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왔던 북한특수요원의 증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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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왔던 북한특수요원의 증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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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특수군 신분으로 5.18광주작전에 참가했던 탈북자의 증언

 
1980년 5월 광주사태 현장에 파견 되였던 전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당 연락소 전투원의 증언이 A-4지 19매 분량으로 책자와 인터넷을 통해 많이 확산돼 있다. 아래는 이중 요점만 발췌한 것이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이름은 가명으로 했고, 인터뷰 증언을 정리한 사람은 또 다른 탈북자 이주성이다.

전 북한특수군 출신 탈북자의 가명은 김명국, 1961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출생했다. 17세 되던 해인 1977년 8월 26일 평양시 순안구역 대서리 북한대남연락소(112훈련소) 아동훈련소에 입소, 1년 후인 1978년 10월경 평양시 서포구역 대양리에 있는 중앙당 연락소(1010군부대) 2처 전투정찰 부대에 배치됐다. 1980년 5월 19일 전남 광주시로 남파되어 작전을 수행하다가 5월 27일 북한으로 철수하던 도중 북한군 포 사격훈련장을 통과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1급 국기훈장을 받고 5.18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 2003년 까지 북한군 특전사 교관(중좌)으로 복무하다가 2006년 중국 밀무역사건으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되기 직전에 가족과 함께 탈북하였다.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 50명으로 짜여진 전투인원이 북한에서 만든 갱생지프차로 대양리를 출발, 저녁 9시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북한대남연락소 기지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 그가 속했던 12명의 소조 조장은 나이 23세의 리상국 중위였고, 부조장은 22세의 한광호 소위였다. 기타 조원들의 이름은 김일룡(21, 최길산(20), 황보석(21), 한철수(21살) 등으로 기억한다. ."증언자의 조는 12명, 직속부대에는 3개조가 있었는데 증언자조가 12명이고 3조는 15명, 나머지 사람들은 16정찰에서 배속된 남한 전문가 들이였다." 파견대장은 2006년 당시 이곳의 국방차관급으로 출세했다. 문제심의 말로는 "그가 아는 남파부대들에서 270명이 남파 되었다가 거의 다 죽고 살아 돌아 온 사람이 7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했다.

그가 탔던 배의 길이는 20m, 일반 고기잡이 배로 위장했으니 추진기가 4개나 달린 고속정으로 시속 70km 이상이었다. 비행기처럼 속도가 빠르고 자체 폭파하게 되여 있었다. 21일 밤 2시경 전남 광주시 앞바다로 잠입하였다. 안내자 몇 명이 대장한테 와서 자기들이 남한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고하였는데 그 중에는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2일간 광주 근교 야산에서 잠복하면서 북한과 무선연락으로 교신하였고 광주봉기의 추의사태를 살폈다. 증언자 김명국은 파견대장의 신변호위 임무를 수행하였다.

5월 27일 새벽 북한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아침 6시경 철수 중 산 중턱에서 국군 특전사들과 전투중 3명을 사살했다. 5월 30일 새벽, 증언자 일행이 '문경고개' 근처에서 행군 할 때 부조장이 여자애에게 발각되자 죽여 땅에 묻어 버렸다.

6월 4일, 밤 11시, 휴전선에 도착했다. 휴전선 지뢰밭과 철조망은 정찰국 성원들이 앞서나가면서 해제해 주었고, 휴전선을 넘어서 보니 6월 5일 아침 9시 경이였다. 지역을 알아보니 북한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 북한군 포사격장에 들어갔다가 포탄에 맞아 2명이 즉사하고 본인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광주봉기에의 북한군 침투 총화(결산)가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열렸다. 남한에 침투 되였다 살아서 귀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에게 공화국영웅 칭호가 수여됐고,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 사령부)작전부에 승급 되어 배치됐다. 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조장들은 7명이 살아 돌아 왔는데 모두 상좌로 승진시켜 각 군단 부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은 1980년 5월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다. 목숨 바쳐 지휘관을 보위한 공로로 국기훈장1급을 수여받았다. 참고로 국기훈장 2개면 공화국영웅칭호와 맞먹는다.

대남연락소 내부 규정에는 전우가 죽으면 흔적을 없애려고 땅에다 묻어 버리고, 마지막 남는 사람이 붙잡히면 자폭하게 되어있다. 만약 전우가 부상당해 대오의 행군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죽여서 땅에 묻어 묻어버린다. 옷 속에 여러 가지 유형의 작은 물체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고성능 폭약 3킬로 그람이 터지는 위력과 맞먹는다.

2006년 7월 남한에 입국하여 국정원에 5.18 당시 자기가 남파되었던 사실을 증언하였지만, EKAE아자는 그런 말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 지금 현제 분당에 살고 있다.

1980년 5월에 남파되었던 북한군특전사의 임무는 이러했다. 첫째, 5.18 광주봉기를 주동적으로 끌고나가며 봉기자들인 남한 민주세력과 진압세력인 국군사이에 불신을 조장하여 서로 분열시키고 이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둘째, 광주봉기를 폭동으로 발전시켜 남한전역에 확대시킴으로써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날 경우 북한군의 남침계획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북한군 남파부다는 두 패로 나뉘어 시민봉기군과 국군으로 가장하였다. 시민군으로 가장한 북한특전사는 국군에게 총질을 하였고, 국군으로 가장한 북한부대는 시민군에게 총격을 가하여 서로에 사상자를 발생시켜 서로의 감정을 폭팔시키는 이간책동을 하였다. 특히 국군으로 가장한 요원들은 광주봉기군의 심경과 감정을 폭팔시킬 목적으로 시민군과 부녀자들을 비롯한 일반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여 광주폭동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교도소 습격, 무기고 탈취, 경찰서 습격, 장갑차 로획 등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특수 훈련을 받은 정규군만이 할 수 있는 군사행동을 함으로서 무장폭동을 유발시키는 군사작전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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