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 김철 기자
  • 승인 2014.05.19 00:26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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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진압군 영웅 추모에 즈음한 기자회견문과, 제28묘역 참배 이유서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2014년 5월 18일 오후 2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28묘역에서, 1980년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낯선 광주에 출동하여 적화통일을 획책하려는 반란 폭동을 진압하다가 희생당한 국군과 경찰을 34년만에 추모하는 뜻 깊은 행사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달려온 애국시민 1,000여명이 참석해 이들의 아픔을 추념했다.

이번 행사는 "5월 18일, 대통령과 정치꾼들은 반란의 고장 광주로 가고, 애국자들은 '광주반란자들에 희생당한 충신들' 찾아 동작 현충원 제28묘역에 간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한민국대청소 500만야전군(의장 : 지만원 박사)'이 주관하여 많은 애국시민단체들이 인터넷을 보고 자발적으로 참여 했으며,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했다. 다음은 이날 기자회견문 전문과 행사 및 서울현충원 28묘역 참배 이유서 전문이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광주진압군 영웅 추모에 즈음한 기자회견문

일시 : 2014년 5월 18일(일) 오후 2시
장소 : 서울현충원 제28묘역 참배후 (정문)

5.18은 충돌의 역사입니다. 충돌에는 당사자가 있습니다. 한쪽은 무기와 폭력을 수단으로 한 광주시위대였고, 다른 한쪽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최규하 정부였습니다. 2004년부터 2014년인 지금까지 만 11년 동안 제가 밝힌 바에 의하면 전남 18개 시군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30만 규모의 도시 게릴라전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참전하여 기획-지휘한 전쟁이었습니다. 이 근거는 수사기록에도 있고,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도 있고, 황장엽과 김덕홍을 비롯한 수많은 탈북자들이 증언한 기록물들에도 있습니다.

수사기록에 명시돼 있는 간단한 몇 개의 사실들만 가지고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광주시민은 카빙소총 등 무기고에서 나온 소총으로 무장했고, 계엄군은 M-16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상으로 사망한 광주시민의 70%가 광주시민이 소지한 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사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 국민이 아닌 시체가 12구였습니다. 10대 학생이 33명이었습니다.

지각 있는 일반 시민들과 판단력 있는 대학생들은 죽지도 않았고, 극히 몇 명을 빼고는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한국 국민이 아닌 12구의 시체와 33명의 소년을 빼면 사망한 20대 이상의 광주시민이 불과 121명뿐이었습니다. 이들의 거의가 다 구두닦이 등 광주시민들로부터 천대받던 양아치 계급이었습니다. 시위에 앞장섰다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모두 283명, 이들 역시 대부분이 양아치 계급이었습니다. 시위에 앞장섰던 20대 이상의 광주시민은 불과 404명(사망자121+처벌자283)입니다. 거의 다 지각없는 양아치  계급들입니다. 그런데 수사기록에는 600명의 조직화된 특수군중이 펄펄 날아다녔습니다.

이들이 이동 중인 정규 20사단 사령부를 매복-기습하여 지프차 14대를 탈취해 가지고 방위사업체인 아시아자동자 공장으로 가서 4대의 장갑차와 374대의 트럭을 탈취해 불과 4시간 만에 전남 17개 시군에 산재한 44개 무기고를 털어 2개 연대 무장을 마련했고, 화순광업소로부터 8톤 트럭분의 TNT를 탈취하여 도청지하실에 옮겨놓고 순식간에 무기로 조립해 쌓았습니다. 그런데! 처벌받은 283명의 진술조서를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중요한 행위를 한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인터넷에 범람하는 유공자들의 무용담에도 이런 작전 수행한 사람 일체 없습니다. 그리고 이 600명은 5월 26일 오후부터 안개처럼 증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5월인 지금, 북한 전역에서는 최고간부들이 참석하여 1주일 이상 5.18을 기념하고 추념합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5.18이 대남공작 역사 중 가장 빛나는 걸작이었다고 자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 청년호", "5.18 땅크호", "5.18 영화제작소" 등 5.18 이라는 명예가 수여됩니다. 5.18이 김일성이 지휘한 역사가 아니라면 어째서 김일성이 남한의 황석영과 윤이상을 어렵게 불러들여 5.18 영화를 제작하였겠습니까?

5.18, 북한에서는 자기네 역사라 성대하게 기념하고, 남한에서는 민주화운동이라며 광주에서만 초라한 규모로 기념합니다. 광주행사에 타 지역 국민들 거의 안 갑니다. 광주만의 행사요, 빨갱이들만의 행사인 것입니다. 이런 코미디가 이 지구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런 사실들은 2010년에야 비로소 정리되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의 대법원은 이런 5.18 폭력 시위대를 놓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 판결했고, 폭동을 진압한 정부를 반란군이라 판결했습니다. 시위가 빨리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했는데 신군부가 이를 조기진압한 것은 분명한 내란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인민군 판사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런 반역의 판결 내릴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믿어지지 않으시면 지난 4월 하순, 한 고등법원 판사(김흥준)가 간첩혐의자인 유우성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살펴보십시오. 검찰이 나열한 유우성의 간첩행위들을 놓고 그 판사는 애국적 동기에서 행한 애국행위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5.18 무장반란행위가 헌법수호를 위한 애국행위였다고 판단한 1997년 대법관들하고, 국가를 상대로 온갖 사기를 치면서 수행한 오늘의 간첩행위가 애국행위라 판단한 고등법원 판사하고, 다를 게 무엇입니까?

사실이 이러한데도 지금까지 기회주의로 살아온 정치꾼들은 5월만 되면 광주로 날아가 5.18 묘지에 참배하고 5.18을 성스러운 민주화운동이라며 기념행사를 치르고 옵니다. 반면, 국가의 명령에 따라 반란을 진압하다가 이들 폭도들에 무참하게 살해된 27명의 군-경들은 세인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서울 현충원 으슥한 곳에 쓸쓸히 묻혀 천대를 받아왔습니다. 자랑스러워야 할 이들의 가족들은 이웃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으며 '34년 동안'이나 인고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가슴에 손을 앉고 냉철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애국하는 국민이라면 5월 18일 날, 광주로 날아가야 합니까? 아니면 이들 27명의 영웅들이 묻힌 서울현충원 제28묘역으로 와야 하겠습니까? 5월 18일에, 광주와 서울현충원, 두 곳 중 어느 곳에 더 많은 국민이 모이느냐에 따라 5.18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판이 날 것입니다. 많이 모이면 우리가 이깁니다. 대통령 얼굴 쳐다 볼 이유 없습니다. 정권은 잠시이고 국민은 영원합니다. 우리 모두 역사의 한 획을 그어 후손들에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5월 18일, 제28묘역 참배 이유

여기에 반란폭동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한 영웅들이 누워있습니다. 1980년, 꽃다운 나이에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낯선 광주에 출동하여 적화통일을 획책하려는 반란 폭동을 진압하다가 희생당했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충신이요 영웅으로 대접받아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반역자로 낙인찍혀 차디찬 지하의 감방에 수감되어 왔습니다. 위로받아야 할 죄 없는 가족들이 주위로부터 수모를 받으면서 한의 세월을 인고해왔습니다. 어제의 충신이 역적 되고, 어제의 역적이 충신으로 행세해 온 것입니다. 이는 국가를 적에게 빼앗기지 않고서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비참한 국치요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기막힌 이변을 바로 잡으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억울한 영혼들과 그 가족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분들이 폭동을 진압하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분명 없었습니다. 1989년 노태우 시절, 부산 동의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몹쓸 시위대들이 임무수행중인 경찰관 7명을 근무현장에서 태워 죽였고, 그들은 당시 무기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무기징역자들이 2002년에 갑자기 민주화 영웅이 되었고, 최고 주동자에게는 당시 금액으로 6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됐습니다. "경찰은 군사정권이 고용한 폭력배이기 때문에, 그들을 살해한 것은 영웅적인 행동" 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국가란 말입니까?

2002년 6월 29일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나라 해군이, "김대중이 특별히 만든 교전규칙"에 손발이 묶인 채, 북괴해군으로부터 일방적인 공격을 받아 6명이 장열하게 전사했습니다. 슬피 울어야 할 대통령 김대중은 국민을 조롱이라도 하듯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임동원과 함께 월드컵 축구 구경을 간다며 일본으로 떠남으로써 애도 분위기에 찬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로부터 전사자들과 유가족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 군의관은 이렇게 분노를 토로했습니다.

"제2의 연평해전 부상자를 돌보면서, 희생이 뭔지 배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군인의 희생이 있기에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 한 정부 관계자가 "잘못은 한국 해군이 저질렀다"는 요지의 말을 하는 걸 보고,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지금도 지난 정권 떠올리면 이가 갈리고 분통이 터진다. 나 말고도 그 자리에 있던 군의관 모두 그랬다. 사건 당시 전사자 빈소에 일반인들 조문 못하게 막았다. 유족들과 몇몇 군 관계자들만 왔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지금 종북 국회의원을 보면 내 세금이 왜 이런 사람들 위해 쓰여야 하나 싶다. 이건 보수·진보 문제가 아니다. 나라 생명이 걸린 문제다. 애국가를 부정하는 건 나라를 지키는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종북 인사들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에 대한 모독을 자주 하더라. 나라 지키다가 젊은 사람들 죽어나갔는데, 국군 통수권자는 축구 본다고 일본에 가서 웃으며 손 흔들고. 이러면 어느 누가 나라를 지키겠나. 나 같아도 안 하겠다. 죽은 사람만 억울한 거다. 어떤 이들이 최전선에서 희생하고, 지키고 있으니까 우리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는 거…. 그게 안보 아닌가?"

이 나라는 이렇게 이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해방이후의 대한민국의 정치역사는 좌익과 우익간의 충돌역사입니다. 현대사의 핵심인 5.18 역사도 빨갱이 역사인 것이며, 동의대 역사처럼 뒤바뀌었습니다. 1946년의 9월 총파업, 10월 1일 대구에서 병원시체를 꺼내들고 민심을 선동하면서 2개월에 걸쳐 전국을 학살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대구폭동사건,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던 제주4.3반란사건, 여-순반란사건 등 굵직한 좌익폭동 사건들은 모두 소련과 북의 지령과 자금을 받아 남로당이 일으킨 폭동들이었습니다.

사실이 명백함에도 빨갱이들은 이 사건 모두를 미국과 이승만 역도에 대항하여 싸운 성스러운 민중항쟁이라고 규정했고, 이런 왜곡내용은 교과서와 전교조들에 통해 지금 학생들에 교육되고 있습니다. 5.18도 이런 폭동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북한은 이 폭동을 대남공작역사 중 최고의 걸작이었다고 자화자찬하며 해마다 전 지역에서 최고의 행사로 기념-추념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수사기록들과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을 종합해 보면, 한 마디로 5.18은 김일성이 직접 북한특수군을 내려 보내 이들로 하여금 남한에 뿌리박고 있는 남로당 후신들을 부역자들로 동원하여 일으킨 국가전복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에 묻힌 영웅적 용사들의 현황을 간단히 소개해 드립니다. 특전사 용사 15명, 31사 3명, 전교사 2명, 9전차 여단 1명, 그리고 폭도들의 버스돌진으로 동시에 즉사한 경찰관 4명입니다. 여기 제28묘역에는 계엄군 21명이, 제29묘역에는 계엄군 2명이, 제8묘역에는 경찰관 4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특히 3여단 16대대의 정관철 중사와 11여단 권용운 상병은 폭도들의 장갑차와 대형버스 돌진으로 사망했고, 계엄군 6명은 철수하는 도중 시위대의 사격을 받아 전사했습니다. 계엄군 11명은 교도대로부터 오인사격을 받아 전사했고, 2명은 마지막 진압작전에서 전사했습니다. 교도대는 성명불상의 제보자로부터 "지금 곧 폭도들이 장갑차를 몰고 쳐들어 간다"는 역정보를 받고 코너를 돌고 있는 11여단 차량들을 향해 무반동총 등을 발사함으로써 우군에 많은 피해를 준 것입니다. 이는 간첩들에 의한 역정보 공작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는 매우 비싼 교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5.18을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하고자 합니다. 날이 갈수록 광주로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여기에 오는 국민이 증가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사를 바꾸는 구체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광주에 빼앗겼던 '충신기' 를 여기에 꽂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이 깃발을 영원히 지키겠다 맹세하려고 왔습니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 행사 참석 애국시민들 "5.18 광주사태를 ‘계엄군의 날’, '광주내란진압의 날'로 선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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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2014-07-07 20:35:38
정부가 규정한대로 5.18은 그 하나의 민주화 운동이야 ! 그런데 본질자체는 폭동인데 그걸 인정안하니까 계속 화제가되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와도 할말없고

자유의 여신상 2014-05-23 09:02:54
http://korean.seoul.usembassy.gov/p_kwangju.html 주한미국 대시관 홈페이지에 5.18의 책임은 전두환한테 있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이 영어와 한글로 있던데 이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프리덤 2014-05-19 16:32:46
군과 경찰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정부군과 광주시민을 쏘고 교도소를 공격하고 파출소, 방송국을 불태우고 도청을 점령하여 대한민국의 통치권을 무력시킨 행위는 명백한 무장반란이지. 5.18이 자유민주화운동이란 객관적인 증거는 단 1개도 없다.

하아... 2014-05-19 15:13:44
이 양반 아직도 정신 안 차렸나보네...

미친놈들 2014-05-19 03:03:29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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