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는 평양 총독부인가
방송통신심의위는 평양 총독부인가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1.14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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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과 삭제의 대상은 북한, 좌익, 김대중, 전라도, 5.18 을 보호하는 것들

- 인터넷이 방통심의위의 사유물 인가? -

▲ ⓒ뉴스타운
과거에 우익으로 행동했던 박효종이 방송통신윤리위 위원장으로 가면서 급변했다는 것이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가 이끄는 방통심의위는 한 마디로 일제시절의 언론 검열 방법보다 더 독재적이고 자의적이다. 그런데 그 검열과 삭제의 대상들을 보면 주로 북한, 좌익, 김대중, 전라도, 5.18 성역을 보호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방통심의위는 평양총독부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

아래 글들은 네이버에 있던 글들이다. 게시자는 주로 필자의 글들과 한국논단의 글 그리고 윤상원 평전의 글 등 7개의 글들을 모음했다. 첫 번째 퍼온 글이 "[펌] 광주사태는 명백한 공산화운동이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윤상원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들이 있고,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인 표현들, 5.18에 대한 통계자료들이 집대성 돼 있다. 비난을 위한 감정적인 표현은 없고, 모두 과학적 성격을 갖는 분석자료였다. 이 글은 2006년 10월 25일에 네이버에 게시됐다. 10년 전에 게시한 이 글을 방통심의위는 2015년 1월 9일에 네이버로 하여금 이 글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살아생전 구경조차 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독재 권력을 실감하고 잠시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그 삭제근거를 보니 욕설이 절로 나오고 분노가 치민다. 아래 7개의 글들이 "사회질서를 위반한 글"이라 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제6조 제5호와 제8조 제5호 '바'항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그럼 이 두 개 항의 심의규정이 어떤 것인지 구경부터 해보자. 느낌부터 먼저 표현한다면 "기절초풍"이다.

제6조 제5호 : 게시물은 "헌법에 반하여 역사적 사실을 현저히 왜곡하는 정보"에 속한다.

제8조 제5호 '바'항 : 게시물은 "사회통합 및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정보"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문 출신 인종 지역 직업등을 차별하거나 이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에 속한다.

아래 7개의 글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글들이고, 여러 가지 차별을 하여 사회통합과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글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글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래 7개의 글들은 진실에 가까운 글들이다. 이런 글들이라 해도 광주와 김대중에게 불리한 글이면 차별을 하는 글이라 하는 모양이다.

이 대한민국에 어찌 이런 이상한 인간들이 국민세금을 축내면서 방통심의위에 들어앉아 전근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 국민은 이런 편협한 시각을 가진 인간들, 5.18의 이익을 위해, 전라도의 이익을 위해 김대중의 명예를 위해 북한의 명예를 위해 국민세금을 사용하는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행동들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줘야 할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한 사람들은 "5명의 통신심의소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위원장 : 김성묵, 위원 : 장낙인 하남신 윤훈열 윤석민

실무자 : 지경규 (02) 490-7000 대표전화 02-3219 5114

양천구 목동동로 233 방송회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박효종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두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펌] 광주사태는 명백한 공산화운동이었다

광주 사람들은 말한다. 윤상원이 없었다면 5월 광주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그의 생가도 복원되고 그에 대한 영화도 촬영되었을 만큼 윤상원이라는 이름이 5월 광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윤상원은 알려진대로 광주사태의 핵심주동자이며 무장봉기의 지도자 였다. 아직까지 광주시민들은 그를 열사로 부르고 있다.

전민노련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광주에 내려 온 윤상원은 박남현을 학습시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시킨 후 훌륭한 대중선동꾼으로 5월광주시위의 주도적 역활을 하게 만들었다. 무장봉기를 계획한 후 무기탈취조를 조직하여 경찰서 무기고와 아시아자동차를 습격 장갑차와 군용트럭 카빈소총과 실탄 TNT등으로 무장시킨 자이며 당시 26살에 불과했던 박남선을 무장혁명세력의 총사령관으로 등장시켜 편제도 없던 시민군의 조직대오를 만든 막후인물이었다. 5,19일 교통버스로 경찰 4명을 깔아죽인 것도 윤상원이 이끈 시위대였음이 밝혀졌다. 그는 80년 5.27일 광주도청에서 마지막 전투를 진두지휘하다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당시 도청에 남아 싸우다 죽은 자들은 윤상원을 빼면 대부분 고아원 출신이거나 부랑자들, 신원을 알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김대중과의 관련부분이다.

윤상원의 동지이자 노동시인인 박노해의 "윤상원 평전"은 김대중과 윤상원의 관계를 이렇게 증언한다. 당시 서울대 앞의 녹두서점 주인이었던 김상윤의 추천으로 윤상원이 '민주 회복 통일 국민회의' 사무국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재야 단체들 중 최상위 단체였으며, 이 단체의 사무국장이 되었다는 것은 김대중 정권 창출을 위한 최고위 실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5월 광주의 성격을 규정짓기 위해서 핵심인물인 윤상원이 가진 사상과 의식을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읽는 중요한 관점이다. (광주도청에서 윤상원과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부랑자나 양아치들이 스스로 의식화 되어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싸웠다고 보는 건 분명 무리가 있지 않은가?)

혁명 운동가의 목적은 기존의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노동자 계급을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재조직 화함으로써 진정한 인간 해방을 이룩하는 데 있다.(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이다.) 따라서 그의 모든 관심과 노력과 행동은 '투쟁'에 있다. 투쟁을 잘하기 위한 조직화, 투쟁을 잘하기 위한 사상 투쟁으로 그의 구체적 실천 행위는 조직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총파업으로 군사 독재를 타도하자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총파업만으로 국가 권력은 타도되지 않습니다. 우리 노동자 계급은 다른 투쟁 수단, 즉 무장 투쟁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일상 투쟁 속에서도 끊임없는 대비를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박노해 윤상원 평전 중)

결론적으로 광주사태를 이끌었던 윤상원의 목적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음을 위의 글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보자. 프롤레타리아혁명이 민주화인가? 공산화인가? 단연코 공산주의 핵심적 이론이다. 이것을 민주화라고 부를 순 없다. 더 확실한 것은 그 광주시민군의 우두머리가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던 이가 김대중이었다는 사실이다. 1985년 김대중 본인이 그를 자택으로 불러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제안했다고 이 철이 밝힌 바 있다. 고로 김대중이나 윤상원이 꿈꾼 세상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화는 분명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탈북자의 다수 증언이나, 탈북자 중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은 당시 서해안을 통해 일개 대대병력의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로 들어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광주에 남파되었다가 돌아간 병력은 3분의 1정도라고 하며 이들은 영웅칭호와 훈장까지 받았으며 공공연히 자랑한다고 한다. 광주시내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신들은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틀림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당시 사망한 광주시민들의 다수가 국군이 쓰지 않는 칼빈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과 발발 하루만에 무기고가 털리고 장갑차가 탈취된 사실은 급조된 시민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특수목적으로 훈련된 조직이 개입했다는 말이다.

◆ 시민군이 광주시민을 마구 쏘았다

광주사태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189명, 이중 23명은 군인, 4명은 경찰, 민간인 162명이다. 162명중 149명은 가족에게 인계되었지만 13명에 대해서는 가족도 없고, 신원도 불명한 사람이었다. 광주사태에서 죽은 대한민국 시민은 149명인 것이다.

민간 사망자 162명중 72,2%에 해당하는 117명은 시민군이 탈취한 칼빈 소총에 의한 것이었다.(육군본부) 군인들은 모두 M-16을 소지했다. 이는 대부분의 죽은 시민들이 시민군의 총에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발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72.2%가 오발일 수는 없다. 이는 시민군 속에 불순분자들이 들어 있으면서 국민을 흥분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시민을 쏘았을 확률을 높이고 있다.

민간 사망자 162명 중 M-1 및 칼빈 소총에 의해 사망한 사람 117명을 빼면 45명이 남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수류탄, 화상, 타박상, 자상 등으로 죽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죽은 공작원이 13명이면 살아간 공작원은 얼마나 많을까?

신원불상자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이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들이 많이 있다. 며칠 전에 만난 탈북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 친구의 남동생이 특수부대에 있댔는데 1980년 광주사태 때 광주에 가서 죽었댑니다. 시체는 찾지 못했지만, 남동생의 소지품을 가지고 열사능을 만들어 주었댑니다. 당시 광주사태 때, 북에서는 대남사업부, 3호청사, 무력부, 정찰부 사람들이 많이 내려갔다 들었습니다. 왜 지문이 없어서 신원이 미상이라는 사람들 있지요? 그 사람들이 모두 북에서 갔던 사람들이라 합데다. 북에서는 다 아는 상식이지요

13명의 사망자가 신원불상자들이 북한 공작원이라면 죽지 않고 살아간 공작원들은 얼마나 될까? 중상자는 총 391명, 이중 군인이 82명, 경찰이 27명, 민간이 282명이었다. 북한공작원이 조직적으로 개입됐다면, 이들 민간인이 당한 부상 역시 대부분 M-1 및 칼빈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높다.

북한 공작원들이 개입했다는 강력한 정황증거들은 작전의 조직성에 잘 나타나 있다.

5.18 주역이자 국회의원인 정상용은 5.18 돌격대의 대부분이 양아치, 품팔이꾼 등으로 구성된 기층세력(하류세력)이였다고 증언했다.

5.18 주역 국회위원, 5.18은 양아치들의 혁명이었다

5.18의 기동타격대 구성원은 그 80%가 17살에서 22살 사이의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노동자, 점원, 실직자, 점원, 구두닦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품팔이 등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기층민중이며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다. 지금까지는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말을 썼지만 나는 5월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간단한 통계에 광주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도청 지하의 TNT 사건만을 더 보태도 우리는 광주사태에 북한공작원이 대거 참여했다는 강한 의혹을 갖게 된다.

5.18에 북한군 1개대대 참전( 한국논단11월호 2006/10/25 18:34)

5.18에 북한군 1개대대 참전( 한국논단11월호)

▲이도형 : 아까 나온 광주사태 이야기 다시 한 번 듣고 싶은데 그러니까 1980년 5월18일 이른바 5. 18 광주사태가 사실은 그 전 날부터 전남대학, 조선대학 등에서 데모가 격화되다가 확대된 것인데 실제로 그러니까 임천용 씨가 거기서 겪어본 것을 토대로 말하자면 어떻게 거기서 개입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임천용 : 광주사태를 제가 이제는 제 입으로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신감이랄까 그런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선 한국에 와 있는 특전사 출신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도형 : 특전사라는 것이 북한의 특전사 말입니까?

▲임천용 : 예, 북한의 특전사 출신들이 지금 나처럼 남한에 와있는 사람들이지요.

▲이도형 : 그것이 몇 사람이나 되요?

▲임천용 : 우리 단위에 있던 사람들이 20여명 되는데 그 외에도 제가 알기로는 저처럼 탈북 해 와 있는 사람이 한 7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확실히 다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는 제가 모르는 것이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상황만 말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사촌동생 김선일 이가 저희부대에서 군사복부를 7년이나 같이 했어요. 이 사람이 80년도 10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는 소위계급장을 달고서 편제가 없는 작전참모부에 4급 작전 참모로 내려와 있었는데 7년을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광주문제는 81년 6월 정도부터 그 소리를 대대장과 김선일 두 사람 사이에 하는 이야기를 통해 듣기 시작했는데 그 대대장은 직접 나왔던 당사자고 김선일이는 김정일이 사촌형이잖아요. 김일성의 막내 동생 김영주 아들인데 이들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그 다음에 김일성 교시나 김정일이 방침이나 광주문제를 부각시키는 발언들을 많이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없는 일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공연히 인민군 상상교육 하느라 없던 일들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광주에 나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살아있습니다. 3명이. 우리 대대 사람이 3명이 살아있는데 한 사람은 92년도에 제대를 했고 그리고 두 사람은 현재 현역으로 복무중입니다. 북한에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장난이라고 볼 수 없는 거지요.

▲박화진 : 그 이후에 특수부대출신으로 남한의 각계각층에 침투되어있다고 여기서 많이 추정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임천용 : 광주에 내려왔다가 돌아간 인원이 3 분의 1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와서 많이 죽었겠지요. 우리대대에서 7명 나왔다가 4명 죽었어요. 그 4명중 한사람이 여기서는 1. 21 사건이라 하는 청와대습격미수사건에 참가했다가 여기서 죽은 함장근 이라는 사람 친동생 함장관인데 그 사람이 바로 광주에 내려왔다가 여기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있습니다. 그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못 돌아갔는데 그 인원이 북쪽에서 추산하기로 그게 다 죽었겠느냐 부상당했거나 합류 못했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잠재세력이 여기 내부에 분명히 있을 것이고 최근 들어 평택시 사태 등을 볼 때 이것은 이곳의 민간주도는 아니다, 내부에 모종의 세력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부로 보인다는 것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전시나 전시뿐만 아니라 어떤 내부적인 반란 내지 소요를 동원할 수 있는 북한의 계획.

제목 : ★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 아닌 이유

1. 모든 운동의 목표는 구호에 담겨있다. 그런데 광주사태의 구호는 민주화 구호가 아니라 안보를 파괴하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앞당기자는 좌익들의 구호였다.

유신잔당은 인민의 적이다,

외세를 배격하고 미군을 추방하자,

매판자본과 군발이를 추방하자,

반공법-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촉구한다,

경찰과 공무원을 타도하자 등이다(戒嚴史. 1082.3 육군본부 발행 p.42).

2. 민주화운동이라면 방법도 민주적인 것이라야 한다. 하지만 광주사태에서 사용된 수단은 민주적인 수단이 아니라 폭력, 방화, 살인, 약탈, 선동, 매수 등이었다. 운동의 행태 또한 국민과 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파출소 습격, 세무서 및 방송사 방화, 도청 등 정부기관 점거, 교도소 습격, 방위산업 업체 습격, 무기약탈 등 폭력행위였다. 군보다 먼저 발포하고, 군보다 먼저 군을 장갑차로 군을 깔아 죽였다. 이는 정부 전복과 질서 파괴를 위한 무장 폭동임이 분명하였다.

3. 이들은 날조된 유언비어를 퍼트려 군중을 선동하고, 폭도들을 흥분시키기 위해 불량배, 구두닦이, 넝마주이, 공장근로자, 무직자, 전과자, 행상 등 사회소외계층에 술을 먹이고, 민간인들을 마구 쏘아 군중을 흥분시키고, 계엄군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했다. 부검결과 민간인 사망자의 72.2%가 구식 무기인 M-1과 칼빈 소총에 의해 사살되었다(계엄사 p.140). 이들 구식 소총들은 모두 경찰 및 예비군 무기고에서 탈취한 것들이다. 당시 군은 100% M-16최신형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소요의 주동자들이 진압군을 향한 적개심을 심어주기 위해 민간인들을 마구 쏜 것이다.

저들이 군중을 선동하기 위해 유포한 유언비어를 보자.

1)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 싹쓸이 하러 왔다 !

2) 공수부대원이 여자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도려냈다 !

3) 공수부대원이 임신한 여자의 배를 대검으로 찔렀다 !

4) 죽은 시민을 불도저로 밀면서 처리하는 과정이 TV에 나왔다 !

5) 공수부대원이 광주에 들어오면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죽일 것이다 !

6) 대검으로 여자의 젖가슴을 도려냈다

7) 대검으로 시민의 머리 가죽을 벗겨냈다.

군은 호남 장병을 골라 광주로 무더기로 보냈다. 호남을 선무하기 위해 영관급 장교를 두 대의 수송기에 태워 보내기도 했다.

대검은 날이 없는 무기다. 육박전 때 적을 찌르기 위한 쇠꼬쟁이에 불과하다. 대검으로는 무 껍질도 벗길 수 없다. 그걸로 어떻게 여자의 젖가슴을 도려내며, 머리 가죽을 벗기는가.

좌익들은 주월한국군을 용병이요 무자비한 양민학살자로 비하하고 있다. 한겨레21이 가공해낸 양민학살에 대한 유언비어와 위의 광주 폭동이 가공해낸 유언비어를 비교해 보자. 이런 선동적 구호는 좌익들의 해묵은 전술 수단이지 결코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사용할 수 있는 구호가 아니다

[펌] 5.18 광주 폭동에 대한 새로운 증언

북한에서 온 군 간부의 새로운 증언이 나타났다. 북한군 1개 대대가 광주에 파견된 실상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이 자료를 입수하는 대로 필자는 필자가 광주로 끌려가 린치와 구속을 당하고,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은 데 대해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것이다.

광주사태는 김대중이 이끄는 빨갱이 집단과 북한 특수군이 야합하여 일으킨 폭동이었고, 대규모 광주 시민을 폭동으로 내몬 엔진은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려 왔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여학생을 겁탈하고 유방을 도려냈다, 임신부를 군화발로 밟아 태아가 튀어 나왔다"는 식의 유언비어였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광주시민들은 이런 유언비어에 흥분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지 민주화에 관심이 있어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광주는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한 사실이 빨갱이들의 사기극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호남의 영웅 김대중은 반역자요 빨갱이라는 사실에 대해 호남인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장기표 : 슨상님, 무정부상태를 만들테니 대통령 되십시오

5월 12일 17:00시, 국민회의 지도부, 김대중, 문익환, 예춘호, 이문열, 한완상, 한승현, 서남동, 이해동, 심재권, 장기표, 이헌배, 계훈제 등이 북악파크호텔에서 또 다시 회동하여 투쟁방향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오고 간 보고와 지시 내용은 이러했다.

장기표-심재권의 보고내용 : "전국 26개 대학의 학생회장단 45명이 5.11.15:00시부터 5.12.09:00시까지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철야회의를 통하여 앞으로 잠정적으로 교내시위만 한다. 휴교령 발동시에는 단호히 투쟁을 전개한다. 계엄령 해제와 정치일정의 명백한 발표를 촉구한다. 학원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와의 대화를 위하여 국무총리 면담을 촉구한다는 사항을 결의하였으며, 이어 5.16. 전국대학학생회장단은 이화여대에서 회의를 열어 새로운 투쟁방법을 협의키로 하였는데 앞으로 학원시위가 확산될 것이 전망됩니다."

김대중 : "과도정부의 실권을 잡고 있는 유신잔당들이 민주화에 역행하여 정권을 계속 잡으려는 음모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화운동을 하자는 것은 반 독재 민주회복을 실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반 민주 유신세력들의 음모를 봉쇄한 다음 민주정부를 수립하는데 있다. 서울대, 연대, 고대 등 명문대학의 동정을 잘 살펴보라."

장기표 : "각 대학은 일정한 날을 정하여 동시에 각목과 화염병을 사용한 폭력시위를 과격하게 벌여 저지하는 과정에서의 희생을 각오하면서 민중의 호응을 얻어 정부중요부서를 점령하게 되면 4.19와 같은 무정부상태가 되는데 이를 계기로 민주세력의 구심인물인 김대중 선생을 사태수습 인물로 내세워 학생과 민중을 설득하면 정권장악이 가능하고 사후 수습으로서 민주제도연구소를 주축으로 과도정부를 이끌면 차기 정권까지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심재권과 함께 각 대학 학생회장단에 영향력이 있는 복학생들을 규합, 학생폭력시위를 주도하겠으니, 선생께서는 이문영에게 과도정부구상을 미리 해 두시기바랍니다."

김대중 : "알았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인가, 반역의 해방구인가

1980년 5.14일 및 15일 양일간의 소요는 극렬함의 정도로 보나 양적으로 보아 경찰력의 한계를 이미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양일간의 학생소요는 김대중이 이끄는 국민연합 산하인 민주청년협의회의(장기표 등 복학생 조직) 사주에 따라 전국 33개 대학총학생회장들에 의한 투쟁이었다.

5.22일로 계획돼 있는 소요는 국민연합 등 소위 재야정치 단체들과 전국 59개 총학생회장단회의의 연대 하에 이루어지는 대대적인 민중봉기이기 때문에 군에 의한 대대적인 대책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국방장관은 5.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청와대에서 열린 시국대책간담회에 참석하여 이 사실을 보고했다. 5.17 계엄령은 이렇게 해서 선포됐고, 이 선포에 모든 지역이 순순히 따랐다. 그러나 광주만은 당시 개념으로 '반역지역'이 됐다. 광주 법관들은 5.18에 북한 특수군 개입이 없었다고 판결했지만, 탈북자 세계에서는 황장엽씨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에 특수부대가 남파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인가 아니면 반역의 지역인가? 김대중은 확실한 반역자요 빨갱이다. 이런 반역자를 호남은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광주에는 초 매머드 규모의 '김대중 컨벤션센터'가 들어서 있다. 지난 6.15일 북한 빨갱이, 남한 빨갱이들이 모여 6.15 통일 굿판을 벌인 곳도 광주였다. 유독 호남인들의 대부분이 반역자 김대중을 지지하고, 그의 반역음모인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김정일보다 싫어한다는 것이 광주-호남의 정서다. 경상도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런 호남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위해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면 다른 지역사람들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무기고를 털어 정부군을 공격한 광주폭동 사건을 민주화운동이라 하면서, 이를 토벌한 한국군을 국가폭력배라 한 빨갱이들, 빨치산 김달삼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군인 가족을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살해한 제주 4.3사건을 민주화운동이라 하면서, 빨치산을 토벌한 군경을 '국가폭력배'로 규정한 빨갱이들의 역사뒤집기를 우리는 규명-처단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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