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수(권상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유신말기의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고등학교의 현장에서의 청년들의 피 터지는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은주(한가인)를 두고 ‘사랑’이라는 드라마 요소를 가입시키지만 생각이상으로 강하지는 않다. 다만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배에 왕자 새겨지는 배우’ 권상우의 이면적 어눌함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정말 ‘순수’한 그 표정이 과연 '연기’되었는것인지, ‘원래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누르면 터질 것 같은 근육을 가진 권상우와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더 효과적인 반사심리가 작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단순히 이소룡이라는 시대적 특징을 부합시켜 영화의 흥미도를 높이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소룡은 그저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대적 특징만이 아니라 이소룡같은 천하무적 양방향 돌려차기와 무적의 쌍절곤은 폭력이 난무하면서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소리치는 말도 안 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꿈에서라도 정의의 사자가 될 수 있는 시대적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다.
선도부장 종훈(이종혁)은 군사정권을 그대로 가리킨다. 그가 왕이다. 선을 가장한 온갖 권력유지만이 그의 유일한 목표이며 그 권력유지의 효율성을 위해 선도부라는 제도적 틀을 마음껏 유린한다.
싸움짱 우식(이정진)은 얼핏보면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 같지만 어머니라는 존재 밑에서 결국 자기 마음껏 주먹으로 인생을 해결하려는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선배에게도, 친구에게도, 선생에게도 ‘의리’는 없다. 기준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 제도에 순응하지는 않지만 결국 비운한 아웃사이더에 지나지 않는다. 유하 감독이 이 캐릭터를 ‘영웅’처럼 만들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종훈과 방법만 다를 뿐이지 결국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햄버거(박효준)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하는 일은 음란서적으로 장사하는 것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 캐릭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꼬봉’의 이미지가 아니라 종훈이 우유팩을 던진 범인을 잡기 위해 난리를 칠 때 제일먼저 그 ‘꼬봉’이라는 관계를 통해 ‘사건해결’을 하려는 모습은 그가 그러한 역할도 하지 못한 그 시대의 어쩔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반성을 주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엔딩장면에 현수와 그가 함께 마무리되는 것에 참 좋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영화는 하고픈 말을 한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학원영화를 통해서 이러한 캐릭터는 아주 자주 보여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비트>, <친구>, <화산고> 등에서도 이러한 불량한(?)캐릭터는 아주 완벽하게 묘사되었다. 그런데 <말죽거리 잔혹사>는 이러한 캐릭터의 등장에 더하여 이러한 캐릭터의 평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적어도 무엇인 ‘선’인지 아닌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영화를 보면서 분명 우식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느낌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데 시원한 마스크에 전작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이정진의 호쾌함에 그 캐릭터 자체에 끌린 것이 사실이다. 이 끌리는 느낌에서 끝나버리면 영화는 결국 시각적 효과로 승부를 한 것이겠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우식의 결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꼬봉’에게 찔리고 종훈 일당과의 싸움에서 완패하고 만다. 종훈도 마찬가지이다. 점점 나쁜 이미지가 심어지는 우식에게 대항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선’을 느낄려는 찰나 그 의혹의 고리는 현수가 풀어준다. 철저한 패배를 안겨주는 현수의 모습에 이 영화는 그저 ‘멋진 캐릭터’로만 간주된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발 앞서가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소극적인 모습 때문에 과연 쌍절곤을 휘두르며 ‘목표성취’를 위해 애쓴 현수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과연 멋지게 폭발할지가 상당히 의문이었는데 배우 권상우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영화에 몰입한 인상을 보여준다. 교실에서 고함을 지를 때부터 대혈투와 영화의 메시지인 마지막 ‘외침! (대한민국 학교들 X까라고 해!)’까지 그저 ‘연기’가 아닌 ‘청춘의 피끓음’를 보여주는 권상우는 다행히도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말 그대로다. 우리는 그 시대의 모습들, 그 시대의 특징들 그것을 현수 말대로 과감히 쌍절곤을 휘두를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단지 추억의 대상으로만 화면에 몰입한다면 그것은 ‘폭력의 미학’일 뿐이다. 우리는 그 시대에 ‘반항하지 못한 것에’ 반성하고 그러한 시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모습’임에 분노해야 한다.
단지 교복, 선도부, 교련시간, 소지품 검사, 소세지 반찬, 버스 안내양, 리시버라 불리는 그 당시 이어폰, 추억의 팝송, 떡볶이 집 DJ, 성인무도장 같은 나이트클럽이라는 모습에 그저 추억이 아닌, 교복은 전투복이요, 교문은 위병소요, 선도부는 헌병이요, 소지품 검사는 내무검사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권력의 상관관계 속에서 돌고 도는 각종 부정의한 모습에 대한 강력한 거부반응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좀 더 세밀한 시대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있다. <친구>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70-80년대의 시대적 냄새가 조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도 현수는 이러한 거부반응을 조금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쌍절곤을 집어던지면서 시원하게 내뱉어 버린다. 그것이 이 영화가 청춘영화 이상을 넘어서고자 하는 <잔혹사>의 본모습인 것이다.
영화 <실미도>는 음지의 역사를 교과서보다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영화 <실미도>에 수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는 이유는 단지 ‘비극적 역사’가 아니라 ‘비극적 역사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저 시대적 향수와 영화적 캐릭터에만 집착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승부수를 뛰었다. 그것은 그 당시 시대를 산 사람이 영화를 보고 ‘봐라, 너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세상 아니가? 그러니 너희들은 지금 좋은 거다!’ 라는 추억적 집착이 아닌 ‘봐라, 저러한 시대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또한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어. 하지만 엄청 잘못된 시대였구나.’ 라는 확실한 시대진단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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