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친일파 공격 맞는 소리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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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친일파 공격 맞는 소리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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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대한민국 건국 영웅이 분명한 김창룡 장군을 다룬 방송을 두 차례했다. 그걸 진행하며 느낀 건 김창룡을 옹호하고 명예회복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현재 이 나라에서 극히 소수란 점이다. 대한민국 1%가 아니로 0.001%도 안된다. 더 큰 문제는 그 소수가 뒤바뀐 세상 즉 반공을 포기한 나라 대한민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입도 벙끗 못한 채 숨도 못 쉬고 있다는 점이다.그게 이 나라의 현실인데 실은 나도 부담스럽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손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돌파하는 건 확신 그리고 용기다. 어쨌거나 <숙명의 하이라루>란 책은 그러저런 걸 떠나 책 자체로 빅뉴스다. 안 그러냐? 남편의 원고더미를 품에 안고 무려 66년간 버텨온 90대 미망인이 아직 살아계시고 유족이 결심했기에 햇볕을 봤다. 원고란 게 그냥 보통이냐? 대한민국 탄생의 비화인데, 이걸 외면하는 건 좌익이 악마로 만들어놓은 김창룡 이미지에 굴복하자는 건데, 최소한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어쨌거나 김창룡, 그를 따라다니는 누명이란 것도 실로 끔찍하다. “백범 살해의 배후”, “최악의 정치군인”, “이승만의 양아들”... 이 모든 게 근거없고 거짓이지만, 가장 거대하고 말도 안되는 건 “친일파”란 딱지다. 그건 김창룡을 악마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좌익의 농간일 뿐인데, 그래서 오늘 방송에서는 친일파 주장만을 우선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좌빨은 특히 그가 만주에서 항일독립군을 척살했다는 말도 아닌 소리를 그렇게 지치지 않고 떠들어댄다.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 오장 즉 요즘 말로 하사관 출신이니까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린다. 관동군 헌병 오장, 일단 그건 사실이다. 만주국을 다스리던 무력집단이 관동군이다. 여기서 만주란 나라가 흥미로운데 식민지 조선 땅을 경영하던 주체가 일본이라는 나라인 것과 다르다.

즉 일본 정부의의 명령 없이 관동군이 세운 나라, 그래서 효율 최우선의 나라가 만주국이었다. 그걸 잘 이해해야 한다. 그 만주국을 다스리던 관동군의 엘리트 조직인 헌병 조직 내부에서도 다시 정보업무를 다루던 조직이 특무부대였고, 김창룡은 거기 오장 출신이 맞다. 객관적으로 말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다.

그런 김창룡이 했던 일이 정말 항일독립군 척살이었까? 그건 백선엽 장군이 관동군 위관장교일 때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며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헛소리와 같은 것인데, 그런 굴레를 다시 김창룡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오늘 밝히지만, 그건 근거 없다. 193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만주 일대에서 무장 독립군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없는 독립군을 어떻게 잡나? 그래서 헛소리다.

김창룡, 그가 했던 실제 일일은 1940년대 초반 정확하게 1943년 소련 만주 국경도시인 하이라루란 곳에서 관동군에 맞서던 중국공산당을 검거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공산당의 거물 행세를 하던 왕진리와 그 조직을 검거했고 그와 관련된 지하조직을 색출하고 수십 명을 일망타진했던 것이다. 그의 놀라운 활약, 천재적 활약에 탄복한 일제는 바로 육군 헌병 오장으로 특진시켰던 것이다.

그럼 좌익인간들이 물을 것이다. 그때는 코민테른 결정에 따라 1국1당 원칙에 따라 한일독립투사들이 중국공산당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던 시절이고, 때문에 중국공산당원 중에 조선인이 일부 있을 수 있지 않느냐? 좋다. 그건 백에 하나, 천에 하나 정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걸 핑계 삼아 김창룡이 항일독립투사를 때려잡던 사람이라고 부풀릴 순 없는 일이다. 그저 김창룡 악마 만들기 위한 음모라고 봐야 한다. 이해했으리라 믿는데, 일부에선 김창룡을 옹호하기 위해 당시 세계 최강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게 중요했고, 그래서 들어갔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그건 너무 거창하다. 억지스럽다.

김창룡과 그의 세대 젊은이들이 일본군이나 관동군에 들어간 것은 당시 갓 20대 젊은이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따름이다. 그걸 지금의 잣대로 문제 삼을 순 없고 친일 딱지를 붙일 순 더더욱 없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겠다. 그건 당시 젊은이들에게 당시 왜 태어났느냐, 그때 왜 숨쉬고 살았느냐고 묻는 것과 똑 같다. 당시 태어났고, 살았다는 이유로 친일파 몰이를 하는 건 너무끔찍한 폭력 아니냐? 그리고 당시 사회상을 전하고 싶다. 당시 일본군 사병으로 입대할 길이 일제말에 열렸는데, 그게 육군특별지원병 제도였다.

거기에 조선이 젊은이 정확하게 1만8000여 명, 즉 2만 가까운 사람들이 입대했다. 그걸 다룬 게 이 책 <충성과 반역>이란 책이다. 정안기 박사의 책인데, 그 책에 따르면 당시 경쟁률이 얼마인 줄 아느냐? 46대 1이었다. 치열했다. 일본 사병이 되려고 재수 삼수한 사람이 흔했고, 심지어 혈서도 썼다. 그런데 어쨌거나 일본 사병이 되는데 성공한 1만8000명보다 던 중요한 건 거기에 지원했던 젊은이가 무려 80만 명이라는 게 핵심이다. 즉 당시 스무살 전후에 일정한 학력을 갖춘 젊은이 중의 거의 전체가 일본 사병이 되는 게 꿈이었고, 거기에 지원했다는 건 당시 현실이었다.

그들을 친일파로 몰 것인가? 그리고 바로 그들이 일본군대에서 제국의 앞선 군사지식을 흡수했고, 나중에 6.25때 조국의 방패로 활동했다. 뭐가 문제냐? 김창룡은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특히 관동군 헌병은 아까 언급한대로 엘리트였다. 헌병 중에도 정보조직은 다시 엘리트중의 엘리트인데, 김창룡은 거기에서도 단연 우수했다. 거기에서 배운 전문기술을 대한민국 건국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김창룡의 경우는 거기에 들어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다. 그거 분명히 해두자. 즉 지원했던 것이 아니라 중국어에 능통하고 워낙 우수하니까 주변의 추천을 받았을 뿐이다. 관동군 헌병대 들어가기 전에 신경역에서 근무하던 일본 사람들이 김창룡을 보고 그의 성실함과 중국어 구사 능력에 탄복해서 그를 당시 최고의 직업이자 영예였던 관동군에 입대할 것을 추천했다.

그리고 신경역이라는 곳이 중요한데, 그건 당시 만주철도 즉 만철은 만주운영의 핵심 인프라였고 일본이 구현한 아시아 모던 모더니즘의 거대한 상징이었다. 그 만철 중에서도 중앙역이 신경역이었는데, 김창룡은 거기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면 그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걸 왜 쉽게 말하는가? 반복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대중이 널리 읽을 책은 아니다.

그러나 사후 66년만에 등장한 위대한 건국 영웅의 육성이 분명하다. 그런 천하의 김창룡을 악마로 만드는 건 대한민국을 뒤집으려는 좌익들의 농간이고, 혹시 당신이 그 김창룡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좌익들의 농간에 당신이 놀아나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방송에서는 김창룡 친일파 공격이 완전 거짓말인 또 다른 이유를 밝히고 싶다.

※ 이 글은 10일 오후 방송된 "김창룡 친일파 공격 맞는 소리인가, 아닐까?”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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