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파수꾼] 컨테이너 박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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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파수꾼] 컨테이너 박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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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짧지만 이것 없이 세계무역은 불가능

▲ 세계화는 현대 경제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1960년대 초 세계 상품 무역은 전 세계 경제적 산출 즉 총생산(GDP)의 약 20% 이하였으나, 현재는 약 50%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모두가 다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뉴스타운

* 개요

중국에서 장난감, 칠레에서 구리, 방글라데시에서 티셔츠, 뉴질랜드에서 와인,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스페인에서 감자를 수입하고 또 다른 상품을 다른 국가로 수출하는 등 쌍방 간의 상거래 무역이 성행하고 있다.

그것을 좋아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세계화는 현대 경제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1960년대 초 세계 상품 무역은 전 세계 경제적 산출 즉 총생산(GDP)의 약 20% 이하였으나, 현재는 약 50%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모두가 다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세계의 보통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은 경제학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과 대립되고 있는 것 이외의 다른 이슈는 없어 보인다. 무역에 관한 논쟁은 비록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정책으로서 세계화의 틀을 짜는 경향이 있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Partnership), TTIP(범 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협정, 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FTA(자유무역협정, Free Trade Agreement) 등 흔히 약어로 쓰이는 무역 용어들로 일반적인 세계인들과 경제학자들 사이에 말씨름이 붙곤 한다.

* 전통 방식의 해상 운송 

그러나 세계화의 조력자(enabler)역할을 하는 것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단순한 혁신(a simple innovation) 즉 컨테이너 선박(a shipping container) 운송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철제 박스(steel box) 즉 주름이 잡힌 철제 박스(corrugated steel box)로 너비 2.4m, 높이 2.6m, 길이 12m의 다양한 상품을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박스를 말한다.

전통적인 무역 거래 과정에서 보면 이와 같은 컨테이너 박스의 등장이야 말로 물류의 혁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54년 아주 평범한 화물 선박회사인 에스에스 전사라는 뜻의 ‘SS warrior’사가 미국 뉴욕에서 독일 북부 베이저(Weser)강 하구의 브레머하펜(Bremerhaven)까지 상품을 운반했다. 식품, 가정용품, 서류 및 차량 등 총 19만 4천 582 종류의 제품을 포함하여 당시 운반한 화물 총중량은 5천 톤을 웃돌았으며 1,156개의 서로 다른 선박으로 운송을 했다.

당시 배송물품의 추적하는 일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배송물품들이 도착항구의 이곳저곳의 창고로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애로사항은 마땅한 장비 없이 수작업이었기 때문에 선박에 물품을 싣거나 선박에서 물건을 내리는 작업이 매우 힘들었다.

특히 항만노동자들은 나무로 만든 팔레트(a wooden pallet : 화물 운반대) 위에 화물을 싣고 선박 갑판으로 올려 실었다. 그 팔레트는 밧줄로 끌어올려져 선박 안에 있는 화물적치장(홀드, Hold)에 화물을 쌓는다.

이러한 하역작업 방식 때문에 더 많은 항만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화물을 일일이 들어 올려 선박의 화물창에 집어넣은 후 운송 과정에서 화물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양한 장치들로 화물을 가장 적합하고 쌓은 후 고정시키는 작업들이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한 것은 물론 작업에 숙련이 된 사람들이 필요했다.

숙련 노동자 없이는 하역작업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미숙련공의 하역작업 시간 지연은 노무비의 상승 요인이 됐다. 또 초창기 부두에서의 하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1950년 미국 뉴욕 항구에서는 하역작업 노동자들은 매일 십 수 명이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 기존 해상운송방식의 사례 

지난 1954년 ‘SS워리어’사(社)의 독일 브레머하펜까지의 화물 운송을 연구한 학자들은 “(5천 톤 가량의) 화물을 선박에 싣고, 또 내리는 작업에 약 10일이 소요됐으며, 이 시간은 뉴욕에서 대서양을 건너는 시간과 맞먹는 긴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물 운송비를 오늘 날의 화폐로 환산하면 화물 1톤 당 선박운송비는 약 420달러(약 50만 7천 원)이었다. 수작업으로 화물을 선별하고 다시 분배하는 데에 과거 전통방식으로는 시간 지연이 불가피했으며 일 전체를 마치는 데에는 무려 3개월이라는 기간이 소요됐다.

60년 전 당시 선박 화물은 국제적으로 비용이 비쌌을 뿐만이 아니라 위험했으며(chancy),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궁여지책이라는 말이 있듯이 궁하면 통한다는 ‘궁즉통(窮則通)’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커다란 표준 박스 속에 모든 화물을 집어넣고 통째로 운반하는 방식이 생겨난 것이다. 사실 컨테이너 박스는 제작이 매우 쉬웠다. 이후 이 철제 컨테이너 박스(Steel Container Box)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 같은 발전 과정에는 실질적으로 컨테이너 박스 제작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장애물을 극복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기존의 트럭회사, 벌크선(곡물, 광물 등을 싣는 선박) 선박회사, 항구 등은 새로운 형태의 커다란 표준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어떤 곳은 아주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를 원했고, 다른 곳은 작은 것을 희망하는 등 각양각색의 요구사항들이 많아 이를 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중장비, 자동차 등을 선적해야 하는 업체들과 작은 물건, 가벼운 물건을 실어야 하는 업체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공장이나 화물적치장소로 가는 도로 역시 천차만별로 넓거나 좁거나 직선 도로이거나 아니면 곡선도로 등 도로사저에 따라 요구사항 역시 달랐다.

* 컨테이너 박스의 태동과 장애물 극복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하역작업에 혁신적인 장비와 장치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기중기(크레인, Cranes)와 지게차(Forklifts)의 등장으로 일시에 많은 화물을 들어 올려 선박의 갑판에 쌓을 수가 있게 됐다. 자동차도, 중장비도 거대 기중기로 들어올리고, 지상이나 선박안의 홀드에서 지게차로 이리저리 옮기는 등 작업이 수월해진데다 시간 또한 훨씬 절약됐다.

여기에 국한되는 어려움은 아니다. 항만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역시 처음에는 컨테이너 박스 운용을 거절했다. 이들은 물론 화물에 대한 하역 작업(올리고 내리고)은 쉽고 보다 안전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일자리 상실(lost Jobs)을 우려했다. 나아가 전통적인 관료들조차도 노동조합과 같은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선박회사, 트럭회사, 제조회사 및 수출회사, 항만청 및 항만노동조합 등이 상화 협업을 생각해내면서 차즘 협력적으로 분위기가 돌아섰다.

지금부터 약 55년 전인 1956년 4월 26일 미국의 무역상인 말콤 맥린(Malcolm McLean)이 유조선을 개조하여 만든 선박 ‘아이디얼 엑스(ideal-X)'호에 컨테이너 박스를 실어 미국 뉴저지에서 남부 휴스턴까지 운송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컨테이너 박스 자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었고 단지 트럭킹(trucking, 트럭화물운송)사업가였다. 그가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 박스를 선박에 싣고 운송해본 결과 많은 돈을 절감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말콤 맥린’은 단순히 컨테이너 수송의 잠재력만을 본 게 아니라 화물 선적의 손쉬움, 보다 안전함, 시간 절약, 운송비 절감 등 많은 이점을 파악하게 됐다. 처음에 그는 선박회사와 육상 트럭회사 모두를 장악하기 위해 법적인 맹점을 과감하게 이용했다. 당시 항만노동자들은 파업을 했을 때 그는 유휴시간을 활용하여 낡은 선박을 새로운 컨테이너 사양(specification)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그는 푸에르토리코에의 현직 배부른 자본가(fat cat)와 손잡고 그곳에서 미국으로 오는 해상 운송비를 대폭 줄임으로써 그 섬의 경제를 부흥시키려 했다.

그는 약삭빠르게 뉴욕 항만당국으로 하여금 컨테이너 선적의 중심지로 뉴저지 항 쪽을 지정하도록 했다. 말콘 맥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고객이라 할 미군에게 운송비가 적게 든 컨테이너 운송 제품을 판매할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 유감스럽게도 항만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장비들을 싣고 베트남으로 가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악몽에 직면한 미군은 맥린의 컨테이너 선박에 눈길을 돌렸다. 컨테이너 하역 작업은 기존의 물류 시스템보다는 훨씬 나은 효율성을 보였다. 따라서 미군은 군수장비 해상 운송을 맥린의 컨테이너 운송에 맡기게 됐다.

맥린은 베트남에 무사히 화물을 실어 날랐고,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컨테이너 박스는 텅 빈 상태였다. 이 때 그는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일본으로 향하여 그곳의 많은 화물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 화물을 싣고 태평양을 건넜다. 베트남으로 가면서, 또 일본을 거쳐 다시 미국으로 오는 과정 모두 운송비를 챙길 수 있었다.

* 컨테이너 화물 교역량 

1956년 이후 55년 동안 1500만 TEU로 성장한 글로벌 선복량은 선사들의 초대형 선박 발주 경쟁 등에 힘입어 물동량이 급증을 거듭해 왔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릭슨’에 따르면, 2017년 1월 1일 기준 글로벌 컨테이너선단의 총선복량은 2001만7천 800TEU(5천 224척)를 기록했다.

다목적운반선(MPP, Multipurpose)까지 포함하면 총선복량은 2천 155만2 천 400TEU(8천 452척)가 되지만, 100TEU급 이상의 순수한 컨테이너선만 기준으로 하면 이번에 2000만TEU를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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