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진실과 국민 외면하고 5.18쪽에 편승할 것
박근혜는 진실과 국민 외면하고 5.18쪽에 편승할 것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7.18 2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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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영상분석기법으로 97명의 광수를 김정은 정권 핵심인물중에서 찾았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은 소름끼치는 사기극
광주와 북한이 손잡고 국가를 전복하려던 사건이었음이 35년 만에 밝혀졌다

▲ 올해 5.18 기념식에서는 '민주대행진'을 한답시고 광주에서 김정일과 김대중의 캐릭터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했다. 세계의 흉악범 김정일을 인자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어 시가행진을 한 것이다. 복괴 김정일과 김대중이 케릭터를 앞세워 함께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뉴스타운

김대중과 북한특수군 600명은 하나  

한국의 서남쪽 지방에는 전라도가 있고, 그 지역의 중심은 광주다. 전라도 전체 지역은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 사람들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 이를 공식적으로는 "전라도의 한" 이라 부른다. 전라도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남들에 피해를 주는 경향이 유난히 두드러짐으로써 주위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바로 이것이 전라도의 한으로 쌓여온 것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동안 광주에서 반국가 폭동이 발생했다. 전 세계를 진동시킬 만큼 거칠고 조직적이었다. 민간인 166명, 군인 및 경찰 27명이 사망한 다음에야 폭동이 진압되었다. 1981년 대법원 재판에서 이 사건은 김대중이 배후 조종한 사건이고, 김대중을 혁명정부 수반으로 세우기 위한 내란 폭동이었다고 판결되었다.

아울러 김대중은 23세로부터 공산당에 가입한 공산주의자인 것으로 정의되었다. 실제로 김대중은 1972년 일본에서 북한자금으로 한민통이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김대중은 박정희 사망으로 권력의 공백기가 발생하자 재빠르게 전라도의 한을 이용하고, 북한특수군을 광주로 불러 국가를 전복한 후,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공산정권을 남한에 세우려 했던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자 김대중은 1980년 4월 3일부터 전국 학생시위를 배후 지휘하는 반면, 그를 수반으로 하는 26명의 혁명 내각을 준비하였다. 1980년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10만 학생이 집결, 폭도화 되어 버스로 경찰을 깔아죽이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고무된 김대중은 다음 날인 5월 16일, 국가를 향해 최후통첩을 선포했다. "5월 19일까지 최규하 과도 내각을 해체하고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결심하지 않으면 5월 22일을 기해 전국시위를 강행할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김대중에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정당에 속해 있지도 못한 일개 뜨내기 정치꾼이 감히 국가를 상대로 이런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 시기에 광주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광주는 북한특수군 600명과 전국의 수많은 고정간첩들을 위한 숙소들을 마련하고 변장용 옷과 음식 등 군수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당을 갖지 못한 일개 정치꾼인 김대중이 감히 국가를 상대로 이러한 돌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의 이 무서운 선전포고는 바로 그 다음날인 5월 17일 긴급 전군지휘관 회의를 소집하게 했고, 밤중에 비상국무회의를 열게 하여 결국 전국비상계엄을 선포케 했고, 이에 김대중은 5월 17일 자정 체포되었다. 결국 1981년 4월 1일, 당시 대법원은 김대중을 내란음모와 광주폭동 배후 지휘자로 정의하는 판결문을 썼다.

35년 후인 지금 밝혀진 5.18의 진실  

5.18 내란 폭동을 주도한 병력은 북한특수군 600명 및 전국에서 차출한 간첩 및 그들이 고용한 지방건달 그리고 김대중을 추종하는 광주시민들이었고, 이 모두를 지휘한 사람은 당시 인민군 상장 리을설(제62광수)이었다. 당시 전국적 내란을 획책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병력은 20-50대에 이르는 경험 많은 인재들이었고, 이들은 500명 정도의 전투조와 100명 정도의 정치공작조로 편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 ⓒ뉴스타운

황장엽(제72광수), 김덕홍(제71광수), 황병서(제23광수), 최룡해(제36광수), 김양건(제92광수), 리영호(제66광수), 오극렬(제73광수), 김영춘(제22광수), 박재경(제29광수), 김일철(제17광수), 현철해(제18광수), 김격식(제4광수), 연형묵(제31광수), 김영철(제14광수) 등은 물론 김정은 체제의 핵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광주 내란폭동전에 참여했다. 지금까지 500만야전군은 최첨단 영상분석기법으로 97명의 광주참전자들을 김정은 정권 핵심인물들 중에서 찾아냈다. 1980년 광주에서 찍힌 얼굴들과 현 김정은 권력핵심 인물들의 얼굴을 비교 분석한 결과 97명이 일치한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당연히 북한특수군에 부역한 부나비들이며, 여기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 90% 가까이가 10-20대의 개념 없는 무직 또는 막노동꾼들이었다. 따라서 광주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결성된 시위대는 없었고, 그 지휘자도 일절 없다.  

좌우 정권에 따라 뒤바뀐 5.18의 성격  

같은 5.18 사건에 대해 한국은 두 차례의 재판을 했다. 1981년과 1997년이었다. 1981년에는 광주소요를 배후조종한 김대중이 역적인 것으로 판결했고, 1997년에는 김대중을 애국자, 전두환은 내란을 일으킨 반역자인 것으로 판결했다. 1997년의 재판에는 매우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첫째, 검찰의 수사기록은 1980년 기록이나 1996년 기록이나 똑 같은데도 불구하고 시대의 판사들이 해석을 정치적으로 했다는 사실이고, 둘째, 국민 감정의 쏠림 현상을 악용하여 좌익세력이 국민 감성을 자극-선동하여 헌법에 규정돼 있는 재심 절차를 무시하고, 위헌적인 정치재판을 하였으며 셋째, 증거와 법률이 무시되고 '자연법' 즉 여론법이라는 법의 족보에도 없는 인민재판을 감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요지는 제2심 판결문에 명시돼 있다. 1997년의 재판부는 한국 정부를 적대시하는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재판부 였기 때문에 한국의 법을 무시한 것이다.  

어제의 역적과 충신이 오늘은 반대로 바뀐 한국 사회 

같은 역사 사건을 놓고, 1980년의 충신과 역적이 1997년에 뒤바뀌었다. 이런 기현상은 국가의 정체성이 바뀌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이변이다. 이렇게 국가정체성이 뒤바뀐 것은 당시 선동과 거짓을 전문으로 하는 좌익-공산세력이 한국 사회를 사실상 지배했기 때문이었고, 이러한 공산지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발굴한 5.18 진실의 의미  

사실상 지난 35년 동안 민주화 역사로 성역화 돼온 5.18의 진실은 한 마디로 "김대중과 김일성이 손잡고 일으킨 국가전복-적화통일 내란폭동"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광주와 김대중을 여적죄로 다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전포고 없이 한국을 침략하여 무고한 국민들을 살해하고, 전라남도 지방과 국가 사이에 사실상 영원한 적대관계를 형성시킨 정치공작을 자행한 북한을 전쟁범으로 다루는 일이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며, 그에게 이런 의지가 있는가? 대답은 '단호한 아니다' 이다.  

박근혜는 5.18 진실을 철저히 무시-외면할 것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 거의 모두가 그러하듯이 박근혜도 2002년 평양을 다녀 온 이후 공산주의 노선을 걸어왔다. 2001년 김대중은 베트남 총리에게 한국군의 베트남 통일전쟁을 방해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다. 이에 박근혜는 김대중을 서슬 퍼렇게 맹공했다. "김대중의 사과는 마치 6.25 참전 유엔 국가들이 북한에 대고 6.25 통일전쟁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박근혜의 반공의식은 2002년 북한의 최고 영빈관 백화초대소에 3박4일 머물며 김정일의 지극한 환대를 받자 마자 즉시 180도 회전됐다. ⓒ뉴스타운

하지만 이러한 박근혜의 반공의식은 2002년 북한의 최고 영빈관 백화초대소에 3박4일 머물며 김정일의 지극한 환대를 받자 마자 즉시 180도 회전됐다. 그 후 그의 행보는 국기보안법을 위반하고도 남을 만큼 위험한 것들이었다. 그는 김대중과 김정일이 2000년에 공동선언한 연방제통일(사실상 적화통일)을 반드시 실천하자며 김정일과 약속하고 확인까지 받아 왔다. 그리고 지금 아무런 근거 없이 통일대박을 선동하고 있다. 이는 적화통일을 의미한다.  

박근혜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이미 건넜다. 그는 2004년 8월 12일, 김대중을 찾아가 아버지 박정희의 무릎을 꿇게 했다. 유신시대에 아버지가 김대중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딸로서 대신 사과 한다는 내용이었다. 김대중을 선으로, 아버지를 악으로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5.18을 바로 잡으려면 박근혜는 그런 김대중을 부관참시 해야만 한다. 김대중을 신처럼 여기고, 그 미망인 이희호를 상전처럼 모시는 박근혜가 안면을 몰수하고 김대중을 처벌한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다.  

그래서 인지 박근혜는 실제로 광주에 참전했던 북한특수군 출신 2명 즉 서울근교에 사는 가명 김명국과 김덕홍을 사실상 연금상태에서 세상과 접촉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이번에 탈북했다는 인민군 상장 박승원은 우리가 발굴한 제37번 광수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그의 탈북을 보도했고, 여러 언론들이 그의 탈북사실을 보도했지만, 그 역시 김덕홍 처럼 감금될 것인지, 아니면 제3국으로 보내 버릴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박근혜는 방통심의위를 통해 북한특수군에 대한 표현을 검열하고 삭제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북한의 통제수법 그대로다.  

▲ 지난 7월 7일 대통령 국무총리 등 12명에게 "내우외환죄 신고서"를 등기속달하였다. ⓒ뉴스타운

현 검찰총장 김진태는 5.18 역사 뒤집은 장본인  

5.18을 김대중이 배후 지휘한 내란폭동이라는 1981년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데 앞장서서 총대를 멘 검사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검사는 채동욱과 김진태 였다. 나는 지난 7월 7일 대통령 국무총리 등 12명에게 "내우외환죄 신고서"를 등기속달하였다. 아마도 그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단순한 의혹 제기 차원의 신고에 불과하기 때문에 종결처리합니다" 12명으로부터 보내올 회신을 역사자료로 남기고 공개할 것이다.  

방법은 단 두 가지  

첫째, 국민 대다수가 이 진실을 알 때까지 모든 국민이 의병이 되어 반드시 적화의 궁지로부터 헤어나야 한다.  

둘째, 해외 언론 본사, 유엔기구, 미국의 조야에 광수 화보와 함께 호소문을 보내야 한다.  

▲ 뉴스타운 특별 호외 2호 ⓒ뉴스타운

뉴스타운 호외2호 발간  

7월 20일(월), 호외2가 발간된다. 호외1호는 사진 위주였고, 호외2는 기사중심이다. 이 두 호외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따라서 필요하면 호외1도 병행 발간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그야말로 벌떼처럼 나서서 그야말로 누란의 위기에 서 있는 이 나라를 살리는 데 결사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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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2015-07-19 09:14:15
광수들의 발견은 5.16혁명에 비견할 수 있는 구국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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