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일가의 숙적 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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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일가의 숙적 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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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통, 새민련, 친노종북, 박지원 이재오, YS 키드, 五面楚歌

 
6.25 남침전범원흉 김일성이 가장 미워하고 가장 두려워 한 '원쑤=원수(怨讐)'는 한반도에 유일합법정부를 수립,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일순간에 전세를 역전시켜 무력적화통일의 꿈을 앗아간 미국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元帥), 그리고 1970년대 유신(維新)선포로 월남전 전후 마지막으로 벼르던 무력적화 기회를 여지없이 박살내 버린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김일성으로부터 1인 폭압살인독재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 한 상황은 흐물흐물 개념 없이 흐느적거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패거리를 물리치고 박근혜가 등장하여 대한민국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켜 초일류국가를 만들어 김정일 '강성대국' 백일몽의 허상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할 제2의 유신시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김정일은 유신의 후예 박근혜를 연방제적화통일 전략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자 힘에 겨운 경쟁자인 동시에 무서운 '적(敵)'으로 인식하고 강온(强穩)양면으로 접근과 타도의 술책을 펼쳤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1948.4.19~4.30)'에 김구를 유인 초청했던 것처럼 김대중 정권 말기에 김대중을 통해 북측 민화협과 아태위원장 겸 노동당통일전선부장 김용순의 초청형식으로 박근혜 의원을 초청(2002.5.11~14:3박4일) 탐색전(探索戰)을 펼쳤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박근혜가 김정일에게 1.21 사태 및 8.15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에 대해서 따져 묻고 이에 대한 직접 해명을 요구 '군사모험주의 자들의 일탈행위' 라는 변명을 이끌어 냄으로서 '국제테러'에 대한 책임을 대놓고 추궁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가할만한 사건이다. 

어쩌면 통진당(민노당) 이정희가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나중에 답변하겠다"라고 할 정도로 터부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6.25 전쟁 국군포로 생사확인'을 담판의 주제로 삼음으로서 김정일로 하여금 스스로 최대의 금기(禁忌)를 깨고 6.25 전쟁(남침)을 입에 올리게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방북 시에 직접 대면해 본 결과 상대가 녹록치 않음을 간파한 김정일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탄핵 후폭풍을 극복하고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시켜 개헌저지 120석 안전판을 마련한 박근혜의 저력과 국가보안법 등 4대 악법저지 및 전작권환수반대 장외투쟁에 저극 나서는 데 놀란 나머지 박근혜 타도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본다. 

김정일은 국가보안법폐지가 박근혜 벽에 부딪치자 노동신문(2005.9.15-9.24)을 동원 국가보안법폐지 반대투쟁에 나선 박근혜의 한나라당을 민족반역당, 반통일당으로 낙인 매도하면서 서울 불바다 협박과 함께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난다고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후 2006.1.1 신년사를 통해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신보수'의 결탁과 도전을 '반보수 진보대연합'으로 매국반역집단에 종국적 파멸을 안겨야 한다"고 대선 전초전이라 할 5.31 지방선거개입 선동 지령하는 것을 신호로 북송 장기수들이 10억$ 배상을 요구하는 고발장(2006.1.6) 제출, "박근혜, 제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조용히 물러나라(2006.1.15 조국전선)"는 위해(危害)협박까지 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노골적인 박근혜 타도 북괴 노동당 지령이 떨어지자 정동영 김근태 등 열린우리당 대선후보군이 일제히 호응 조평통보다 더 극렬한 어조로 박근혜를 성토 매도하기에 혈안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에 열린우리당 패거리들은 앞을 다투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재앙(정세균 당대표 2005.12.18)"이라며 신호탄을 올리자 "양심세력 대연합으로 반보수 반 한나라당 전선구축(김근태 2006.1.13)", "미래세력-민주개혁세력-평화세력3자연대 반한나라당 전선구축(정동영 2006.1.18)"등 북괴 전쟁위협과 '反보수진보(종북)대연합' 지령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김근태 정동영 등 열린우리당 대선 주자들이 "박근혜는 그 아버지에 그 딸(김근태 2006.1.17)", "박근혜가 독재시절 망령에 갇혀, 박근혜는 마키아벨리적 비의회 장외투쟁주의자(정동영 2006.1.18-1.20)". "박근혜는 인혁당사건 유족에게 사죄부터 하는 게 (독재자)자식으로서 도리(정동영, 김근태 2006.1.20)"라는 등 무참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런가 하면, 2004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전후하여 전민련출신 등 YS계(=친이계) 이재오 김문수 안상수 등이 "김정일이 하고 싶은 더러운 일(4대악법)을 간첩보다 잘한다(2004.10.15 AWSJ 사설)"는 평을 받은 열린우리당 패거리와 함께 자당대표 박근혜에게 '유신독재자의 딸' 이라고 비난을 퍼붓는 등 '내부의 적'으로부터도 무차별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근혜가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17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배함으로서 북괴 김정일과 남한 내 친노종북세력의 집중공세에서 일단 비켜섰다가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거쳐 12월 제18대 대통령에 당선,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괴 노동당, 새민련과 친노종북, 새누리당 내 친이계 등 反박근혜세력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의 표적이 됐다.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북괴 노동당의 직접지령에 놀아나는 汎종북반역세력의 불문율인 '혁명이론 강령 그리고 투쟁방향 및 지령(기치=슬로건) 3불포기 원칙'에 따라 2005년 이래 북괴의 反박근혜, 反제2유신 '反보수 종북(진보)대연합' 지령이 2014년 지금까지도 유효함은 물론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댓글3개 폭로 부정선거시비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박근혜 살인마" 누명 씌우기로 발전되고 급기야는 안대희 총리후보 낙마에 이어 박지원과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 북괴 조평통 합작 '구원파 유병언 살리기 문창극 낙마 공작'으로까지 진화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와해 공작 배후엔 북괴 대남적화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언필칭 보수를 자처해온 자들은 박지원과 전국언론노조 북괴 조평통의 모략선전선동에 놀아나 汎친노종북세력이 펼치고 있는 박근혜 퇴진, 정권타도, 체제전복음모에 동조 동참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수호에 나설 것인가 선택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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