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러시안 룰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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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러시안 룰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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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확증 편향적 극우후보들 속속 등장
- 자유주의 보다는 민족주의, 국제주의 보다는 애국주의가 득세
- 민주주의 기본적 가치보다는 이데올로기 내세우는 당장 이익 우선
미국은 2024년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와신상담(臥薪嘗膽) 중이다. 프랑스는 2027년 다시 한 번 마린 르펜을 포함한 확증 편향적 극우 후보들에 의해 민주주의 가치는 타격 목표가 될 것이며,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2024년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와신상담(臥薪嘗膽) 중이다. 프랑스는 2027년 다시 한 번 마린 르펜을 포함한 확증 편향적 극우 후보들에 의해 민주주의 가치는 타격 목표가 될 것이며,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주의는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이 되어 가고 있는 양상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라고 여겨져 왔던 자유선거, 보통선거는 세계 곳곳에서 반자유주의적인 권력 장악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쩌면 무모하고도 위험한 운명적 게임인 러시안 룰렛게임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옛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수정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속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세계는 냉전이 뒤로 물러나고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구촌에서 보다 더 넓은 자리를 차지했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냉전이 사라지면서 세계는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차지하는 땅이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

냉전 이후 유례가 없는 10년간의 확장 끝에 자유민주주의는 지난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의 등장부터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 대서양 양안의 극우세력의 급상승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 동안은 이른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과 반동세력의 공격이 거센 물결로 다가왔다.

숨죽이고 있던 극우세력들이 날개를 펼치는 과정 속에서 헝가리, 터키, 오스트리아, 인도, 브라질, 나아가 아사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G7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의 극우정권의 장기 집권 등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카리스마적 권위주의와 독재주의, 그리고 포퓰리즘적 비()자유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리고 지난 424일 결선투표를 통해 간신히 승리를 거둔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도 극구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의 급부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푸틴 성향의 르펜 후보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면, 프랑스는 물론 유럽지역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 들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프랑스의 자유민주주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살아남았다. 유럽대륙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유지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마크롱 대통령 정권이 실패를 한다면 5년 후 프랑스는 극우정권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도의 한 숨은 그만큼 고통이 있다는 것일 수 있다. 고통이 클수록 안도의 한 숨도 클 것이다.

프랑스를 포함 전 세계적으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헌법상 강력한 지도자, 특히 우선은 속이 시원스럽게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지는 극우 성향의 지도자들을 선출하려는 관성적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극우 지도자는 좌고우면이 거의 없다. 대체적으로 단선적이며 카타르시스적이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Arab Spring)도 그 시작은 고용불안, 청년 실업이다. 고용불안과 끊임없는 사회변화와 같은 고통과 고뇌가 카타르시스를 연상하는 극우지도자를 찾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삶은 상황에 상관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종교, 그리고 영광스러운 조화와 신화적인 과거에서 위안을 찾도록 상황이 강요하고 있다.

기성정당의 언행과 정책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은 속이 시원한 말과 제스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장기적 관점보다는 우선 당장의 고통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극우 성향의 단선적 정치인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기정 정당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의 1/3 이상이 투표를 하지 않거나 백지 투표를 했고, 유권자의 40%가량은 신()파시스트 마린 르펜은 물론 반()유럽, ()자유, ()무슬림 후보를 프랑스 대통령으로 뽑아 보겠다고 그 소중한 표를 던졌다. 프랑스 사회의 불안과 고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부분의 정당들은 금융 엘리트들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유럽의 기권권 층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후보는 1965년 이래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상대적으로 낮은 득표율인 37.9%만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이민자들이나 소수자들을 탓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을 성찰하고 뒤돌아보기보다는 남의 탓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 국가적 불안 모두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은 유권자 집단이다. 난민, 이민자, 소수자들에 책임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와도 배치(背馳)되는 일이다.

그동안 독일인들과 함께 프랑스는 최근 수십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유럽대륙을 통합했고, 유럽연합을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번영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블록으로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프랑스는 세계대전을 잃은 국제적 위신을 상당 부분 회복시켰고, 유럽연합(EU)의 확대와 통합과 함께 지정학적 영향력이 커지고 또 증가해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아가 프랑스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pandemic)과 관련 재정문제 이후 대부분의 다른 유럽국 가들보다 경제적으로 잘 대처해왔다. 정의(justice)가 바탕이 된 민주주의 가치가 작동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성공적인 대처는 어떤 정의에서 보더라도 위-(win-win) 방정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당성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늘 도전적 행동을 일삼는다. 왜 더 민주적이고, 더 실용적인 해결책들이 주변에 놓여 있는데, 왜 국가의 스트레스와 투쟁에 비열함과 비참함을 더해 가는가? 상대적으로 강력하고, 번영하며, 생산적인 국가가 퇴보적인 신()파시스트 통치자의 생각들을 즐겁게 하는가?

흑백논리만이 생존 가능한 사회적 변화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중도우파, 중도좌파 정당들의 거의 완전한 붕괴와 동시에 극우파의 급증은 차단할 수 있는 중도주의의 존재가 미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크롱도 역시 중도주의의 실패로 프랑스 극우후보가 상당한 득표력을 보여주게 했다.

극우지도자들은 매우 간명한 슬로건을 내건다. 군더더기가 필요 없는 단선적 구호가 효과를 본다. 마린 르펜은 프랑스가 애국주의와 국제주의, 혹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후보이다. 국제주의 보다는 애국주의, 자유주의 보다는 민족중의를 선호한다. 이러한 우물 안의 개구리(a little fish in a big pond)식 선택권 호소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애국주의자, 민족주의자, 국제주의자, 자유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성향을 주입시키려는 듯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정치 지도자는 정작 본인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망각하는 것이며, 국가와 국민들을 그러한 확증 편향적 상황으로 몰고 가 끝내는 국가는 분열되는 극단적 사회불안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한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유럽인, 서양인, 동양인, 지중해인, 어떠한 종교이든 혹은 종교가 있는 없든 아무 관계없이 다양한 선택의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하는 현상이 갈수록 그 농도를 짙게 하고 있다.

자본, 무역, 투자가 가장 우위에 있는 오늘날 세계화된 세계에서 어떤 나라의 어떤 대통령이라도 국가를 위해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공공부문이 너무 지배적이어서 더 이상의 국가 개입은 정치적 편의의 제단에서 생산성과 경쟁을 희생시킬 것이 분명한 프랑스에서도, 아시아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극우성향의 지도자들은 또 없는 자보다는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경향이 짙다. 그래야 자신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있어야 그런 특권과 기득권을 길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지지만으로는 자신의 엄청난 특권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있는 자들과 함께 해야 정권 유지가 유리하다는 역사적 사례들이 말해주고 있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

앞으로 세계는 지금보다 더 격렬한 극우정치인들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2024년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와신상담(臥薪嘗膽) 중이다. 프랑스는 2027년 다시 한 번 마린 르펜을 포함한 확증 편향적 극우 후보들에 의해 민주주의 가치는 타격 목표가 될 것이며,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수록 러시안 룰렛게임에 도전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정치지도자 양성을 지금부터라도 꾸준하게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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