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세대를 화나게 만든 종북좌파의 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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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세대를 화나게 만든 종북좌파의 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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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시위를 방치한 공안당국도 비판 받아 마땅

▲ ⓒ뉴스타운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 세대가 살아왔던 그 시절 부모세대들에게는 공통된 걱정이 몇 개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가족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느냐는 절박감과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켜 가난을 대물림 해주지 말아야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비록 움막이라도 좋으니 집이라도 한 채 장만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당면한 걱정꺼리는 3월 이후에 다가올 보릿고개를 어떻게 넘어갈까를 걱정하는 것으로 새해 일 년을 설계했다. 같은 동네나 마을에 사는 이웃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난했기에 보리가 알곡을 맺는 봄부터 여름까지 가족의 생계문제가 당면한 최대 걱정거리였던 것이다. 그만큼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그 시대 부모들이 겪었던 절체절명의 과제이자 해결할 숙제였다.

궁핍하기 짝이 없었던 그 시대에도 정치판은 여전히 시끄럽기는 했지만 먹고 살기에 급급한 일반 국민들로 부터 관심은 크게 받지 못했고 정치권 그들만의 리그전일 따름이었지만 극심한 정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길거리에서 펼치는 가두 정치가 있었고, 국회에서는 육박전도 비일비재 일어났으며, 민주화 시위도 있었다. 이러한 정치권의 소식도 일반 국민들의 귀에는 그저 오랄콤(oral-com)을 통해서만 간간히 일려졌을 뿐이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전파매체 수단이 원시적이었던 탓에 일반국민이 정치판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신문을 받아보는 가정도 드물었고, 전화나 라디오를 소지한 가정도 소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어쩌다 마을에 콘솔 형 흑백TV를 구입한 가정이 나타나면 그 집은 마을 극장이 되었을 만큼 정보와는 멀리 떨어진 사회였고 당시의 국민들은 그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일만하는데도 힘이 부쳤다. 당시의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직장이나 일터에 나가 조금씩 늘어나는 저축이나 나날이 달라지는 생활 윤택현상에 더 관심을 보였고 자식의 학업에 열의를 더 보탰다. 그만큼 삼시 세끼를 거르지 않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내 자식들에게 이 같은 고생을 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제가 정치를 우선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비록 야당이 정부에 맞서 반정부 투쟁을 하고 민주화를 외치기는 했지만 북한의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배격했고, 안보에 대한 신념만큼은 어느 정도 확고했다. 그 당시 민주화를 외쳤던 원로 정치인들을 보면 아무리 강골야당이었다고 해도 안보와 반공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국가편이었다는 것을 여러 원로 정치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물론 사상을 철저하게 감추고 지하로 뺑소니 친 좌익세력도 있었지만 이들은 전부 지하로 잠수를 탔기 때문에 적어도 양지에서는 이들의 활동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종북이라는 단어는 생겨날 수조차 없었고 또한 시대적 환경이 좌경사상을 용납하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국가는 하루가 다르게 산업화에 따른 발전상을 이루게 되고, 자식들은 부모가 겪은 고생을 모른 채 자라나 어느 듯 1980년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당시에는 칼러 티브이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전화 보급율이 절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언론을 접하는 빈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교적 가난을 모르고 자란 세대들의 일부는 대학에 들어가서 전두환 독재정권을 타도하는 운동권 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학생 운동권에는 각각 다른 이념을 추종하는 분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수많은 계파로 나누어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의 전술도 직파간첩 파견 위주에서 남한의 운동권을 이용하는 전술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보수 일각에서 나온 분석이기도 했다.

운동권의 활동과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하는 시점과 때를 같이하여 북한은 검거가 되었을 때 증거가 명백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대남직파간첩을 침투시키는 방법을 지양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운동권 속에 직접 침투하는 전술 변경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자생적인 주사파에게는 김일성 교시집을 나누어 주어 학습을 통해 주사파가 되기를 세뇌하고 머리가 좋은 운동권에게는 김일성 장학금을 수여하여 국가고시에 응시하여 관료집단에 숙주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전술의 변화를 꽤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북한이 노린 것은 국가 임용고시중에서도 주로 사법고시를 활용하여 법관 임용을 교시(敎示)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일 이때 뿌리가 내린 숙주가 퍼져나가 민변이 탄생하는 토양이 되었거나 법원에 종북성향 판사들이 침투했을 근거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전문가들도 상당수 있다.

지난 연말에는 서울 시내 한 가운데서는 한 줌도 안 되는 극단의 종북좌파 패잔병들이 서울시내 중심가를 휘젓고 다니면서 광란의 굿판을 벌였다는 사실을 모 언론은 '저주의 밤이 된 제야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상세하게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이들은 대통령을 향해 온갖 막말과 저주의 욕설을 퍼 부우며 꽹과리를 치고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고 하니 통진당 해산을 반대하는 종북 잔당 세력의 발악이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위체질이 상습화된 진보연대 등과 같은 극렬 종북좌파단체들이 저주의 굿판을 벌였다고 한다.

특히 연사로 등장한 좌파연설원은 저마다 튀는 욕설과 저주의 발언으로 시선집중을 유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성난 시민들의 항의와 비판뿐이었다고 한다. 이날 광란의 굿판을 주도한 몇몇 단체들은 통진당 당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이석기 추종세력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여 차분하게 송구영신을 맞이하러 나온 시민들에게 엄청난 불편을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공안당국에서 이날 있었던 불법시위자에 대해 어떤 위법조치를 했는지 들려오는 뉴스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소식을 덕수와 같은 세대들이 보고, 들었을 땐 가슴에 피멍이 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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