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북한특수군 600명을 증거하는 18개의 Smoking Gun
광주 5.18 북한특수군 600명을 증거하는 18개의 Smoking Gun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4.12.2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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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운
저는 북한특수군 600명이 5.18 폭동의 주연이었다는 딱 부러지는 연구결과를 내놨습니다.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게으른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제가 마치 탈북자들의 카더라통신을 재방송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실한 증거들을 가지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정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범인의 손에 들려 있는 ‘연기나는 총’(Smoking Gun)입니다. 저는 북한특수군 600명이 5.18 폭동의 주연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18개의 ‘연기나는 총’을 정부기록물 등에서 찾아냈습니다. 지금도 이 기록들은 엄연히 존재하면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습니다.

1995년 7월 18일에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 검찰부가 공동으로 내놓은 “5.18 관련사건수사결과”에도 연기나는 총들이 있고, 1985년 5월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에도 연기나는 총들이 있습니다. 2001-2006년에 걸쳐 5.18 기념재단에서 발간한 “5.18의 기억과 역사 1,2권”, 전남대학교출판부에서 발간한 “5.18 항쟁증언자료집 I-IV 권”의 내용들에도 연기 나는 총들이 있습니다. 북한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증거들이 있어, “5.1 8분석 최종보고서”에 제시해 놓았지만 아래에 정리한 18개의 Smoking Gun만으로도 ‘북한특수군 600명’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연기 나는 증거들이 지금까지 분명하게 존재해 왔고, 지금도 자료들 속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그동안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정치놀이로 5.18 역사를 악용해왔기 때문에 연기를 내고 있는 북한특수군 600명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18개의 Smoking Gun>

Gun #1

1980년,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학생, 운동권들은 5월 17일 밤중에 모두 지하로 숨거나 예비검속에 걸려들어 심한 고문들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1980년 5월 18일 새벽부터 대한민국 땅에는 젊은이들을 거의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광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광주 운동권은 잡혀갔거나 모두 숨었고, 교수, 대학생, 지식인들이 다 숨었습니다.(5.18기념재단 “5.18의 기억과 역사 1,2”, 전남대학교출판부에서 발간한 “5.18 항쟁증언자료집I-IV”)

이런 공포의 시간대인 1980년 5월 18일 오전 9:30분에 날렵한 학생 200여 명이 전남대 정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20여 명의 계엄군 병사들에 다가와 시비를 걸다가 돌을 던져 부상을 입히고 계엄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충장로와 금남로로 달려가 대기하고 있던 다른 대학생들과 파출소, 건물, 차량 등에 불을 질러 광주시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불을 지르면 반드시 사람들이 꼬입니다. 이들 학생 무리들은 광주의 대학생들이 아니었지만 검찰보고서는 대학생이라고 기록했습니다(검찰수사결과보고서).

당시 광주시에는 5.18 유공자들이 진술한 바와 같이 대학생들은 모두 꼭꼭 숨었습니다. 이런 칼바람 부는 시기에 “광주대학생 200여 명이 책가방에 돌멩이를 가져와 계엄군에 던지고 달아났다면 이들은 분명 광주대학생이 아닐 것이 분명한데, 서울검찰과 군검찰은 ‘수사결과보고서’에 이들을 북한특수군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로봇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대학생 200여 명”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검찰이 청맹과니였습니다. 아직도 검찰 보고서에 기록돼 있는 이 문장, 북한특수군의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Gun #2

5월 21일, 서울을 출발한 20사단 지휘부가 08:00시 정각에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극비 중 극비 정보를 입수한 300여 대학생시위대가 근처에 매복해 있다가 몽둥이, 화염병 등으로 기습공격을 가해 사단장용 지프차를 위시한 14개의 지프차를 탈취하여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공장에 가서 이들 지프차를 증표로 보여주며 장갑차 4대와 트럭 374대를 공출하였습니다. 또 다른 300명의 대학생 시위대가 대형 버스 5대를 타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와서 이날 09시에는 600명이 이곳에 집결하였습니다(검찰수사결과보고서, 5.18 분석 최종보고서의 사진들).

당시 광주에는 이런 능력을 가진 600명이나 되는 대학생도 없었고, 이런 공적(功績)으로 민주화인사가 된 광주인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에는 이 정도의 배포와 훈련 수준을 가진 집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5.18에 동원됐던 광주인들은 사리 판단 능력이 없는 10대 아이들이거나 20대 막노동꾼들이었습니다(사망자 및 유죄자 직업 및 연령 현황자료).

단 한 번도 함께 모여 본 적이 없는 이런 애송이들이 300명씩 2개조를 편성해 그 중 1개 조가 이동 중인 정규군 사단을 공격하였다는 것은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으로 보고서 문장을 작성한 검찰은 이들 600명을 그냥 광주학생 시위대라고 기계적으로 적기만 했습니다. 머리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손가락만 타자기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 보고서가 바로 전두환을 내란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작성된 검찰 보고서인 것입니다. 아직도 검찰 보고서에 기록돼 있는 이 문장, 북한특수군의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Gun #3

이들 600명은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돼 있는 44개 무기고를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털어 5,308정의 무기와 탄약, 8톤의 TNT를 탈취하였습니다. 광주에 이런 조직력과 능력을 가진 대학생 시위대는 없었습니다(검찰수사결과, 안기부의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북한의 ‘광주의 분노’). 이 기록 역시 1995년 8월 17일자의 검찰보고서, 안기부 상황일지, 광주의 분노에서 아직도 화약연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Gun #4

광주대학생들은 8톤 트럭 분량의 TNT를 폭탄으로 조립하여 도청지하실에 쌓아놓았습니다(검찰수사결과보고서, 광주의 분노, 안기부 상황일지, 광주일보 1996.10월 10일 특별보도).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전라도 계엄분소에 오직 한 사람 5급 갑의 배승일 문관뿐이었습니다. 광주의 핵심유공자들은 그들의 증언집에서 광주에는 이런 능력 가진 시민 없었다고 했습니다. 외지인이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기록이 검찰보고서, 안기부 상황일지, 광주의 본노, 공판자료, 일간지들에 있으며, 지금도 연기를 모락모락 내고 있습니다.

Gun #5

계엄군이 광주 시내에 있었을 때에는 이들 600명이 활약했지만,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시기인 5월 22일부터는 600명이 모두 복면을 한 상태에서 광주시민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검찰수사결과, 안기부 상황일지).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 때문이었습니다. 폭도 역할을 한 광주의 10대 및 20대들은 복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광주유지들이 무기반납을 위해 이들 비범했던 대학생들을 만나고 싶어 찾았지만 이들은 영영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광주인들은 광주 대학생들이 모두 꼭꼭 숨어 있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이들 600명을 서울에서 내려온 연고대생 600명이라고 호칭했습니다. 5월 18일부터 21일 계엄군을 시 외곽으로 추방할 때까지의 무서운 조직력과 전투력, 이는 광주시민들이 발휘한 것이 아니라 외지인 600명이 발휘한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6

이들 600명은 5월 21일 오후와 22일 새벽 사이에 광주교도소를 6회 공격했습니다(검찰수사결과).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냈을 것입니다. 이 무모한 작전은 북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광주시민들 중, 북의 지령을 직접 받고 매우 무리하게도 야간에 광주교도소 공격을 지휘한 사람 없습니다, 이 역시 지금도 연기를 내고 있는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7

광주에는 장갑차 4대를 운전할 수 있는 장갑차 운전수 4명이 없었고, 이를 운전한 공적으로 유공자가 된 사람 없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8

1980-81년 재판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5월 26일 낮과 밤에 개념 없이 설치던 20세의 구두공, 20대 중반의 화물차 운전수 등 개념 없고 뿌리 없는 떠돌이 노동자들이었습니다(처벌자 명단), 당시 정보당국은 5월 18일-21일까지 화려한 파괴-선동-엽기살인 기술을 보였던 600명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잡지 못했습니다. 정보당국들이 잡은 폭도는 5월 22일 이후 어슬렁거리며 개별적으로 들어왔던 10대 어린이들과 20대의 개념 없는 막노동자들이었습니다(처벌자 명단과 5.18 기념재단 자료). 이 역시 북한특수군의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9

총에 맞아 사망한 광주시민의 70%가 무기고에서 꺼낸 총에 의해 사망했습니다(안기부 일지, 계엄사). 광주시민이 광주시민을 조직적으로 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0

‘5.18 분석 최종보고서’ 사진들에는 광주인일 수 없는 얼굴과 포즈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수장갑을 끼고 장갑차 위에 기관총을 걸고 사격준비 상태를 유지하면서 눈에서 빛을 내뿜는 고도로 훈련된 몸매, 막대기 하나로 20사단을 습격한 날랜 몸매들, 육중한 유탄발사기를 한손으로 파지한 용병의 몸매, 복면한 얼굴들, 광주시민들의 구경거리가 된 집단행동 등을 보인 용맹한 전사 집단은 광주의 양아치 구두닦이 식당종업원 석공 목공 구두공 등일 수 없습니다.

이런 계급은 단 한 번도 조직화된 바 없었습니다. 이들은 5월 22일부터 각자 어슬렁거리며 도청에 왔던 개념 없는 부나비들이었습니다. 광주폭동의 주역으로 중벌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이 때 전혀 활동한바 없습니다(5.18 측 자료). 이런 몸매는 3년 정도의 군대생활을 한 우리 정규군 병사들에서도 나올 수 없는 몸매요 철저하게 다듬어진 자세입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1

광주의 정의평화 천주교 신부들과 북한이 주고받으면서 반복적으로 발행한 사진첩들이 있습니다. 으깨진 얼굴, 전기톱 같은 것에 의해 얼굴의 반이 잘려진 얼굴 등을 담은 사진첩입니다. 이런 으깨진 얼굴들을 놓고 천주교 신부들과 북한은 계엄군이 난자한 얼굴이라고 뒤집어씌우지만 우리의 자식들로 이루어진 계엄군은 이렇게 악랄한 심성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렇게 잔인한 얼굴을 조각해낼 시간도 없었습니다. 이 사진첩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2

광주의 도시가 파괴된 정도를 보면 양아치 계급이 해낼 수 일이 아니었습니다. 광주인들이 광주시를 이렇게 잔인하게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특히 거대한 MBC 건물은 아무리 많은 화염병을 던졌어도 타지 않았습니다. 광주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인이 아닌 외지인이 대형변압기를 폭파시켜서야 비로소 소각될 수 있었습니다(5.18 측 자료).

파괴되고 소각된 잔해들을 청소하는 일은 계엄군이 담당했습니다. 40일 정도나 걸렸습니다. 전라도 사람 70%를 죽이려고 왔다던 계엄군이 어린아이들의 따름을 받으면서 40일씩이나 땀을 흘리며 광주사람들을 위해 청소를 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런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계엄군은 천사이고, 파괴자들은 전문적인 악마들이었습니다. 이런 능력 있는 악마들이 광주의 양아치 계급일 수는 없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3

광주 5.18 묘지에는 한국인으로 판명되지 않은 시체가 12구 있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4

2013.5.15.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 프로는 실로 충격적인 프로를 진행했습니다. 5.18 광주에 5.18 광주작전을 총 지휘-점검하기 위해 북한의 ‘광주작전지휘관 ’문제심‘(그후 국방차관급으로 승진)이 광주로 급파되었다는 사실과 지금 분당에 살고 있는 당시 19세의 특수군 전사(가명 김명국)가 문제심을 호위하는 호위병으로 5.18 광주에 내려왔었다는 사실을 1시간에 걸쳐 방송했습니다(방송장면과 내용들) .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5

2013년 4월 22일의 TV조선 방송입니다.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었던 김용삼씨가 1996년과 1998년에 황장엽과 김덕홍으로부터 확인한 내용을 밝혔고, 더 자세한 내용이 2013년 월간조선 4월호에 게재됐습니다. “5.18은 북한이 배후조종한 후 계엄군에 뒤집어씌운 사건이고, 그 작전을 기획한 대남부서 사람들이 5.18 종료 직후 무더기로 훈장을 받고 술 파티를 했다”는 요지의 증언이었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6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5.18은 북한군이 가서 일으킨 폭동이라고 말하고, 5.18의 내용을 가장 확실하게 안다는 탈북자들 16명이 2009년에 450여 쪽에 이르는 증언집 “화려한 시기극의 실체 5.18”을 냈습니다. 이 내용들의 거의 모두가 남한의 수자자료와 일치했고, 통일부 북한자료 센터에 보관돼 있는 북한 문서들과 일치했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7

1982년 및 1985년 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 실린 상황자료 내용들이 1985년에 정리한 안기부의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자료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더 자세합니다. 북한군이 광범위하고 다이나믹하게 움직이던 폭동의 상황들을 자세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계엄군이 소규모 단위로 진압할 때와 대대 단위로 진압할 때에 각기 전략을 달리해 싸웠다는 전술 전략 교훈까지 기록돼 있습니다. 북한군이 광주에서 직접 작전을 하지 않고서는 작성될 수 없는 대남공작 역사책입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Gun #18

1982년 북한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595쪽과 1985년 조선노동당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 35쪽에는 “600여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이 이룩한 성과와 역할이 기록돼 있고, 1985년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의 40쪽에서부터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광주공원 학생시위대 300명”, “유동3거리 학생 시위대 300명”, “학생시위대 600명”이라는 표현이 매우 많이 나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5.18을 북한특수군 600명이 저질렀고, 광주의 떠돌이 노동자 무직자 등 사회불만계층이 부나비가 되어 부화뇌동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18개의 smoking gun을 찾아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18개의 smoking gun은 “5.18 분석 최종보고서”가 내놓은 결론에 Q.E.D.라는 수학적 마크를 찍을 수 있게 한, 흔들릴 수 없는 근거들인 것입니다.

이외에도 북한과 남한의 이적행위자들이 북이 저지른 잔학성을 남한에 전가한 증거들이 꽤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내거는 신부들이 광주진압 8일만인 6월 5일, 일본에서 "찢진 깃폭"을 발표-확산했고, 광주의 정의평화 위원회가 북한과 나란히 시민들의 으깨진 얼굴사진을 사진첩으로 발간하여 계엄군을 모략하였습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과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가 같은 내용을 공동으로 담은 책들입니다. 찢어진 깃폭을 주요내용으로 기재하여 대한민국과 공수부대와 미군을 모략했습니다. 지금의 통진당과 북괴의 관계처럼, 당시 남한의 이적행위자들도 북한과 함께 5.18 모략적전을 연합하여 수행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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