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의 중심 가치를 망각해 버리면 허공에 붕붕 떠다니게 마련이다. 안철수가 공중파 방송 연예프로에 나와 다소간 허황한 말장난 몇 방주고 받은 것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약 유명인사 반열에 오르자 안철수는 갑자기 몽환주사를 몇 대 맞은 양, 공중부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정치권 언저리를 살피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정치실패는 이때 이미 싹이 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철수는 안철수 연구소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당시에도 안철수보다 몇 배나 훌륭하고 능력과 실력이 뛰어난 IT 기업가들도 많았다. 다만 이들의 이름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안철수와 달리 공중파 오락 연예프로에 출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들은 한 분야에서 한우물만 파서 성공하겠다는 장인(匠人)정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확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안철수가 정치판에 발을 내딛지 않고 자신의 주특기 분야에서 꾸준하게 한길로 매진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동네북 신세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오늘 여러 언론에는 안철수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안철수의 나이는 이제 52세에 불과하다. 만 52세라면 머지않아 육망(六望)을 바라보는 나이라 진즉에 철이 들고도 남았을 나이다. 인터뷰 기사를 살펴보니 짧은 정치인생에 대한 전부는 아니겠지만 약간은 반추와 회억이 깃든 발언도 보였다.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대선 때부터 지금까진 내게 맞지 않는 '역할'을 했다. 이제부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 분야인 경제와 교육에 집중해서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해주지 못한 일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뒤늦게 조금이라도 철이 들은 탓일까, 아니면 또다시 철이 든 흉내를 내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라도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다행이고, 뒤늦게라도 그동안 자신의 브랜드에 얼마나 많은 버블이 끼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안철수는 처음부터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정치개혁을 들고 나온 것에 후회된다는 말도 했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기초공천 폐지를 거론했던 것도 자신의 미숙함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경제와 교육에 전문성이 있다고도 했다. 일견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안철수는 연구소를 운영해봤고 카이스트와 서울대에서 교수도 해봤으니 약간의 전문성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문성의 전부라고 할 수도 없다. 차라리 의학 분야나 컴퓨터 백신 분야의 전문가라고 했으면 또 모르지만 말이다.
안철수는 모처럼 시의적절한 발언도 했다. 안철수는 자신에게도 개헌에 대한 정리된 생각은 있지만 정쟁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라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김무성의 개헌발언에 대해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무성 대표 발언에 대해서는 '기가 막혔다'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이유를 묻자 "아무리 당 대표라도 국감 기간에 외국에 나가서 개헌 얘기를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같은 당의 박지원과 문재인의 발언에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었지만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그마나 정신이 제대로 박힌 발언이었다. 문제는 다음 발언에 있었다. 안철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바뀌지 않는 도그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 법인세 감세 등의 예를 들었다. 그렇다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가 왜 도그마의 대상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지만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엉뚱한 발언은 외교 분야에서 나왔다. 안철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걱정되는 분야는 외교라고 꼬집었다. 절대 다수의 국민여론과는 반대되는 해석이었다. 왜 걱정이 되는지에 대한 이유도 대지 못했다. 국민다수의 여론과 눈높이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한참 모자라는 미숙함이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또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탈당설에 대해서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지지층을 다시 끌어오겠다고 했다. 웃기는 소리로 들린다. 한번 떠난 철새는 봄이 되어야 돌아오게 되지만 안철수에게는 찾아올 봄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지금 탈당을 하고 싶어도 못할 신세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 등장하기 전과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철수의 브랜드가 3류로 전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철수 곁에는 송호창 정도 빼고는 사람이 없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가고 없는 빈 공간에 과연 어떤 지지자를 끌어 오겠다는 것인지 납득도, 이해도 되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다. 새민련에서 자기세력이 전멸을 당하고도 아직도 몽환중이라면 이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안철수는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한마디 들려주고자 한다. 아무리 봐도 안철수는 정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있다. 그것은 앞으로는 방송사 예능계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주제넘게 정치개혁의 전도사라는 가케무사의 외투도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머지 하나는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더 이상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정치계를 떠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안철수가 가장 잘하는 길로 가는 첩경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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