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가된 종북 좌파 세력
마피아가된 종북 좌파 세력
  • 하봉규 논설위원(부경대 교수)
  • 승인 2015.04.24 08: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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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사태는 제2, 제3의 5.18을 낳고 있는 것이다

▲ ⓒ뉴스타운

마피아(MAFIA)는 세계적으로 집단범죄의 대명사 이다. 하지만 마피아의 초기 역사를 보면 이탈리아 남섬 시칠리아의 이민족지배에 대한 항거에서 출발했다. 당시 시칠리아를 점령했던 프랑스 군인들의 성적 학대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신의를 존중하는 사나이들"로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권 개입, 살인, 마약 밀매 등을 자행하는 사회범죄 조직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의 한축을 구성하는 야권의 종북 세력들은 자체가 '한국병'이자 마피아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출발은 민주화로 출발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근본은 동학난과 빨치산에 기원했다. 한국 민주화의 병적 지향은 대한제국 말기 외세침략을 구실로 봉기 했으나 실상은 문맹과 무지성의 아시아적 농민봉기로 약탈과 파괴를 자행하여 지역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던 동학난이 직접적 모델이었다.

또한 더욱 직접적인 모델은 이승만 독재타도를 내세웠던 공산 빨치산이었다. 인민공화국이란 공산화 운동은 명목상 농민과 노동자의 천국을 지향하고 미제국주의의 주구인 이승만 정부는 척결되어야 하는 적이었다. 아시아형 공산주의 이념이 갖는 편향성과 적대성은 무지한 사회적 약자들을 현혹시키고 오도했다. 6.25는 한편으로 이들에 대한 기대 였고 패배 였다. 한국 동란이 한민족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위기를 규정하고, 위기의 원인으로 가진자에 대한 증오와 이들을 제거하려는 저열한 아시아적 공산당 운동의 폐해를 가르쳐준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6.25)은 무위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영토적으로 외교적으로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 과정에서 한국은 세계 최강 미국과 군사동맹의 관계로 호국의 틀을 획득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은 참으로 놀라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조야를 설득하고 기적적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하지만 빈곤과 무지의 한반도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대의제를 뿌리 내리는 것은 명백한 한계였다. 이승만 정부의 실패는 현실과 이상, 변방과 중심의 격차였던 것이다.

5.16 혁명은 한국 역사 나아가 세계사의 기적이었다. 오랜 문민(사대부)우위의 전통에 기반한 가난과 게으름, 수동성의 사회에서 진취적 성향인 군인들이 조국 근대화의 과제를 수행한 것이다. 초기 실행된 반기업가 정책, 화폐 개혁,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등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으나 실패를 인정하고 수출총력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자원과 기술이 빈약하고 변경에 위치한 한국의 산업화는 대규모 해외자본유치 등 외부 효과가 관건이었다. 군사정권 초기 미일의 비협조 속에 독일을 경락하는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마침내 1960년대 중반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전 참전으로 건곤일척의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의 중재로 사작된 한일국교정상화는 대학가 소요 등 정치적으로 위기를 가져 왔으나 한미일의 대공산협력체제를 실현했다. 또한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 유입된 8억불의 자금은 빈한한 한국의 년간 수출액의 3-4년에 이르렀다. 월남전 참전은 또하나의 날개였다. 6.25로 폐허가된 나라에게 이국땅에서의 참전은 한미군사동맹의 실질적 구현이었고, 세계최대시장 미국의 무역 최혜국 대우로 불과 10년만에 대미 수출은 100배로 성장했다.

하지만 건국과 조국 근대화의 위대한 업적도 동학난과 빨치산의 어두운 전통은 수시로 나타났다. 4.19로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자 학원가에는 남북화해(교류)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5.16 이후엔 반 군사독재 운동이 줄기차게 나타났다. 유신체제가 붕괴되자 반체제 운동은 마침내 5.18(광주사태)로 비화 되었다. 과도기적 상황을 이용한 북한의 치밀한 대남공작이 동학난과 빨치산의 잔재가 남아 있는 지역적 협조 속에 미증유의 성공을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더큰 성공은 이후 한국을 강타한 민주화 였다. 선진제국에선 자유민주주의란 결코 자유의 신장이 아니라 법익(법질서)의 제한 속에 자아실현의 자유라는 대원칙이 존재한다. 좋은 예가 파시즘을 폐기하고 전후 밀(J.S.Mill)의 자유론을 헌법에 명기하고 기본적 헌법가치로 정한 독일(당시 서독)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민주화=단임제이고 자유의 무한질주였다. 이러한 무원칙과 반지성은 결국 민주화 10년 만에 IMF와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종북 정권으로의 정권교체는 그야말로 한국의 자체붕괴로 이어졌다. 종북 정권의 일련의 친북 정책은 탈냉전 이후 정권의 사활을 핵개발에 둔 북한이 초래한 국제고립을 탈피하고 막대한 자금지원으로 핵무장을 지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종북 정권의 탄생이 야기한 보다 심각한 결과는 종북 세력이 민주화의 이름으로 국가적 정통성을 획득하고 나아가 전교조, 민주노총, 시민단체, 종교단체, 언론계 등 무한 증식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종북기간 10년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반공국가이자 성공(근대화)국가를 지탱해온 국가 정체성을 파괴한 것이었다.

최근 '세월호 사태'와 '성완종 정국'은 가장 좋은 예이다. 김영삼 정부시절 군사반란으로 규정된 계엄군과 반대로 5.18(광주사태)는 역사적 면죄부를 받았고, 종북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반정부 무력폭동은 헌법 가치인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유공활동으로 변질되자 보수 정부의 약점을 파고든 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사태는 제2, 제3의 5.18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천문학적 부정부패로 알려진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성완종 사건이 표면화 되자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북괴를 비호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내부적으로는 부정부패 등 마피아적 멘탈리티를 지닌 종북 세력에게 기회는 또 다른 위험을 맞고 있다. 비록 반지성과 무지의 대한민국이지만 "잃어버린 20년"의 근본 이유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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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인근소재교수 2015-04-25 14:38:19
흔한 대학교수의 편향적 사고의 문제를 나타내는 군 ㅋㅋㅋ 일베하나?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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