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인 폭격, 자애로운 점령
인도적인 폭격, 자애로운 점령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21.05.20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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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는 적(敵)이며 테러집단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적은 비겁하다고 강하게 비난을 한다. 그들은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 (이스라엘에) 도발을 한다고 몰아세운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굴레를 무기로 삼는 한 “평화는 위선적 평화”에 불과할 것이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 공폭 (사진 : 유튜브 캡처)
하마스는 적(敵)이며 테러집단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적은 비겁하다고 강하게 비난을 한다. 그들은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 (이스라엘에) 도발을 한다고 몰아세운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굴레를 무기로 삼는 한 “평화는 위선적 평화”에 불과할 것이다.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 공폭 (사진 : 유튜브 캡처)

군사력에서 주변 국가의 것을 다 합친 것조차 압도하는 이스라엘군이 자신들이 높게 쳐 놓은 장벽 안에 갇힌 가자지구(Gaza Strip)안의 약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지상군 투입에 대대적인 공폭(空爆)을 단행, 전투 9일 만에 218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이스라엘 측에서는 10여명이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하마스) 전투 중지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혀 중단할 뜻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설득에 군사공격은 중단할 뜻이 있음을 비쳤다고 복수의 외신들이 전하고는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이나 하마스 모두 결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듯하다.

가자지구를 실질 통치하고 있는 무장 집권 세력인 정파(政派) 하마스(Hamas : 헌신 혹은 열정의 뜻)는 테러집단이며, 이들이 만든 지하터널을 통해 물자를 드나든다며 이들의 불법적인 활동을 근절시키기 위해 하마스에 대한 공격 감행을 계속하겠다는 게 네타냐후 총리의 설명이다.

천장 없는 감옥이라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하터널을 뚫어 외부와의 접촉으로 생필품 등을 가져와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구상에 이 같은 천장 없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장벽안 사람들의 거주지를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공습, 공폭을 계속하면서, 민간인 피해는 없도록 하고 있다는 이스라엘 총리와 그 국방부의 주장만 있다.

이스라엘이 지난 12년 동안 대부분 난민을 대상으로 한 4번째 주요 군사 공세로 가자지구를 압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우월한 도덕적 행동 강령(moral code of conduct)’을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그러하듯이, 하마스가 민간인들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핀셋처럼 끄집어 공격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게 이스라엘 측 설명이다.

실제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미리 경고 사격을 보내어 폭탄으로 그들의 생계를 파괴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낼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감사해야 한다고 중동의 알자지라 16(현지시간)의 시니어 정치 분석가 마르완 비샤라(Marwan Bishara)는 이스라엘을 비틀었다.

마르완 비샤라는 이스라엘은 또 특정한 테러 시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것도 의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이스라엘이 말하는 부수적인 피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즉 매일 슬퍼하는 여자, 남자, 아이들의 피해를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과 그 조력국들(enablers : 남을 도와주고 있다고 당사자는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을 망치고 있는 나라나 사람)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자위권을 확보해야 하며, 자국민 방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 다른 국민에 대한 깊은 배려로 테러집단만을 골라 공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얼핏 매우 인도주의적인 공격이나 폭격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여지를 남겨놓는다.

마르완 비샤라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과거 전쟁의 대부분을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매우 잘못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암살, 폭격, 폐쇄, 퇴거, 토지 탈취, 성지 공격, 무자비한 불법 정착 등을 통해 전쟁을 일으켰던 당사자가 바로 이스라엘이며, “수십 년간 지속된 군대와 민간인 점거 그 자체는 전쟁과 폭력의 연속이고, 이스라엘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에 대한 완전한 점령 혹은 팔레스타인 자체를 지워버림으로써 전쟁의 광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쟁을 추구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반세기 동안 평화 프로세스를 통한다면서, 역대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전체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 불법 정착지를 확대했다.

이스라엘은 강경 노선의 하마스(Hamas가 지배하고 있는 가자지구들 높은 장벽으로 200만 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가둬놓고 통제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파타당(Fatah Party)이 지배하고 있는 서안지구에는 이스라엘이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지를 계속적으로 확장해 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모든 것을 초월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스라엘, 특히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해 내야 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에서는 과거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침략의 정당화에는 이골이 나 있을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사고방식에 모순이 늘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 있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강력하지만 불안정하고, 우월하지만 가난하고, 피비린내 나지만 인간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취약하며, 궁극적으로는 자비로운 전사이자 악랄한 평화 중재자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투사해왔다는 것이 마르완 비샤라의 줄기찬 주장이다.

이스라엘은 이웃 국가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우월한 엄청난 군사력과 핵보유국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존에 대해 지속적으로 철저할 정도로 집착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불안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주변 국가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도 넘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아랍지역에서의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의 지속적인 건설과 확장 사업이 수용성이나 적합성 결여로 인해 이스라엘의 불안증을 분출시키고 있다.

마르완 비샤라는 이스라엘의 불안은 1948년 다른 민족을 멸망시키고, 팔레스타인을 비극적으로 점령하고, 주민들을 악랄한 폭력으로 몰살시킨 죄악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시온주의(Zionist) 지도자들은 전쟁의 원인과 관리에 대해 거짓말을 했지만, 그들이 하는 일들은 진리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가들이 기록한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의 마을을 탈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국가의 연대성을 보장하기 위해 계획적이고 광범위한 인종 청소 공세를 펼쳐왔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드(Apartheid : 인종차별정책)이다.

이스라엘의 그 같은 인공청소 역사는 많은 이스라엘인들을 불편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결국 초기 유대인 이민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유럽과 다른 곳에서 끔찍한 만행의 희생자들이었다.

소수의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전쟁의 끔찍한 결과를 이해하고, 20세기 전반기 동안에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은 초기 시온주의자들의 평화 공존은 나약한 이스라엘을 의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네타냐후와 같은 강경파 지도자들은 근본주의적 시온주의 즉 유대민족주의운동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인식 속에서 팔레스타인 점령은 정당하다는 논리까지 펴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이 같은 상반된 사고방식은 옛 이스라엘 표현인 요림비보킴(yorim ve bochim : 영어의 Shooting and crying의 뜻)에서 가장 잘 이해된다. 이스라엘에서 요림비보킴은 국가 자체만큼이나 오래되고 복잡한 표현의 하나로 제복을 입은 군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말이며, 군 복무기간 동안 수행된 명령에 대한 후회, 총격과 울부짖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한 사례로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말단 계급의 한 군인이 상부의 명령에 의해 계엄군으로 광주에 파견되어 시민,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해, 무고한 시민이나 학생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고, 그 안타까움이 있지만, 밖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속으로 울부짖는 것을 상상해 보면, 요림비보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육군 장교이자 저명한 작가인 키르베트 키제, 이자르 스밀란스키(Khirbet Khizeh, Yizhar Smilansky)1949년 소설에서 팔레스타인 마을에 대한 사전 계획적이고 이유 없는 파괴, 그리고 1948년 전쟁 중 그의 부대에 의해 수행되었던 국경 너머의 주민 추방 사실들을 충격적인 산문으로 묘사하였다.

정보 장교로서의 스밀란스키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파괴된 수백 개의 마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의 주인공인 미차(Micha)처럼 그는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함께 그 일을 끝내는 일에 동참했다.

수정주의 소설은 영화와 TV 시리즈로 만들어졌고, 스밀란스키는 1950년대에 집권 마파이 당(Mapai party : 1930년에 창당된 이스라엘의 사회 민주주의 정당)에서 크네셋(Knesset : 이스라엘 국회) 의원이 되었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적 인권을 계속 박탈했다.

수백만 명의 견해,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diaspora Jews)’에 영향을 준 아모스 오즈(Amos Oz) 등 소수의 시온주의 작가들의 저술을 형성한 것은 작가 스밀란스키정치인 스밀란스키사이의 이런 유형의 모순된 갈등 등이다. 소설적으로는 매우 흥미로운 플롯(plot)이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는 위선적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됐다.

그러나 총격과 울음(yorim ve bochim)’이라는 위선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고 골다 메이어(Golda Meir) 이스라엘 여성 총리였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우리는 당신이 우리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해 용서할 수 있지만, 당신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을 죽이도록 만든 것에 대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아주 재밌는 말을 했다. 그건 후츠파(chutzpah)이 탁월함이다. 후추파는 이스라엘 말로 뻔뻔함, 당돌한, 철면피라는 뜻으로 형식이나 권위 등에 얽매이지 않고 질문과 토론을 해가며 해법을 찾아가는 창조정신을 뜻한다.

이스라엘의 이 같은 탁월함에 따른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공폭 등에 대해 이스라엘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적절치 않은 요구라는 역설적인 비아냥이 나돌기도 한다.

그 위선은 전쟁을 넘어 평화 유지에까지 이른다. 1993년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Shimon Peres)와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총리는 이스라엘의 관대함과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 땅의 작은 부분을 팔레스타인과 공유하려는 의지를 자랑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 조국의 5분의 4에 걸쳐 뻗어 있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역사적인 타협을 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음은 모르는 체 이스라엘의 우월성만 자랑했다. 물론 과거의 일이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요림비보킴이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총을 쏘고도 울지 않는다. 그들은 그 땅을 공유하거나 팔레스타인과 진정한 평화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대부분은 총을 쏘고 웃을(shooting and smiling)가능성이 더 높다.

가장 최근의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지난 2014년 가자 전쟁 때였다. 지나치게 빈곤한 지역, 가자지구 등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붓고, 2000명 이상의 목숨이 사라진 가자지구 그 땅 언덕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이 마치 소풍 나온 사람들처럼 팝콘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총격은 같으나, 울음이 웃음으로 변화된 모습은 인간성 상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과거 이스라엘 지도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일,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방해받긴 했겠지만, 그들은 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구주론에서 한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소수의 국민들과 신하, 혹은 식민지 원주민 등을 혹사시키거나 무자비하게 살해해, 목적인 국가의 안정과 국민들의 삶의 안정을 위하여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스라엘과 마키아벨리가 오버랩된다.

과거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일부는 지금처럼 같은 총격에도 웃음에 대신 눈물을 보일 줄 알았다. 그들은 적어도 갈등은 했고, 일부는 회회까지 했다. 대조적으로 네타냐후와 그 추종자와 파트너들에게는 후회와 평화와 같은 고급스러운 단어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후회와 평화는 드라마를 위한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네타냐후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자지구에 퍼부으면서 소총보다 성능이 좀 나은 로켓포를 이스라엘 영토에 쏘아대는 하마스와 PLO(를 향해 그 같은 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며 보복공격의 형태를 취한다. 새총과 기관총의 차이를 네타냐후는 아예 알려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외부의 눈치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르완 비샤라는 그렇게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기만술에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활한 전달 수법을 제외하곤, 과거의 것들을 그대로 마구 사용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법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무자비한 수법만 있어도 상대를 짓누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인 듯하다.

하마스는 적()이며 테러집단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적은 비겁하다고 강하게 비난을 한다. 그들은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 (이스라엘에) 도발을 한다고 몰아세운다. 이스라엘이 그러한 굴레를 무기로 삼는 한 평화는 위선적 평화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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