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정치 비극, 피할 수 없는 미중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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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정치 비극, 피할 수 없는 미중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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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무사 안일한 인식이 중국을 키웠다
- 미국산 민주주의 가치, 중국향 수출은 실패
- 미-중의 비극적 정치, 경쟁과 갈등
- 미국의 현실 안주, 중국 부상 억제 시기 놓쳐
- 중국, 미국의 현실주의를 그대로 답습, 제국주의의 길로
- 미국, 냉전 종식과 함께 중국에 부여했던 ‘최혜국(MFN)'지위 끝냈어야
- 미국,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가입 허용은 큰 실수
- 미국 기술, 중국으로 거의 제한 없이 흐르도록 허용한 것도 실수
- 1990년대 미국 진보적 승리주의, 현실주의 도외시로 중국 부상의 원인 제공
- 미국의 역대 지도자들, ‘대중 포용정책’이 ‘갈등과 긴장’ 초래
- 미국의 실수, 중국에 대한 봉쇄나 억제정책은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인식
- 트럼프 정부 들어 대중국 ‘봉쇄(containment)'정책으로 전환, 무역전쟁 개시
- 2050년, 인구 대국 중국은 부(富)와 군사력에서 미국을 능가 예상
- 향후, 일본과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적대감이 열전(Hot War) 가능성 높여
- 시진핑의 대만 애착, 중국 민족주의와 깊은 뿌리 두고 있어
- 현대전은 ‘피로스의 승리’만을 안겨다 줄 것. 중국에게 이런 인식 심어줘야
이 같은 경쟁은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관리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 가공할 재래식 병력을 유지하여 군비 충돌이 기껏해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만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중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피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에피로스 왕의 이름으로 전쟁을 워낙 잘 하는 왕이지만 너무나 많은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는 통해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는데서 유래된 ‘피로스의 승리’ 즉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승리를 말한다.
이 같은 경쟁은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관리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 가공할 재래식 병력을 유지하여 군비 충돌이 기껏해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만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중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피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에피로스 왕의 이름으로 전쟁을 워낙 잘 하는 왕이지만 너무나 많은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는 통해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는데서 유래된 ‘피로스의 승리’ 즉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승리를 말한다.

미국과 중국이 평화롭고 긴장 없는 양국관계 개선의 조짐이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원수지간처럼 때로는 상호 파트너처럼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락거리는 관계이다.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 지인 포린 어페어즈피할 수 없는 미중 경쟁에 대한 장문의 글에서 미국의 무사 안일한 대외정책 특히 중국에 대한 정책이 오늘날 미-중 경쟁과 갈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중대한 선택이 있었다. 30년 전 냉전은 종지부를 찍었고, 미국이 승리했다. 옛 소련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공산주의 맹주가 힘이 쭉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위협의 지평을 살펴본 결과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별로 걱정할 이유가 없어 보였고, 특히 10년 이상 옛 소련에 맞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약하고 가난한 국가였던 중국에 대해서는 더더욱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세월은 움직인다. 그 사이에 불길한 조짐이 나타났다. 중국은 미국보다 거의 5배나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경제 개혁을 수용하는 등 먹고 사는 문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은 주정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It doesn’t matter whether it’s black or white cat as long as it catches a mouse well.)’는 실용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인구의 규모와 부()는 군사력의 주요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향후 수십 년 안에 중국이 극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중국이 강해진다면, 아시아와 그 너머에서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미국의 논리적인 선택은 중국의 급부상을 지연시키는 일이다. 미국이 중국의 우위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미국은 무심코 안심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에는 큰 움직임을 위한 작은 꿈틀 그림이 있었다. 공산주의의 맹주 소련이 붕괴되었고, 이에 고무된 미국은 자유주의 필연적 승리론과 강대국 갈등의 퇴폐에 대한 잘못된 이론에 고무되었다. 미주공화국 미국은 중국이 보다 더 부유해지도록 돕는 포용정책을 추구해왔다. 미국산 민주주의를 중국에 심어, 폐쇄적인 중국을 자유주의 시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의도였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고, 중국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주의가 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중국을 세계무역체제로 끌어들였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통상적으로는 그러한 고마운 일에는 감사하기 마련이다. 중국은 달랐다.

미국의 순진한 그러한 생각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중국은 자유세계로, 세계무역체제로 흔쾌히 나오지 않았다. 중국은 국내의 자유주의 가치와 해외의 현상유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중국말로 굴기(崛起)’할수록 억압적이고 야망은 더욱 더 커졌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화합을 촉진하는 대신 상호 관여(engagement)는 경쟁관계를 사번에 알지 못했고 방지하지 못했다. 끝내는 미국에 의한 단극체제시대(unipolar moment)의 종말을 앞당겼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은 신냉전(a new cold war)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관계, 즉 그들 관계의 모든 차원을 건드리는 치열한 안보 경쟁에 갇히게 됐다고 포린 어페어즈는 진단했다. 중국이 전성기 시절의 소련(Soviet Union)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경쟁은 미국의 정책입안자들(policymakers)을 원래의 냉전보다 더 시험을 할 것이며, 신냉전은 갈수록 더 뜨거워질 것이다.

어떤 것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현실주의가 예측한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누가 아시아를 지배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려고 하는 중국 지도자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물론 비슷한 의제를 추구했던 미국이 자국에서 패권국가로 올라섰고, 결국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된 것은 아니다. 중국의 현실주의처럼 오늘날 미국의 현실주의 논리가 예상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다.

다른 지역 패권국들의 출현에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중국은 중국의 야망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고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할 수 없는 결과가 경쟁과 갈등(competition and conflict)이다. 바로 이것이 강대국 정치의 비극이다.

정치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비상한 부상 속도와 규모였다. 미국에 의한 단극체제시대에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힘의 균형 정치의 관점에서 생각했다면, 그들은 중국의 성장을 늦추고 중국과 미국 사이의 힘의 격차(power gap)를 극대화 하려 했을 것이다.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중국이 부를 보다 많이 쌓아나가면서 미국과 중국의 냉전은 불가피성을 띄게 됐다.

관여(개입, engagement)은 최근 어느 나라든 최악의 전략적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강대국이 적극적으로 파트너 경쟁자의 부상을 조장하는 예는 비교할 수 없다. 이제는 시간이 너무 흘러, 미국 마음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 현실주의

1960년대 중국과 소련 분열 직후, 미국 지도자들은 현명하게도 중국을 서구 질서에 통합하고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고, 더 강력한 중국이 소련을 봉쇄하는 일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더 이상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75분의 1 크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의 인구 우위에 비추어 볼 때, 향후 수십 년 동안 중국 경제가 급성장할 경우 순전히 경제력에서 미국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세계 힘의 균형에 점점 더 부유해진 중국은 엄청났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을 경제적 거물로 보는 것은 악몽인 셈이다. 그것은 미국의 단극체제의 종말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구가 많고 부유한 나라들이 그들의 경제력을 변함없이 군사력으로 전환함에 따라 부유한 중국은 분명 어마어마한 군대를 건설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이다.

중국은 아시아의 주도권을 추구하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 힘을 투사하기 위해 그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일단 그렇게 되면, 미국은 위험한 안보 경쟁을 부추기는 중국의 힘을 저지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강대국들은 왜 경쟁해야 하는가? 우선 국가 간 분쟁을 판단하거나 위협을 받았을 때 보호할 수 있는 상위 권한이 없다. 게다가, 어떤 국가도 경쟁자, 특히 풍부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강대국의 경쟁자들의 의도는 신성(神聖)하지 않다. 국가들은 무질서의 세계(anarchic world)에서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강력한 행위자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자신의 지역에서 패권국이 되어, 다른 강대국들이 그들의 지역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현실주의 논리가 처음부터 미국의 대외정책을 알렸다. 미국의 초기 대통령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은 미국을 서반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20세기 초에 지역의 주도권(hegemony)을 잡은 후, 미국은 4대 강대국들이 아시아와 유럽을 지배하는 것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제국 독일을,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을 모두 물리치고 냉전 중에는 소련을 통제했다.

미국은 이러한 잠재적 패권국들이 서반구를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힘을 전 세계에 투사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워했었다.

중국은 이와 같은 현실주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으며, 사실상 미국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중국은 뒷마당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원하며,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원한다.

또 페르시아만 석유에 대한 접근을 보호하기 위해 대양함대(blue-water navy)를 건설하기를 원한다.

blue-water navy는 전 세계적으로 본질적으로는 드넓은 대양(ocean)의 심해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해양부대를 의미하며, 실제로 그러한 힘을 구성하는 것은 다양하지만, 원거리에서 해상 제어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 블루 워터 네이비라는 용어는 강 인근의 브라운 워터 네이비(brown water navy)와 해양 근처의 그린 워터 네이비(green water navy)와 대조되는 해양지리 용어이다.

나아가 첨단 기술의 선도적인 생산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더 유리한 국제질서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강대국 중국이 이러한 목표를 추구할 기회를 놓치는 일은 지도자로서는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그러한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군비확대, 첨단기술 굴기 등을 통해 지배자가 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적이고 무자비한 나라들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고귀한 민주주의라고 믿기 때문에 베이징과 워싱턴이 같은 각본(playbook)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제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민주주의든 아니든 모든 강대국들은 제로섬 게임에서 권력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무는 냉전 기간 동안 두 초강대국 모두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오늘날 중국에 동기를 부여하고,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할지라도 지도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지도자들에게도 동기를 부여하여 중국을 봉쇄하기로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강대국 경쟁을 주도하는 구조적 세력을 강조하는 이 현실주의적인 설명이 아니더라도, 미국 지도자들은 여전히 중국이 강대국으로 되는 문제의 해결책임을 인식했어야 했다. 결국, 인도는 오랫동안 인도와의 국경 분쟁을 스스로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왔고 동아시아에 광범위한 수정주의 목표를 품고 있었다.

중국 정책 입안자들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욕구 문제, 즉 댜오위다오(釣魚島-조어도, 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되찾고,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대만을 통일시키기 위해서 중국의 이웃 국가들이 미국의 힘을 빌어 저항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항상 수정주의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미국의 실수는 중국이 수정주의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지도록 허용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가보지 못한 길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현실주의 논리를 받아들였더라면, 중국의 경제 성장을 늦추고 중국과 미국 사이의 빈부격차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더 벌리기 위해 그들이 추구할 수 있었던 일련의 간단한 정책들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중국 경제는 비참할 정도로 저개발 상태였고, 미래의 성장은 미국 시장, 기술, 자본에 대한 접근에 크게 좌우됐다. 당시 경제적, 정치적 골리앗이었던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1980년부터 미국 대통령들은 중국에 최혜국(most favored nation)”의 지위를 부여했는데, 이 지위는 중국이 미국과의 가장 좋은 무역 조건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한 미국의 중국에 대한 편애는 냉전과 함께 끝났어야 했고, 그 대신에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에 더 가혹한 조건을 부과한 새로운 양자무역협정(bilateral trade agreement)을 협상했어야 했다.

그들은 협정이 미국에 덜 우호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는 것이 일부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미국인 그렇게 했더라면, 중국 경제의 작은 규모를 고려할 때, 중국은 미국 경제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대신, 미국 대통령들은 현명하지 못하게 중국에 매년 최혜국(MFN) 지위를 부여했다.

2000년 이 오류는 베이징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현저하게 감소시키면서 그 지위를 영구화함으로써 더욱 더 악화됐다. 이듬해 미국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또 다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제 글로벌 시장이 열리면서 중국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제품 경쟁력이 높아졌고, 중국은 더욱 더 강력해졌다.

중국이 국제무역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미국은 정교한 미국 기술의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했어야 했다. 그리고 수출통제는 1990년대와 다음 10년 초반에 특히 효과적이었을 것인데, 당시 중국 기업들은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고 주로 서양 기술을 모방하고 있었다. 2020년 지금까지 중국 기업들은 돈 많이 버는 데에만 눈길을 주면서 노력, 시간, 자본, 기술, 투자라는 어려운 길을 피하고 서방 기술을 돈을 손쉽게 구입, 제품을 생산 돈을 벌어왔다.

그런데도 미국은 기술이 거의 무제한으로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놓아두었고, 중국은 혁신이라는 중요한 영역에서 미국의 지배력에 도전장을 내밀도록 허용했다.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1990년에는 미미했지만, 이후 30년 동안 급증한 미국의 대중 직접 투자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실수도 저질렀다. 그저 실수 투성이었다.

미국이 무역과 투자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면, 중국은 분명히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그것이 할 수 있었던 것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기술의 대부분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제재와 안전 보장을 포함한 여러 가지 수단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이 중국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던 시대이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의 역할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은 강력한 중국이 그들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일본과 대만과 같은 동맹국들을 끌어낼 수 있었다.

중국 시장 개혁과 잠재력을 감안할 때, 중국은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 훨씬 나중에 강대국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중국은 여전히 미국보다 현저히 약했을 것이고, 지역 패권을 추구할 위치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힘이기 때문에, 현실주의 논리는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의 경제 성장을 늦추기 위한 노력과 중국에 대한 자국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운동을 결합시켰어야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최첨단 기술(cutting-edge technologies)에 대한 미국의 완성도를 보존하는 데 필요한 브레이크 없는 혁신 부문 연구와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고, 취약한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s)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제조업자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단념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신중한 조치들 중 어떤 것도 채택되지 못했다.

* 망상적 사고

1990년대 워싱턴 기득권층에 만연했던 진보적 승리주의(liberal triumphalism)를 고려할 때 현실주의적 사고(realist thinking)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알릴 가능성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대신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민주주의 확산, 개방적 국제경제 촉진, 국제기구 강화 등을 통해 세계 평화와 번영을 극대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논리가 중국에 적용되었고, 미국이 중국을 세계 경제에 통합시키고 더 번영하기를 바라는 포용 정책을 규정했다. 지금 미국이 후회하면서 중국 견제에 나서는 현실에서 보면 너무나 망상적이거나 현실 외면의 이상적 사고에 빠진 좋게 말해 순진한 정책입안자들의 실수였음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중국은 심지어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책임감 있는 세계적 행위자로 성숙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었다. 중국의 성장을 우려한 현실주의와 달리 포용주의가 환영받았다. 그 환영이 지금의 대중포위망으로, 대중 견제정책으로 탈바꿈시키게 됐다.

그런 위험한 정책에 대해서는 4개의 행정부에 걸쳐 포용에 대한 지원의 폭과 깊이가 두드러졌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냉전이 끝나기도 전에 중국과 교류하기로 약속했다.

19896월 톈안먼 대학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부시 당시 대통령은 -중 무역 접촉이 본질적으로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하도록 이끌었으며, 경제적 동기가 민주화를 불가결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중국에 경제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2년 후 그는 중국이 최혜국(MFN) 대우 지위를 갱신했다는 비판을 받자, 그것이 민주적 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적극 옹호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이 중국을 응석받이(coddling)’로 대했다고 비난했으며, 백악관에 입성한 뒤 중국 정부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곧 방향을 바꿔 1994년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시키고 확장해야 한다고 선언, 이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뿐만 아니라 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정치적 성숙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영구적인 최혜국 지위를 부여하도록 의회를 설득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2000중국 인민을 위한 더 큰 개방과 자유의 미래를 믿는다면 이 협정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도 대선 후보로서 중국과의 교역이 자유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약속하며, 중국을 세계 경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받아들였다. 취임 첫 해에 부시는 중국에 영구적인 최혜국 지위를 부여하는 선언문에 서명했고,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기 위한 마지막 절차를 밟았다.

오바마 행정부도 부시 행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오바마는 2015대통령이 된 이후 중국과 건설적인 방식으로 일관되게 교류하고, 서로의 차이를 관리하며, 협력의 기회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중국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011년 공개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가 포용에서 벗어나 봉쇄로 가는 변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클린턴은 헌신적인 기부자였고, 아시아 중심축으로의 전환을 위한 주장을 하는 힐러리의 외교 정책 기사는 개방 시장의 미덕에 대한 자유주의적 미사여구로 가득 찼을 뿐이라는 게 포린 어페어즈의 주장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번창하는 중국은 미국에 좋다면서 2,500명의 미국 해병대를 호주에 배치하는 것을 제외하고, 심각한 봉쇄 전략을 시행하기 위한 의미 있는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았다.

중국을 거대 시장인 동시에 제조업 거점으로 보던 미국 재계 내부에서도 10억 명 이상의 잠재 고객이 있을 정도로 포용 지지가 깊고 넓었다. 미국 상공회의소,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전미제조업협회 등 무역단체들은 당시 토머스 도너휴(Thomas Donohue) 상공회의소 회장이 중국의 WTO 가입을 돕기 위해 이른바 논스톱 로비 공세(nonstop lobbying blitz)”를 벌였다.

월 스트리트 저널,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위원회를 포함한 언론의 주요 인사들 또한 참여를 받아들였다. 참여는 학계에서도 똑같이 인기가 있었다. 중국 전문가나 국제관계 학자들은 베이징이 더 강력해지도록 돕는 지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외교 정책 기득권층의 포용에 대한 압도적인 헌신의 가장 좋은 지표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둘 다 (각각 가장 두드러진 민주와 공화당의 냉전 매파) 전략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교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실패의 가능성을 허용했다고 주장한다. 클린턴은 2000우리는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시인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아들 부시)은 같은 해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의심은 거의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경우에도 실패의 영향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중국이 민주화를 거부한다면, 중국은 단순히 능력이 떨어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더 강력해지고 덜 권위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그들의 계산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국제관계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게다가, 그들은 현실 정치가 낡은 생각이라고 믿었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중국과의 우정이 제대로 싹트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개입과 함께 봉쇄(containment side by side with engagement)’를 추구하면서 베팅에 대한 위험을 회피했다고 주장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Pentagon)에서 근무했던 조셉 나이(Joseph Nye)2018년 포린 어페어즈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우리는 이 내기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을 봉쇄하지 않았다는 것과 상충된다.

예를 들어, 1997년에 클린턴은 그의 정책을 억제(봉쇄)와 갈등이 아니라 협력(not containment and conflict but cooperation)”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비록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조용히 중국을 통제하고 있다고 해도, 관여는 그들의 노력을 약화시켰다. 왜냐하면 그 정책은 궁극적으로 전 세계 힘의 균형을 중국에 유리하게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 실패한 실험

누구도 포용정책이 일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고, 미국이 충분히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이 위협으로 부상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포용정책이 실패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중국 경제는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을 경험했지만, 자유 민주주의나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로 바뀌지는 않았다. 반대로, 중국 지도자들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자국의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신흥 강대국들의 통치자들이 보통 그러하듯이, 그들은 점점 더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외정책은 힘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늑대전사외교(전랑외교, wolf-warrior diplomacy)'를 펼치고 있는 힘 있는 중국의 모습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미국의 관여정책(포용정책)은 엄청난 전략적 실수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직 관리였던 커트 캠벨(Kurt Campbell)과 엘리 래트너(Ely Ratner)2018년 포린 어페어즈에 워싱턴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무시무시한 경쟁자에 직면해 있다는 글을 기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하겠다고 다짐했으며, 중국의 해상권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WTO에 제소했지만, 이러한 성의 없는 노력은 별 효과가 없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핵 해결 문제에 대해서도 외교용어도 아닌 묘한 표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말로 사실상 방치한 우를 범하기도 했다)

2017년이 되어서야 그 정책이 진정으로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이전 4개 행정부가 수용했던 포용전략을 재빨리 버리고 대신 봉쇄(containment)’를 추구했다. 그해 공개된 백악관 전략 문서에 따르면, 강대국 경쟁이 다시 시작됐고, 중국은 이제 미국의 힘과 영향력, 이익에 도전해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잠식하려 한다고 했다.

중국의 성공을 막기로 결심한 트럼프는 2018년 무역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의 기술 우위를 위협한 거대 기술기업 화웨이와 다른 중국 기업들을 깎아내리려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대만과의 더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켰고,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2차 냉전이 진행 중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상원 외교위원장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 정책을 확고히 지지했다는 점에서 봉쇄를 버리고 교류 복귀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으로서 봉쇄를 수용하고 취임 직후 중국과의 극한 경쟁(extreme competition)’을 다짐하며 전임자 못지않게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의회도 돌아왔다.

지난 6미국 혁신 경쟁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은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상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중국을 미국의 외교 정책에 있어 가장 큰 지정학적, 지리 경제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대만(Taiwan)"활력 있는, 전략적인 중요성의 주권 국가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으로는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한 중점 산업의 기술 개발 및 생산에 250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이기도 하다.

2020퓨 리서치 센터여론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9명이 중국의 힘을 위협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미-중 경쟁 구도가 조만간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백악관에 누가 있든 격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 열전(Hot War)의 위험

일부 관계 전문가들은 -중 관계의 하향 곡선을 미-소 간 대결 구도에 대입시켜 보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의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신 냉전 주의자들(New Cold Warriors)”이라고 말했다. 추가적인 경제 협력에 대한 동기는 권력을 놓고 경쟁할 필요성을 능가한다.

상호 이익은 상충되는 이익을 능가한다. 유감스럽게도,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센 바람 부는 곳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냉전 2기는 이미 도래했고, 두 냉전을 비교해보면 미-소 경쟁보다 미-중 경쟁 구도가 총격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명백해진다는 게 보수 성향의 논객들은 말하고 있다.

두 갈등의 첫 번째 대비점은 역량에 관한 것이다.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잠재력 면에서 이미 미국과 가까워졌다.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대 중반, 소련은 인구에서 1.2 1 미만의 작은 우위에 있었고, GNP를 대략적인 부의 지표로 사용했을 때, 미국의 거의 60%에 해당하는 만큼 부유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현재 미국보다 4배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고 미국의 약 70%의 부를 유자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연평균 5% 안팎의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결국 미국보다 잠재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2050년까지 중국은 약 3.7 1의 인구 우위에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중국이 2050년에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즉 오늘날의 한국 수준의 부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의 1.8배 부유해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경제가 더 나아져서, 그 때쯤이면, 현재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1인당 미국 GDP3/5에 도달하면, 미국보다 2.3배 부유해질 것이다. 그 모든 잠재력이 있다면, 베이징은 6,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은 미국보다 가난했을 뿐만 아니라 냉전이 한창일 때, 나치 독일에 의해 파괴된 끔찍한 파괴로부터 여전히 회복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2차 세계 대전 때, 소련은 70,000개 이상의 마을과, 32,000개의 산업 기업, 40,000마일(64,372km)의 철도 선로는 말할 것도 없고, 2,400만 명의 시민을 잃었다. 미국과 싸울 처지가 아니었다. 반면 중국은 1979년 베트남과 마지막으로 전쟁을 벌였고,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제 대국이 됐다.

중국의 경우 크게 부족한 소련의 역량에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골치 아픈 동맹국들이다. 냉전 기간 동안 소련은 동유럽에 거대한 군대를 주둔시켰고, 동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의 정치에 깊이 관여했었다.

그것은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반란군과 싸워야 했던 내전을 겪었다. 알바니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는 일상적으로 모스크바의 경제 및 안보 정책에 도전했다. 소련은 냉전 중에 편을 바꾼 중국에도 손을 댔다.

이 동맹국들은 주요 적수인 미국으로부터 소련의 지도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모스크바의 목 주위에 있는 알바트로스(albatross)였다. 동시대 중국은 우방국도 거의 없고, 북한에 관한 한 소련보다 우방국들에 덜 얽매여 있었다. 한마디로 중국이 해외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유연성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념적 동기는 어떨까? 소련처럼 중국은 명목상 공산주의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 시대의 미국인들이 모스크바를 악의적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로 결심한 공산주의 위협으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듯이, 오늘날 중국을 이념적 위협으로 묘사하는 것은 실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련의 외교 정책은 공산주의 사상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았다.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은 그의 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레닌은 스탈린을 강철 인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포용하는 권위주의 국가로 가장 잘 이해되는 현대 중국에서는 훨씬 더 중요하지 않다. 미국인들은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이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면 중국은 무기력한 경제(lethargic economy)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가지고 있는 이즘(ism, 주의-主義)’이 있는데, 이는 미국과의 경쟁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이념인 민족주의(nationalism)는 공산주의(communism)와 대립했기 때문에 소련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중국 민족주의(Chinese nationalism)가 힘을 얻고 있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제1차 아편 전쟁(the First Opium War)으로 시작된 중국의 국가적 굴욕의 세기(century of national humiliation)’를 강조하는 것인데, 이 기간 동안 중국은 강대국들, 특히 일본, 그리고 중국 설화에 나오는 미국에 의해 희생당했다.

이 강력한 민족주의 이야기의 효과 표시에 20122013, 중국과 일본은 조어도(댜오위다오, 일본명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 전역에서 반일(反日)시위 격하게 점화됐다.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치열해지는 안보 경쟁은 일본과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적대감을 증폭시켜 뜨거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 분명하다.

또한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중국의 역내 야망(regional ambitions)이다. 2차 세계 대전으로부터 회복하고, 동유럽에서 제국을 관리하느라 바쁜 소련 지도자들은 대륙의 현상에 크게 만족했다. 반면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확장주의적 의제(expansionist agenda)에 깊이 전념하고 있다.

중국 탐욕의 주요 타깃은 분명 중국에 전략적 가치가 있지만, 신성한 영토로 여겨지기도 하는 만큼 이들의 운명은 중국 민족주의와 뿌리 깊이 결부되어 있다. 특히 대만의 경우는 그렇다. 중국은 소련이 베를린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적인 애착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대만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상황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또 신냉전의 지형은 구 냉전의 지형에 비해 전쟁 가능성이 높다. -소 경쟁 구도가 세계적 수준이었지만, 그 무게중심은 유럽의 철의 장막으로, 양측은 수천 개의 핵무기를 갖춘 대규모 육군과 공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초강대국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양측의 정책 입안자들은 핵 확산의 무시무시한 위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어떤 지도자도 자신의 나라를 파괴할 수 있는 전쟁을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아시아에는 안정성을 고정할 수 있는 철의 장막(Iron Curtain)처럼 뚜렷한 구분선이 없다. 대신, 제한적이고 재래식 무기를 수반하는 소수의 잠재적 충돌이 있는데, 이것은 전쟁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그들은 대만은 남중국해,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위해 싸웠고, 싸우고 있고, 중국과 페르시아 만(Persian Gulf) 사이에 실행되는 해상 노선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충돌은 주로 공군과 해군 사이의 공해상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섬의 영유권을 위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소규모 지상군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중국 수륙 양용군을 동원할 수도 있는 대만에 대한 전쟁도 핵을 장착한 거대한 군대가 서로 충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핵전쟁은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소규모 재래식 전쟁은 언제든지 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이러한 제한적인 전쟁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토(NATO)와 바르샤바 조약기구(Warsaw Pact) 사이의 주요 전쟁보다 더 그럴듯해 보이기는 한다.

공멸을 의미하는 핵전쟁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중국과 미국이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놓고 다툰다면, 핵 확산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만약 한쪽이 심하게 패배하고 있다면, 최소한 그 상황을 구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도 것이다. 그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의사 결정자들은 공격이 바다에서 일어나고, 중국과 미국, 그리고 그 동맹국들의 영토를 벗어난다면, 핵무기는 용납할 수 없는 증대 위험 없이 사용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물론 매우 위험한 발상이기는 하지만......신냉전에서는 강대국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핵 이용도 그렇다는 것이다.

* 미국이 만든 라이벌

비록 수가 줄어들어들긴 했지만, (중국과의) 교류 지지자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들은 여전히 미국이 중국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97월 말 100명의 중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 서명했고, 의회 의원들은 중국이 위협적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들은 많은 중국 관료들과 엘리트들은 서방과 온건하고, 실용적이며, 진정으로 협력적인 접근이 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중국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보다 개방적이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국은 협력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다른 강대국들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더 강해지도록 놔두려 하지 않는다. 이런 강대국 경쟁의 원동력은 구조적인데, 영리한 정책결정만으로는 문제를 없앨 수 없다는 뜻이다. 근본적인 역학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중국의 부상을 멈추게 한 중대한 위기일 것이다. 이는 중국의 오랜 안정, 능력, 그리고 경제 성장을 고려할 때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이다. 그러므로 위험한 안보 경쟁은 거의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쟁은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관리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에서 가공할 재래식 병력을 유지하여 군비 충돌이 기껏해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만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중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피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에피로스 왕의 이름으로 전쟁을 워낙 잘 하는 왕이지만 너무나 많은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수행하는 통해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는데서 유래된 피로스의 승리즉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승리를 말한다.

빠르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다고 적들을 설득하는 것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그들 자신과 중국 지도자들에게 전시의 핵 확산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결국 핵무기는 궁극적인 억제력이다.

워싱턴은 또 해상 사고나 다른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합의와 같은 안보 경쟁을 벌이기 위한 명확한 규칙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양측이 상대방의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다면, 전쟁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러한 조치들은 점증하는 미-중 경쟁에 내재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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