 서로 다투고 있던 상황은 5월 25일 밤 늦게, 윤상원(본명 윤개원)이 나서면서부터 일단 정리했다. 윤상원은 5월 21일까지는 이리 저리 숨어다니다가 22일에야 처음으로 도청에 나타났다. 그런데도 그는 좌익사회에서 5.18의 지도자요 영웅으로 불렸다. 25일, 그는 26세의 조선대 학생 김종배를 데리고 왔다. 김종배는 도청에 먼저 들어온 부나비들에 낯선 얼굴이었다. 이런 김종배가 하루살이 "항쟁본부"의 총사령관이 된 것이다. 또 다른 26세의 청년 박남선, 그는 골재채취 화물차 운전수였다. 이 박남선이 윤상원의 뜻에 따라 온건파 시민들을 권총으로 위협해 추방시켜 버렸다. 도청에는 이제 강경파 추종자들만 남았다.  

사령관이 된 김종배는 운동권도 아닌데 어디에서 들었는지 미항공모함이 부산에 왔는데 10일 동안만 버티면 미국이 자기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공작냄새가 나는 정보를 입수해 가지고, 도청에 모여든 개념 없는 20대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결사항전을 선포했다. 바로 이 결사항전 선포가 27일 새벽 1시의 공수부대 탈환작전을 유발시켰던 것이다.  

5.18에서 가장 악질이었다는 범인들은 다 이 결사항전 기간에 도청에 있던 조무라기 들이었다. 1980년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이 다 이 마지막 2일동안 도청에 있었던 조무리기 들이었다. 계엄군의 재진입 작전 시 사망한 17명, 이들의 대부분은 어린 10대들이었다. 이들은 '상위급 5.18 유공자들'이 스스로 증언록에서 밝혔듯이, 개념 없이 하나씩 도청에 들어 온,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었고, 이들 또한 하루 종일 입씨름만 했던 콩가루 들이었다.  

이 마지막 2일 동안에 처음으로 구성한 "기동타격대", 그 구성원 30명도 10대와 20대 초반의 무개념자들이었다. 기동타격대장 윤석루는 겨우 20세의 성질급한 구두공  아이였다. 이 애송이 윤석루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1981년의 대법원 재판에서는 결국 이 마지막 2일동안 도청에 있었던 사람들이 5.18의 주동자들인 것으로 판결됐다. 이들이 지금은 애국자로 둔갑해 가장 위대한 5.18 유공자들이 된 것이다. 위에서 대강 보았듯이, 이들 어린 사람들은 5.18 민주화 시위대를 구성하였던 사람들이 절대 아니었다.

이렇게 나누어 놓고 보니까 광주의 부나비들이 선명하게 보이고, 도깨비 게릴라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갖가지 정보들을 보태면 분석이 더 화려해지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두개의 5.18재판 모두 쓰레기, 이런 판검사들이 역사와 인권을 재단하는 것이 비극

1981년의 5.18 재판과 1997년의 5.18 재판 모두가 다 광주인들이 구성한 시위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1981년의 대법원은 도청의 마지막 날을 지켰던 위 콩가루 부나비들을 놓고, 시위를 지휘한 주동자들이라 판결했고, 1997년의 대법원은 이 부나비들을 놓고, 전두환으로부터 헌법을 지켜내기 위해 결집한 헌법기관이라고 판결했다. 두 개의 판결문은 코미디이며 참으로 부끄러운 쓰레기들이다. 전두환 등은 무죄다. 대한민국 판검사들의 이런 저급한 분석 능력에 의해 역사가 재단되고 국민 인권이 재단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광주시민들, 이제는 사기 그만 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하라

그리고 정말로 광주사람들에게 호소 한다. 같은 한국에, 같은 국민으로 살고 있으면서, 타 지역 국민들을 사기쳐, 당신들 일생은 물론 자식들까지 호강시키는 것은 인간 도리가 아니다.

광주사람들 중 5.18 민주화 시위대를 구성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눈을 씻고 찾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것인가?  

광주사람들 중에서 처음 4일 동안의 도깨비작전을 지휘한 사람이 있거나 참여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이런 사람이 보상을 해달라 1990년에 나섰다면, 1인당 최소 10억의 보상금을 받았을 터인데 왜 그런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가? 경찰 15명을 닭차에 가두고 포로로 잡은 19세의 윤기권이 2억을 받지 않았는가.  도깨비작전은 이에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5.18 유공자들 스스로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의 "항쟁"을 지휘한 사람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들은 광주의 명령을 받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었다고 고백까지 하지 않았던가. "항쟁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광주를 떠난 다음 도청을 지킨 사람들은 대학생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닌 바로 우리 노동자"라며 큰소리 치지 않았던가.   

그만큼 사기를 쳐서 이웃 국민들을 우려 먹었으면? 그것도 과분하다 생각하고 광주와 그 후손들의 명예를 위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기 바란다. 그리고 양심 있는 집단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야 죽어서도 자식들을 괴롭히는 잡귀가 안 되고, 반듯한 귀신이 되지 않겠는가. 당신들은, 내가 내린 이 결론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북한의 꼭두각씨 노릇하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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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ukkey 2015-03-09 02:30:54
한국의 최대 사기꾼은 전라도 사람을 우롱항 김씨입니다.
그사람한테투자하고 덕본사람 손들어 보세요,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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