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 학문과 한국의 민주주의
직업으로서 학문과 한국의 민주주의
  • 하봉규 논설위원
  • 승인 2014.05.0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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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은 혼돈과 상실의 시대였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직업으로서 학문'은 학업을 하는 젊은이들의 필독 팜플렛이다. 최후의 박학인 베버의 진리와 학문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으며, 칼 마르크스(Karl Marx )의 '공산당선언'과 대비 된다.

후자는 정치팜플렛이었고 근대사회 최고의 철학자인 마르크스의 명필이다. 하지만 전자는 학자의 업이란 부나 권력의 가치를 포기하고 진리의 신에 의탁하는 진중함을 고수한다. 반면 후자는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교수직을 끝내 박탈당한 한을 공산주의의 유령을 불러내는 것으로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학계에 종사하였으나, 독일 정치의 후진성( 천박성 )을 간파하고 스스로 정계입문을 바란 학자는 제국주의시대와 함께 짧은 생을 마감하며 그토록 안타까워한 바이마르공화국도 나찌에 희생된다. 반면 스스로는 마르크스주의자와 구별하였으나 마르크스 자신은 그토록 원한 미국행은 실패하고 공산혁명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자본주의를 청교도정신에서 찾은 베버의 업적은 영미권에 크나큰 영향을 주어 수많은 베버리안을 만들었다. 자본주의에 낙인을 찍은 마르크스의 논리는 서유럽이 아닌 러시아, 아시아, 남미 등에서 제도로서 도입 되었고 탈냉전과 함께 폐기 되기에 이른다.

천년의 최고철학자란 평가는 마르크스에게 영광인 동시에 수치이다. 왜냐하면 이말은 인류최고의 철학자로 숭앙받는 플라톤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레닌과 같은 혁명가도 되지 못한 룸펜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류역사이래 최고 최대의 과제인 가진자(haves)와 갖지( haveㅡnots ) 못한자의 긴장은 영원한 난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과거와 달리 하나의 바벨탑이다. 근대세계의 주역 영국, 프랑스, 독일의 무대에서 전세계로 확산 되었으며 상업주의, 산업주의, 독점주의시대를 건너 창조주의로 가고 있다. 신경제와 기술의 발달과 함께 교양(양식)이 균형과 견제의 기능을 하는 지성주의로 가는 것이다.

오래전 너무나 발전된 미국의 대학도서관에서 주눅이들었던 필자도 막스 베버와 칼 마르크스의 일생을 돌이켜보는 나이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와 트리어를 방문한 소회도 회상한다. 지금 한국은 자본주의 성장통을 치르고 있다. 불과 30년만에 근대화(산업화)에 성공했으며, 민주화도 이루었다. 하지만 지난 민주화는 IMF와, '잃어버린 20년(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으로 대변되는 혼돈과 상실의 시대였다.

막스 베버가 한세기전 조국의 미래를 염려하던 상황이 지구 반대편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베버가 그토록 강조했던 시민교양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민주화 한국인들은 스스로 경제동물이 되었으며, 책임을 지도자를 탓하기에 바쁘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는 종국에 나찌즘으로 그리고 세계대전의 참화로 나타났었다.

이미 천민자본주의의 괴물이된 한국 사회를 베버가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제2의 독일을 생각할 것이고 인간은 그렇게 현명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류적 연민을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민주화와 함께 윤리교육을 포기한 한국의 어리석음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과 교양, 신사도와 문화양식을 저버린 벌거벗은 한국 자본주의는 결코 정상이 아니며, 우리의 미래를 흩어버린 어리석음의 절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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