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국민께 5.18의 진실을 보고합니다
대통령과 국민께 5.18의 진실을 보고합니다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4.11.02 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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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끄럽게 왜곡돼 온 우리의 5.18 역사로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

▲ ⓒ뉴스타운

보고자의 연구관련 프로필

저는 1966년 육사를 22기로 졸업한 직후 44개월 동안 베트남전쟁에 전투요원으로 참전하였고, 대위-소령 때 미해군대학원에 가서 4년 반 동안 경영학 석사와 시스템공학 박사를 취득하였습니다. 박사논문에는 수학공식 2개, 수학정리 6개, 알고리즘 1개가 창조돼 있습니다. 그리고 대령 때까지 국방연구원과 정보 분야에서 근무했고, 예편 후에는 미해군대학원에 가서 교수생활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미해군대학원 학비는 스탠포드 대학의 2.5배나 되던 일종의 귀족학교였습니다.

4년 반이라는 세월이 이토록 귀한 스펙을 쌓게 해준 반면, 저는 5.18의 진실 하나를 탐구하는데 2002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12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냥 연구만 한 것이 아니라 5.18 단체들과 국가로부터 인간 이하의 가혹한 박해와 탄압을 끊임없이 당하면서 연구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정부의 KCIA로부터 집중도청을 당하면서 탄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로 훗날 KCIA 수장은 저에게 법에 의해 손해를 배상하였습니다. 김대중 시대의 광주와 5.18은 대한민국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일간지 광고문에 5.18에 북한특수군이 왔다는 표현을 했다 해서 광주 5.18 단체들로부터 서울의 사무실과 집과 차량을 파괴당했습니다. 테러를 가하는 동안 경찰들은 구경만 하였습니다. 이어서 광주검찰이 보낸 경찰관 4명에 의해 수갑을 뒤로 채운 채 6시간 동안 광주로 끌려가면서 아들 벌되는 4명의 광주경찰들로부터 온갖 저주가 담긴 욕설을 들었고, 뺨과 머리를 마구 쥐어 박히면서 화장실 가는 것도 거부당했습니다. 광주에 도착해서는 광주검찰이 욕설을 하고 수갑을 2시간 이상 더 풀어주지 않아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하였고, 그 후 광주 구치소에서 101일 동안 수감돼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경기도 사람을 광주로 잡아가는 것은 여러 가지 법률을 위반한 만행이었습니다. 이 땅의 언론은 좌익들이 장악했고, 언론계 중진 모 인사의 칼럼에 의하면 기자의 80%가 공산주의자들이라 합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양산되기 시작한 이런 공산세력으로부터 저는 수없이 마녀사냥을 당해 명예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2008년, 5.18에 대한 수사 및 재판기록 18만 쪽을 정리하여 1,720쪽의 방대한 다큐멘터리 역사책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도 같은 내용이 더 자세하게 표현돼 있었습니다. 5.18 단체들은 또 이 표현이 5.18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면서 고발을 하였고, 대한민국 검찰은 제가 5.18의 명예를 훼손시키기 위해 역사를 틀리게 연구했다며 기소를 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5년 동안 무려 25회의 공판과정을 거치면서 강도 높은 재판을 받았고, 재판 도중에도 광주에서 상경한 5.18단체 60여 명으로부터 폭행과 언어폭력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안양-서울 지역 재판부들이 2002년의 광주지방법원과는 달리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정부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에 게시된 제 연구결과들을 집단으로 폐쇄-삭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국가가 학문의 내용을 검열하고 봉쇄하고 있는 것입니다. 5년간의 재판을 받으면서 저는 5.18에 대한 책을 3권 더 썼고, 이는 모두 1,200쪽에 달합니다. 여기에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600명 단위로 확실하게 왔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0월, ‘완벽하게 증명된 5.18의 진실’이 담긴 “5.18 분석 최종보고서”를 발간함으로써 5.18 연구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수학적 언어인 Q.E.D의 세 글자로 자신 있게 마침한 것입니다.

제가 발굴한 5.18의 진실 요약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천대받던 사회불만세력’을 부나비로 이용하여 남남전쟁을 유발시켜 놓고, 이를 남침전쟁으로 연결하기 위해 벌인 고도의 이간작전이었다. 광주인에 의한 독자적인 광주인 시위대는 없었다. 민주화운동도 없었다. 전남지역에 20-30만명이 동원된 폭동과 살인과 방화가 있었지만 이를 지휘한 한국인은 없다. 국가는 북한군 작전에 소모품으로 이용된 4,634명의 광주-부나비들에 초특급의 유공자 대우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돈으로 학교를 만들고 책자를 만들고 영상물을 만들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주고 있다. 국가는 북한이 써준 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썼다, 국가도 국민도 남북한-공산주의자들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1981년 및 1997년의 판결은 무효

1981년 4월 1일의 대법원 판결 요지는 “정동년이 김대중에서 500만원을 받아 300만원은 박관현에게, 200만원은 윤한봉에게 주어 폭력시위를 주도케 했다”는 것이고,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 판결 요지는 “광주시위대는 신군부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고, 이런 시위는 전국으로 속히 확산됐어야 했는데 신군부가 이를 무력으로 조기에 진압한 행위는 내란행위”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판결은 광주에 광주인들이 주도한 독자적인 시위대가 존재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이는 “광주에 민주화 시위대가 없었다”는 제 연구결과에 배치합니다. 제 연구결과가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면 이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은 오류를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무효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5.18 시위대의 존재를 근거로 하여 통과된 5.18 특별법 등 5.18과 관련한 3개의 법률도 폐기되고, 5.18 유공자의 존재도 소멸시켜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광주에서도 천대받던 최하층의 개별노동자들로, 사회에 대해 품었을 평소의 불만을 600명의 북한특수군이 벌이는 파괴-방화 행위에 부화뇌동하는 방법으로 표출했던 반역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 앞에 선 대한민국

1900년이 열리면서부터 5.18은 갑자기 민주화의 성지로 둔갑하였고, 남한공산주의자들이 단결하는 정신적 공간적 구심체가 되어왔습니다. 이들이 5.18에 대한 대한민국 역사를 썼고, 국가유공자들 중 최고의 성골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특수군이 600명씩이나 축차적으로 침투하여, 남침을 위한 교두보를 호남지역에 확보하기 위해 벌인 전대미문의 게릴라작전을 벌였다는 이 자존심 상하는 북한의 불법행위를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인정하기에는 상당한 불편함이 따를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음모를 탐지하지 못하고 엉뚱한 부나비들에 주모자에 해당하는 중형들을 내리게 했던 1980년의 정보기관의 무능을 노출시키는 것도 불편한일 것이며, 남한 공산주의자들의 벌떼 같은 억지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반역행위인 것으로 바로 잡는 일도 만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모든 불편함들이 저의 이 연구로 인해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을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의 지휘부 사람들에게 저는 충분히 불청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들은 극복할 수 있고 또 극복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엄연히 역사가 거꾸로 쓰였다는 요지의 연구보고서가 있다며 대통령 앞에 그리고 국민 앞에 제출돼 있는 마당에, 이를 회피하는 것도 야만이고, 이제까지 탄압받아온 저를 또 다시 탄압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야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이토록 어이없게 왜곡하면서 어찌 일본에 대고 “왜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느냐” 그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겠습니까? 조만간 일본은 5.18에 대해 한국이 한국의 역사를 거꾸로 왜곡했다는 사실에 주목할지 모를 일입니다. 정녕 우리가 일본에게 역사왜곡을 바로 잡아라 요구하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럽게 왜곡돼 온 우리의 5.18 역사로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국가만 비난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선진국들에서는 국민들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제가 발굴해낸 5.18 진실을 신봉하는 국민이 많으면 역사는 바로 설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기망해오면서 20여 년 동안 국민의 주머니를 착취하여 유공자 대우를 받고 또 다른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더 많은 아이들과 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를 증오하도록 만들고 있는 5.18 세력에 따끔한 충고를 해주는 용감한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역사는 바로 설 것입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국민여러분, 5.18은 매우 중요한 역사이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5.18 단체들로부터 그리고 광주검찰로부터 생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그런 위험한 역사, 인생 12년을 걸고, 발아래가 천야만야 무섭게 입을 벌리고 있는 아슬아슬한 공간에서, 순간 순간에 가슴 조이며 연구할 수밖에 없었던 형벌의 역사, 오직 저 혼자 그런 12년을 참아내면서 그 “위대하다는 진실”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러한 제가 또 다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버려진다면 그 어느 세계인들이 이 나라를 문명국으로 대우할 것이며, 세계인의 그 누가 이런 국민을 문명인들이라 여겨 주겠습니까. 지금 5.18은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에서 금기어가 되어 있습니다. 방송통신 심의위에서는 2013년 6월 13일, 종편방송국들이 5.18 특수군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해서 중징계를 내렸고 사과문을 읽도록 강제하였습니다. 당시의 방송 출연자들은 그후 일체 방송출연이 금지돼 있습니다. 그리고 동 위원회는 포털에 게시된 북한특수군 관련 5.18 게시물들을 모두 폐쇄-삭제 처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인지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여쭙고자 합니다. 이제 저는 “5.18의 진실” 이라는 불편한 공을 5.18 단체들과 국가와 국민에 넘기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10.31.

지만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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