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고 지냈던 올림픽 유치 숨은 주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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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잊고 지냈던 올림픽 유치 숨은 주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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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저는 88년 서울올림픽 관련 방송을 최근들어 세 번 했다. 주로 유치와 관련된 현대사 비사였고, 구체적으로 왜 현재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올림픽유치 30주년 기념비’가 엉터리이고 역사왜곡인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실무책임기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이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을텐데, 분명한 것은 한국인들이 바로 엊그제의 동시대 역사까지 이렇게 태무심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사이 제가 스터디했던 소중한 것 하나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그게 뭐냐? 다 잊고 지냈던 올림픽 유치 숨은 주역 김예식이란 분 얘기인데, 이런 디테일이 모두 소중한 현대사의 스토리다. 특히 운동권의 입맛에 맞춘 1980년대 역사 해석을 뒤짚을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일테면 대표적인 좌파학자로 꼽히는 강준만은 1980년대 그 시대를 광주사태와 서울올림픽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했다. 그게 네 권짜리 단행본 <한국현대사 산책‐1980년대 편>에 나오는데, 한마디로 80년대는 ‘피의 학살’이라는 광주사태로 다 해석할 수 있고, 서울올림픽은 전두환이 벌인 하찮은 ‘스포츠 정치’인데 온 국민이 놀아났다는 말이다. 얼토당토 않다. 이미 고인이 된 김예식이란 사람이 한 얘기가 백 번 맞다. 즉, 그분은 “오늘날 우리의 번영은 1981년 9월 88서울올림픽 유치가 시발점이었다”고 규정했다. 그건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펴낸 책 ‘바덴바덴의 기적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들어있는 그의 짧은 글에 나오는 나온다.

자 그럼에도 궁금하실 것이다. 어떻게 70년대 당시 우리 선배들은 올림픽 유치를 감히 시도했까? 처음 해보는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물론 시작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는 돌아가시기 불과 1개월 전 올림픽 유치 구상에 최종 서명을 한다. 그게 79년 9월 21일이고, 직후 당시 정상천 서울시장이 그 계획을 전세계로 공표했다. 직후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꼭 그 2년 뒤인 81년 9월 IOC 사마란치 위원장이 총회에서 88년올림픽 개최지로 “쎄울”을 발표했고, 유치경쟁을 했던 일본 나고야를 우리는 극적으로 물리쳤는데 새삼 궁금하다. 그 2년 동안 우린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그래서 김예식 말대로 오늘날 번영의 초석을 놓았을까? 실은 스토리의 출발은 박종규 전 경호실장이었다.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이후 뒷전에 있던 그는 79년 2월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올림픽 유치 서명 6개월 전인데, 이게 신호탄이었다. 추진력 강한 박종규가 박정희를 등에 업은 채 한국인이 꿈꾸지 못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질 피스톨 박은 그 전해인 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서울 유치와 개최에 성공했는데, 그런 국제스포츠 개최 노하우를 기반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힘센 사람들의 그런 그림이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이었지만, 올림픽 기본계획을 세우고, IOC에 방대한 분량의 유치신청서를 내고 각종 올림픽 시설물과 기술적 준비 등의 실무를 과연 누가 하느냐? 그게 오늘 관심이다. 박종규는 그걸 위해 실무 드림팀을 구성하는데, 그중 한 분이 아까 언급한 김예식이었다.

당시 그는 민족발전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민족발전연구원이 뭐냐면 비공식적으로 움직이는 대통령 정책보좌기관이었다. 거기 원장이던 주관중이라는 청와대 비서관 출신을 KOC 상임이사로 발탁하고, 그 아래 김예식을 포함한 재주꾼들인 이태근 이원웅 등 세 명을 KOC전문위원으로 영입했다. 영어 불어에 능통하고, 각종 기획업무에 밝은 게 이 드림팀인데, 훗날 동아일보는 ‘올림픽 삼총사’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맞다. 올림픽유치 실무의 거의 모든 것을 이 팀에서 했다. 개최도시 서울시? 당시 주무부처 문교부? 지휘탑 총리실 등은 당시 대부분 소극적이었다. 그 사실은 김예식이 쓴 증언에도 보인다. “이 방대한 작업 앞에서 서울시 측은 문제의 심각성과 과중한 업무량에 겁부터 먹었고, 공무원 특유의 몸 도사리기에 급급했다.”

이 드림팀은 물론 부침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는 청천벽력이 그것인데, 이후 용케도 그게 전두환 대통령의 재유치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박종규가 대한체육회장을 그만 둔 뒤에도 이 드림팀은 KOC 내부 조직으로 살아남아 올림픽 유치의 실무작업을 도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어 프랑스어로 된 유치신청서 300부를 작성도 그들 손으로 이뤄졌고, 그걸 비행기로 실어 날라서 스위스 로잔느에 있는 IOC본부에 직접 제출했던 것도 바로 김예식, 혼자의 몫이었다. 당시 그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보시자!

저는 서울올림픽유치 30주년 기념비의 역사왜곡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과거까지 잊고 사는 우리의 태만도 문제인데, 오늘 미스테리를 하나 풀겠다. 당시 IOC 한국 측 위원은 김택수 딱 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88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IOC 총회를 며칠 앞두고 “IOC 위원 82명 중 서울에 찬성하는 표는 딱 한 표밖에 안 나올 것”이라고 전전긍긍했다. 그게 바로 자기 한 표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현지로 날아온 한국 특파원들에게도 “언론에서 너무 떠들어대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하기도 했다. 총회에서 일본 나고야에게 대패를 할테니까 일을 키워서 망신을 자초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상 결과는 나고야 참패, 서울 대승이란 기적이었다. 52대 27 거의 더불스코어였다.

그래서 바덴바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모두 이 드림팀의 역할이 컸다. 당시 총회에 참석했던 IOC 위원들을 감동시켰던 조상호 대한체육회장의 훌륭한 영어스피치부터 김예식이 작성했고, 스피치 이후 IOC 위원들과의 일문일답도 그의 손을 거쳤다. 즉 예상 질문을 뽑고 멋진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린 일본을 압도했다는 얘기다. 그런 한국의 예상밖의 진지한 태도와 준비된 모습이 총회장 분위기는 180도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래서 서울의 대승은 우리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일궈낸 승리이었다. 그런 김예식을 알아준 것은 당시 중앙일보였다. 그때 그 신문은 매년말 “그해를 뛴 얼굴들”이라는 연말 기획 시리즈를 내보냈는데, 81년 12월 22일 자 1면에 큼지막한 얼굴사진과 함꼐 김예식을 소개했다. 그 기사는 첫머리가 훌륭한데, 지금 새삼 음미해볼만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업을 기획 성안한 사람, 그러나 뒷전에 가려진 채 조용히 일한 사람, 이 숨은 일꾼이 김예식이다.”

자, 방송 마무리다. 지금도 아는 사람은 말한다. 서울올림픽 유치, 개최가 아니라 유치의 주역 빅3는 피스톨 박 박종규, 재계의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그리고 KOC전문위원 김예식 세 사람이다. 그러니까 10년 전에 ‘서울올림픽유치 30주년 기념비’를 세우려 할 때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기념비 제작 요강을 써줄 최적의 인물로 당연히 김예식을 지명했다. 그가 가장 잘 알고 실무자로 최선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막상 문제의 그 기념비가 역사왜곡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역설이다. 일밖에 모르던 김예식이 하자는대로 하지않았고, 뭘 모르고 공명심만 높던 주변 사람들이 장난을 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김예식, 그 분은 지난해 초에 돌아가셨는데, 그런 엉터리 기념비가 세워진 것을 내내 가슴 아파하고 관계당국에 항의하다가 끝내 암에 걸리고 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정말 문제는 문제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서울올림픽유치 30주년 기념비’가 역사왜곡에 더해 또 누굴 또 잡을지 걱정이다.

※ 이 글은 28일 오후에 방송된 "다 잊고 지냈던 올림픽 유치 숨은 주역 이야기"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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