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5.18의 북한특수군(2)
사진으로 보는 5.18의 북한특수군(2)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3.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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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광주시민은 10대 학생들과 개념 없는 20대 부나비들이었다

아래 두 장의 사진은 제20사단 사령부 차량부대가 5월 21일 오전 08시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 중의 극비정보를 입수한 북한특수군 300명이 매복을 하고 있다가 8시 정각에 20사단 차량부대가 톨게이트를 통과하자 화염병과 몽둥이 등을 가지고 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한 지휘부 지프차를 무려 14대나 탈취한 후 이를 몰고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 자동차 공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차량부대는 혼비백산하였고, 20사단 병사 1명은 실종되었다가 며칠 후에 복귀하였다. 실제로 북한특수군 신분으로 광주 작전에 참전하였다가 북으로 돌아가 영웅대접을 받다가 탈북한 가명 김명국은 2013년 3월 15일 방송된 채널A에서, 광주에 파견된 북한특수군은 몽둥이 전문가와 정치공작 전문가들도 끼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좌측 사진에서 지프차 방향을 통제하는 2명의 북한군은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있다.

이들이 이동 중인 20사단 지프차를 터는 고난도 정보 및 습격작전을 감행한 이유는 사단 지휘부 차량을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져가야, 그 기세에 눌린 공장 간부들이 그들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 ⓒ뉴스타운
▲ ⓒ뉴스타운

5월 21일 09시, 아시아자동차 공장에는 위 300명과 또 대형버스 5대를 타고 온 또 다른 300명이 합세하여 총 600명의 특수군이 집결했다. 이들은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의 키를 확보하여 동시에 끌고 전남 17개 시군의 비밀장소들에 산재해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달렸다.

가장 먼저 털린 무기고는 12시, 가장 나중에 털린 무기고는 오후 4시였으며, 총 5,208정의 총기, 탄약, 수류탄 등을 탈취했다. 이 자료는 북한이 1985년에 발간한 ‘광주의 분노’ 내용과 일치한다. 아래 사진들은 수건으로 비표식을 하고 장갑차와 일반 트럭을 몰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비표식은 이마와 목에 흰 수건을 두룬 것이었다. 사진들을 보면 300명씩 2개 작전조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상황일지들에는 300명의 대학생은 광주공원, 또 다른 300명은 유동삼거리 부근을 본거지로 하고 있었다.

▲ ⓒ뉴스타운

아래 두 장의 사진은 중화기를 자유자재로 자신 있게 다루고 있는 모습이다. 좌측 사진은 장갑차 위에 설치돼 있는 기관총을 사격 준비태세로 유지한 채 자신있는 모습으로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손에 낀 장갑은 석면 재질로 된 특수장갑이며 이는 뜨겁게 달아오른 총열을 교환할 때 사용한다. 탈북자들은 이 사람을 광수라고 부른다. 북한에 있을 때 이 사람이 달리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박수들을 쳤다고 한다.

우측 사진은 M203 유탄발사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소지한 것으로 보이는 포즈다. 가슴과 배에는 무거운 수류탄 사이즈의 총류탄들이 가득 들어 있는 실탄 주머니를 차고 있다. 무거운 중화기를 파지하고 있는 손은 매우 단련된 우악스런 손으로 보인다.

▲ ⓒ뉴스타운
▲ ⓒ뉴스타운

좌측 트럭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과 우측 사진의 멜빵 옷을 입은 사람의 걸음걸이는 몸에 밴 북한식 제식동작이다. 두 사람 모두 이마에 비표식을 하고 있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광주시민들의 포즈와 이들의 자세가 확실하게 비교된다.  
 

▲ ⓒ뉴스타운
▲ ⓒ뉴스타운

5월 21일 오후 5시, 계엄군은 광주의 부나비들을 이용한 북한특수군의 기막힌 압박 작전에 손을 들고 구사일생으로 포위망을 뚫고 공포를 발사하면서 광주시 외곽으로 쫒겨갔다. 이때 계엄사령부는 모든 장병들에 자위권을 행사하라고 명령하였고 장병들은 실탄을 처음으로 소지하게 되었다.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의 광주에서 발생한 게릴라 전투는 특수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일관됐다.

여기에 참여한 광주시민은 10대 학생들과 개념 없는 20대 부나비들이었다. 늘 광주시민들과 경찰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아온 양아치, 구두닦이, 껌팔이, 구두공, 석공, 식당보이 등 무려 59개 종에 달하는 말단계급들이었다. 이들은 세상 한번 뒤집는 것이 막연한 소원이었다. 특수부대가 건물과 차량과 파출소를 불태우고 부수자 새 세상 만났다는 듯 신이 나서 이들에 부화뇌동했다. 사망한 166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계엄군이 후퇴하자 5월 21일 밤부터 광주시는 북한군과 양아치 계급의 손으로 넘어 갔다. 양아치들은 민간인 집에 들어가 강간하고 금품을 강탈하고 살인을 했다. 날이 새고 5월 22일이 되자, 텅 빈 전남도청에는 광주 유지들이 속속 들어왔다. 이들은 오자마자 무서운 무기를 반납하고 계엄군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의 일치를 본 후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무기를 반납하기 위해 그 무기들을 탈취해온 날랜 대학생들을 찾았다. 하지만 계엄군이 사라지자 그들은 얼굴 노출을 꺼려 일부는 복면을 하고 일부는 숨어 있었다. 부나비들도 할 일이 없어졌다. 대학생들을 애타게 찾자 가장 먼저 21세의 전남대 학생 김창길이 나타났다. 이 학생은 어려도 의협심이 있고 정의감이 강했다. 김청길은 무기반납을 위해 전라도 계엄사령부와 접촉했고, 도청에 쌓인 8톤차량 7대분의 조립된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분해 해체하는 데 계엄군의 힘을 빌렸다.

이들 수습대책위는 넥타이를 매고 출퇴근을 하였으며, 5월 25일 밤까지 협상내용을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윤상원이 이끄는 20대 강경파들에 의해 쫓겨났다. 이들 20대 강경파들 역시 5월 25일 밤, “계엄군과의 강경투쟁”을 선언한 이후 갑론을박하다가 계엄군의 철퇴를 맞아 죽거나 항복했다.

결국 광주폭동 10일은 4일간의 북한특수군 작전기간과 광주시민에 의한 6일간의 갑론을박 기간으로 나뉘었다. 처음 4일간의 북한특수군의 작전은 세계 초특급의 특수부대나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이었고, 광주시민들이 주도했던 6일간은 광주사람들이나 보여줄 수 있는 갑론을박의 이전투구 기간이었다.

▲ 눈과 입 부분이 뚫린 사람이 지휘자 같다 ⓒ뉴스타운
▲ 이마에 비표, 총을 거꾸로 멘 두 명의 특수군 ⓒ뉴스타운
▲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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