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김일성 동생 김영주(金英柱) 사망
스크롤 이동 상태바
고(故)김일성 동생 김영주(金英柱) 사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주는 항일 빨치산운동에 참여, 옛 소련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후 1961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 조직지도부장을 지냈으며, 1969년 정치위원(현재의 정치국원) 겸 서기를 역임했다. 이후 1972년 남한과의 이른바 “7.4공동성명”에 북측 대표로 서명을 했고, 1974년에 부총리에 취임했다. /사진 : 조선중앙통신 유튜브 캡처
김영주(위 사진)는 항일 빨치산운동에 참여, 옛 소련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후 1961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 조직지도부장을 지냈으며, 1969년 정치위원(현재의 정치국원) 겸 서기를 역임했다. 이후 1972년 남한과의 이른바 “7.4공동성명”에 북측 대표로 서명을 했고, 1974년에 부총리에 취임했다. /사진 : 조선중앙통신 유튜브 캡처

북한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실 동생으로 자신의 후계자 다툼에 연루돼 추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김영주(金英柱)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1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보낸 조화가 14일 영전에 배달됐다. 사망일이나 사망원인 등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영주는 김일성보다 8살 아래인 1920년 생으로 알려졌다.

김영주는 항일 빨치산운동에 참여, 옛 소련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후 1961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 조직지도부장을 지냈으며, 1969년 정치위원(현재의 정치국원) 겸 서기를 역임했다. 이후 1972년 남한과의 이른바 “7.4공동성명에 북측 대표로 서명을 했고, 1974년에 부총리에 취임했다.

김영주는 김일성 후계자리 다툼을 하고 있었다는 관측이 있었으나, 197577.4공동성명 3주년 성명 발표 이후 공식 보도에서 사라졌다. 당시 실각설이 나돌았다.

19937월 한국전쟁 정전협정 40주년 기념행사에 전직 부총리의 직함으로 18년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해 12월 김영주는 정치국원, 국가 부주석에 선출되어 정치적으로 복권됐다. 1998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됐으며, 이 직책은 2019년에 폐지됐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