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으로도 5.18은 절대적으로 북한 소행
이것만으로도 5.18은 절대적으로 북한 소행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6.06.19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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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사진에서 경찰복을 입은 사람은 제161광수 김중협

1. 광주 현장 사진 속 경찰관, 5.18 측은 절대로 방어 못한다.

5.18 폭도들이 5월 18일부터 감행한 시내폭동의 시발점은 파출소를 방화-파괴하고 경찰을 적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경찰들은 시위 첫날 모두 죽지 않기 위해 변장을 하고 도망 갔고, 전투경찰 4명은 폭도가 지그재그로 돌진하는 대형차에 치어 즉사 했다. 19세의 윤기권은 경찰 15명을 닭장차에 가두어 포로로 잡은 전과로 2억을 받고 1991년 북으로 갔다.  

▲ ⓒ뉴스타운

경찰과 파출소들을 집중적으로 불태우고 경찰을 때려잡고 살해하는 이런 분위기가 5.18 폭동이었다. 5월 20일 이후 경찰은 광주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5월 21일 오후 5시 이후에는 계엄군이 도망을 쳤다. 사복을 입었어도 경찰 처럼 의심만 되면 체포-살해하는 것이 광주폭동이었다. 5월 21일 밤부터 광주는 경찰과 군이 전혀 없는 폭도들의 해방공간이었다. 위 사진은 5월 23일 해방된 도청에서 촬영됐다. 이 사진에는 경찰복을 착용한 경찰 모습이 포인트로 잡혔다. 감히 폭도가 장악한 도청에 경찰이 경찰복장을 하고 들어 와 활개를 치면서 승자들을 향해 질서를 잡는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 사진은 사전 기획된 어설픈 대남모략 시나리오에 의해 촬영됐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 사진 속 주역들은 광주에 없다. 모두가 북한에서 출세한 사람들이다. 위 사진에서 경찰복을 입은 사람은 제161광수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김중협으로 판독 됐다. 위 사진에 붉은 표시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 광수다. 삼베두건을 쓴 자는 북한 내각총리였던 김영일로 판독됐다. 북한정권의 막후실세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연준,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태복, 내각총리 박봉주, 중학생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은 일가족 탈북한 김희성으로 판독됐다. 박지원과 광주가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 광주사태는 광주와 북한이 함께 벌인 5000년 역사 최대의 대사기극이라는 사실이 100% 입증되는 것이다.

2. 600명의 맥가이버 존재 방어하지 못하면 5.18은 북한-광주가 벌인 사기극이다.

1995년 7월 18일, 검찰이 작성한 수사기록에는 각자가 맥가이버로 훈련된 600명으로 조직된 위장한 부대의 존재가 기록돼 있었고, 그 600명이 수행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작전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들 600명은 전투서열이 매우 높은 제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5월 21일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가지고 몽둥이 화염병 등을 소지한 채 매복해 있다가 08시가 되자 통과하는 차량부대를 기습해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털어 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 갔다. 09시, 이 차량대열을 마주한 군납업체 사람들이 놀라서 신형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열쇠를 꽂아주었다. 600명은 전라남도 17개 시-군에 꼭꼭 숨겨져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 12시부터 불과 4시간 만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꼭꼭 숨은 38개 무기고를 부수고 5,403정의 총기를 털었다는 기록이 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 ‘광주의 분노’에는 38개 무기고 이외에 6개 무기고가 더 털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44개 무기고가 4시간 만에 털렸고, 그 양이 총기인 경우만 해도 5,403정인 것으로 집계 됐다.  

600명은 광주공원과 학운동 등에서 총기사용 교육을 실시했다. 폭도들은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을 탈취해 도청 지하실에 2,100개의 폭탄으로 조립해놓고 이를 폭발시켜 광주시 전체를 날려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전라도 계엄군에는 폭탄조립-해체 기술자가 단 1명밖에 없었고, 그 1명인 배승일 문관은 5월 25일과 26일 양일간 도청으로 잠입해 목숨을 걸고 그 조립된 폭탄을 제거했다. 광주의 부나비들을 선동해 4,000여명의 공수대원들을 몰살상태로 몰아 넣었고, 계엄군은 구사일생으로 외곽으로 도망을 쳤다. 21일 밤에 교도소를 6회나 공격했다.  

이 모든 작전들은 판결문에 기록된 것처럼 5월 18일 아침 즉흥적으로 실행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준비된 작전이었고, 세계 최고의 특공작전인 엔테베 작전보다 더 높은 고난도 작전이었다. 그런데 1996-97년의 재판부는 이 작전을 시민군이 수행한 가벼운 작전인 것으로 사실오인을 하였고, 이런 폭도들을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접된 준-헌법기관이라고 판결했다.  

함께 생각해야 할 쟁점 : 토론 부탁합니다
-재심이 요구하는 ‘새로운 사실’에 대해-

상황일지 형태로 원자료만 잡다하게 널브러진(흩어진) 기록들을 이렇게 통계자료로 요약한 작업은 보안사도 아니고 중앙정보부도 아니고 검찰도 아니었다. 통계적 마인드에 익숙해진 지만원이 처음으로 한 것이다. 앞의 국가기관들은 원료자료를 정보로 가공하지 않았다. 원천자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정보를 세상에 내놓은 것도 재심 요건인 ‘새로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무엇이 ‘새로운 사실’이냐에 대해 기성 법조인들의 시각이 엇갈릴 것이다. 어떤 법조인은 과거의 널브러진 자료를 가공하여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창조한 것은 재심이 요구하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실, 새로운 인식을 창조했다.  

위와 같이 널브러진 조각들을 통계적 시각으로 전환하고, 시계열화 관점에서 줄거리로 요약한 것은 분명한 학문적 차원의 가공 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위와 같은 요약문이 탄생할 수 없었고, 위와 같은 개념이 탄생할 수 없었고, 국민의 새로운 인식이 탄생할 수 없었다.  

재료를 가공하기 전에는 판사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식했다. 그 결과 5.18을 헌법수로를 위한 애국적 운동이라고 인지해온 것이다. 하지만 가공 후에는 누구든 5.18을 북한특수군의 소행이라고 인지할 것이다. 이렇게 인식과 판단이 정반대로 갈리게 하는 것이 ‘가공’의 결과인데, 어찌 5월 21일의 상황을 위와 같이 가공한 것이 재심요건의 하나인 ‘새로운 사실’이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3. 총상사망자 116명중 80-85명이 카빈총 등 폭도가 소지한 총기로 사망
1980년 당시의 수사기록(보안사, 안기부, 치안본부, 계엄사령부)

나는 북한군이 광주사람 쏘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박지원과 광주인들은 광주시민을 광주시민이 쏘았다고 주장한다. 광주의 피해가 반드시 공수부대에 의해 발생했다고 표현해야 5.18의 명예가 존중되는 것이고, 북한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표현하면 5.18의 명예가 훼손된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고소질을 한다. 그리고 북한군이 저지른 살인행위를 공수부대가 했다고 무대뽀식 주장만 반복한다. 5.18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증거가 여기에도 차고 넘친다.

사기질의 대명사가 된 광주의 사기행각은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5.18 기념재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추모의 공간’ 등에서는 ‘카빈총 사망’이라는 글자들이 속속 지워지고 있다. 5월 22일, 도청 앞에서 ‘서울서 온 대학생 500명 환영식을 거행했다’는 상황일지 내용은 2013년 7월에 이미 다른 말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부정직한 사기꾼들이 주장하는 민주화운동은 그 자체로 철저한 사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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