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친일파 아냐! 장인 장모가 말해준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창룡 친일파 아냐! 장인 장모가 말해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우석 칼럼

지난 방송에서 김창룡은 건국의 영웅이었으면 영웅이지 결코 친일파는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걸 오늘은 또 다른 각도에서 짚어보려하는데, 그걸 증명해주는 건 뜻밖에도 가족관계다. 그의 장인 장모 그리고 미망인 이 세 분 모두가 김창룡이 친일과 무관하다는 걸 말해주는 산 증거다.

우선 장인어른이 중요한데, 그는 엄연히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도정호란 분이다. 그 도정호란 분은 다름 아닌 노무현 시절에 즉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란 훈장을 받았다. 그게 놀랍지 않는가? 당시 몽양 여운형을 포함한 좌파 및 사회주의계열 즉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54명에게 일괄로 훈장을 줬는데 그때 받았다.

당시 민족주의 계열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일제하 독립운동의 한 흐름에 공산주의계열도 있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도정호 선생의 사진은 지금 없다. 그러나 발자취는 분명한데, 그분은 초기 그러니까 1930년대도 아니고 그 이전인 1920년대 초창기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당시 20대 나이에 편집국장과 주필을 겸했다니까 출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고려공산청연회 조직부장으로 항일운동을 별도로 했다.

1927년부터는 조선청년총연맹에도 가입해 활동해다가 그 다음해인 28년 체포됐다.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2개월 복역하다가 끝내 돌아가셨다. 그게 1930년도의 일이다. 그래서 우린 물어야 한다. 장인어른이 독립운동하다 돌아간 지식인인데, 어떻게 좌빨들 주장대로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사위를 둘 수 있을까?

김창룡 친일파 주장은 일단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어쨌거나 도정호가 순국했을 때 조선청년동맹, 조선노동총동맹을 비롯한 동아일보는 국민장을 서둘렀다고 한다. 그만큼 거물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11년 전 나왔던 책 <대한민국 특무부대장 김창룡>에 등장한다. 자 그 얘긴 이쯤하고 당시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정부가 수여할 때 그걸 대신 받았던 게 그의 따님이자 김창룡 장군의 미망인인 도상원 여사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도상원 여사의 어머니, 즉 김창룡의 장모인 이고명 여사다. 놀랍게도 이고명 여사 역시 독립운동가다. 남편이 옥사한 뒤에 일본 관헌은 부인 이고명을 검거해 조사했는데, 남편 주변의 독립운동가들 명단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물론 거부해서 미결수 신분으로 당당히 옥고를 치뤘다. 그렇다. 김창룡 장군의 장인 그리고 장모는 당당한 유례가 드문 부부 항일운동가가 분명하다.

그리고 장인 도정호가 일본 유학파로 명치대 출신이듯이 이고명 여사도 일본 유학파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고향은 경기도 문산인데, 20년대 초반에 동경에 있는 여자상업학교에 유학을 갔다. 여성이 일본 유학은 당시로선 드물 시절인데 그래서 김창룡 장군의 장인 장모는 모두 당당한 일본 유학파에 항일지식인인데, 그런 분들이 사위를 어떻게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반복하지만 김창룡 친일파는 터무니 없다. 더구나 김창룡 미망인 도상원은 무남독녀 즉 고명딸이었음을 감안해보길 바란다. 아무에게나 딸을 줬을까?

또 하나 김창룡이 따님을 달라고 졸랐을 때 1945년 5월 즉 해방 되기 직전 상황인데, 예비장모 이고명 여사는 사위감 김창룡에게 다짐을 하나 받는다. 그게 뭐냐? 자네가 만주에서 활약한다는데 만에 하나 조선 사람들을 해치지 말아달라 그걸 약속해달라고 말한다. 이게 흥미로운 대목인데, 예비장모는 그 와중에도 김창룡을 적절히 테스트했다는 뜻이다. 그리 김창룡도 선선히 답을 했다. 그런 일 전혀 없다. 그 스토리는 <대한민국 특무부대장 김창룡>에도 다시 등장한다.

김창룡 장군이 암살 당했을 때 장모 이고명 여사가 빈소에서 했던 통곡을 이렇게 전한다. <268쪽> 김창룡 친일파 주장은 허구라는 게 거의 분명한데, 실은 김창룡 장군 미망인 도상원 여사도 재조명되어야 한다. 본래 결혼이란 게 뭐냐? 비슷비슷한 신분이나 사회적 위상아니면 멘탈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법이 아니냐? 그런데 도상원 여사 자체도 만만치 않은 분이다. 부모 두 분이 일본 유학파였지만, 그 분도 일본 유학파였다. 그리고 입학했던 학교가 다름 아닌 일본 최고 명문인 동경 제일고녀였다. 우리로 치면 경기여고인데, 그 동경 제일고녀를 당당히 입학했던 여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는 안다. 더구나 그 옛날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동경 제일고녀 입학은 당시로선 놀라운 것인데, 어쨌거나 김창룡이 그런 당시 최고 엘리트 여성과 결혼했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그런 김창룡을 너무 쉽게 말하고 악마로 모는 것이 정말 정상일까? 오늘 그걸 다시 묻는다.

※ 이 글은 12일 오전 방송된 "김창룡 친일파 아냐 장인 장모가 말해준다”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