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는 손학규가 아니라 안철수가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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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은퇴는 손학규가 아니라 안철수가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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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새정치는 헛구호와 허상으로 드러나

 
어떤 사람이나 무대에서 퇴장할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장광설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마지못해 강제로 떠밀리듯 퇴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내놓은 자리에 미련이 남아 못내 아쉬운 듯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 깨끗하게 또 간단명료하게 은퇴의 변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손학규가 이런 정치인에 속한다고 보여 진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7.30 재보선에서 당선에 실패하자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마침 이날은 새정치연합의 김한길과 안철수 두 공동대표도 사퇴한 초상 날이었다. 정작 정계를 은퇴할 사람은 안철수였었지만 안철수는 평당원으로 남아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국회의원 유지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손학규는 과감하게 자신의 정치일생을 청산했다.

정치인에게는 국민과 시대가 요청하는 인물과 명제가 있게 마련이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권에 대한 주문은 새정치연합이 늘 보여주는 허구한 날 국정발목잡기, 툭하면 장외로 뛰쳐나가 천막을 치고 촛불을 들고 시위나 벌이는 그런 낡고 병든 정치행태가 아니다. 더 좋은 정책과 더 나은 미래비전으로 여당과 선의의 경쟁을 하라는 것이고 미래를 선도하고 민생을 챙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와 김한길 두 대표는 물론이고, 새민련에서 어느 누구도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국회의원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안철수야 원래 정치 아마추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몇 선(選)이나 했다는 중진들도 486 운동권 출신들의 떼거리 공격이 무서워 꼬리를 내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비교적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강봉균, 최인기, 같은 인사들은 지난 총선 때 물을 먹여 쫓아내 버렸고, 관료 경력이 풍부한 이용섭과 강운태 같은 인사는 안철수가 저지른 인사독선으로 인해 새정치연합 울타리 밖으로 강제추방을 당하고 말았으니 합리적인 인사들이 남아있을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중도적이고 비교적 합리적인 이런 정치인들이 사라지자 친노 패거리들이 허약 체질의 안철수와 김한길을 가지고 놀았으며 다른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바른말을 하고 싶어도 이들로부터 왕따가 당하기 싫어 입을 꾹 닫고 잠수를 타고 말았으니 당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비견한 예를 하나만 들면, 세월호 특별법 내용도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애국병사들에게 해준 예우 이상으로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 보통 국민의 상식선이었는데도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국회에서 농성부터 하고 보는 그 못된 버릇을 보고 어느 국민이 '오냐 잘한다'고 표를 덥석 던져주겠는가.

걸핏하면 좌파 운동권 출신들이 저주에 찬 온갖 막말과 저질발언으로 강경하게 나가는 것만이 마치 야당의 존재이유로 착각하는 정치를 잘못배운 이념종속 국회의원들부터 솎아내지 않는다면 새민련이 파산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손학규의 정계은퇴는 야당으로선 매우 큰 자산의 손실이다. 손학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굴해 낸 정치인이었다. 그는 1993년 광명시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관운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집권여당에서 2007년까지 국회의원, 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를 거치며 정치계의 거물로 거듭났다.

손학규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질곡이 많은 삶을 살아왔다. 그는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빈민운동을 했고 대학의 교수도 지낸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 였으며 이런 경력이 김영삼으로 하여금 정치입문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당시 집권여당 내에서 대권주자의 반열에 오르자 잘나가던 손학규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한나라당 차기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예비경선이 한창 가열해 지던 2007년 3월 19일 손학규는 돌연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한다. 당시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명박 후보의 줄세우기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우회로를 찾아 스스로 시베리아로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한때 한나라당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일부 의원들과 당원들조차 대세론과 줄 세우기에 매몰되어 시대적 요청을 외면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탈당의 변을 피력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철새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할 장소로 대통합신당에 입당하여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갔으나 정동영에게 패배했고 2012년 8월에 열렸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 재차 도전하였으나 역시 문재인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 당시 손학규가 내걸었던 슬로건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은 낭만적, 문학적 표현이지만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경제구조를 만들자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관운은 좋았지만 천운(天運)은 손학규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손학규는 올해 우리나이로 68세다. 2년 뒤 총선 때는 고희를 맞게 된다, 따라서 공천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차기 대선에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나이에 접어든다. 손학규의 정계은퇴선언에는 이런 점도 고려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손학규는 은퇴선언에서 정치에서는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라고 했다.

이 말은 안철수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손학규는 또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자신의 생활 철학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지금이 자신이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말 역시 안철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정치인에게는 자신만의 시대라는 것이 있다. 시대가 자신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면 퇴장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정치권에는 꺼져가는 희미한 정치생명이라도 연장해 보자고 몸부림치는 정치인들도 숱하게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손학규는 야당의 일원이었지만 한때는 집권여당에서 장관도 지냈고, 경기도지사를 역임하면서 국가운영의 방법도 몸에 익혔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학규는 야당내에서도 중도적이고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새정치연합의 대표가 진즉부터 김한길과 안철수가 아니라 손학규였다면 어쩌면 천막당사는 없었을 것이고, 건건이 국정발목을 잡는 정쟁의 양상도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손학규는 정계를 떠나갔다. 그러나 정작 떠나야할 안철수는 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정치인이 살아있으되 살아있다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안철수의 정치생명이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새정치는 원래 실체가 없는 헛구호에 불과했고 허상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것이 안철수가 떠나야할 합당한 이유인 것이다.

손학규는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생활하겠다"고 다짐했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철저한 소신을 지켜온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 할 것으로 믿어진다. 남은 여생,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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