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상상 이상으로 의도적으로 비열했다. 동기를 밝혀라
조갑제, 상상 이상으로 의도적으로 비열했다. 동기를 밝혀라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3.01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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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우익끼리의 싸움이라는 좁은 시각으로 간주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 ⓒ뉴스타운

2013년 5월 25일, 조갑제가 부산에서 "조갑제 기자의 한국현대사" 라는 제목을 걸고 강의를 했다. 그 강의 내용은 참깨 방송에 의해 유튜브에 "조갑제 기자 광주사태의 북한군 개입 완전 부정" 이라는 제목으로 1-9회로 나뉘어 실렸다. 7-9회를 보면 조갑제가 북한특수군이 절대 오지 않았다는 이론을 폈고, 중요한 대목들에서는 청중들의 동의 여부를 물었다.  

나는 솔직히 그에게 총 6회의 경고장을 공개적으로 보낸 후 그의 이름 근처에도 가기 싫어했다. 하지만 그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역사인 5.18의 진실을 매우 야비-간교한 방법으로 호도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야비함을 알지 못하고 그에 속아 그의 강의내용에 찬성을 하기 때문에 그 비열함이 무엇인지 공적 차원에서 밝혀야만 하겠다.  

두 개의 애피타이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소한 지적부터 하고자 한다. 김영삼이 갑자기 전두환을 잡아넣고 5.18을 다시 재판하게 된 동기에 대해 가장 먼저 글을 쓴 사람은 나였다. 1995.10.19. 박계동이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하고, 국민들이 한참 분노할 때 김대중은 나와 함께 중국 조어대(영빈관)에 있었다. 거기에서 김대중은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고 20억을 발표했다. 그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를 수행한 수십 명 가운데 없었다. 모두 다 "왜 그래셨습니까?" 하고 의아해 하기만 했다. 그의 두뇌회전을 따라가는 머리가 그 많은 국회의원들 중에 없었다.  

이 말을 들은 국민들은 김대중이가 노태우로부터 20억 받았으면, 노태우 밥상머리에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얼마나 받았겠느냐, 화살을 김영삼에 쏘았다. 이것이 김대중의 머리였다. 다급해진 김영삼은 이 화살을 피하기 위해 전두환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 내용은 일반화 돼 있는 시각이 아니라 거의 나만의 독특한 분석으로 이는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을 쓰는 도중에 처음으로 쓴 내용이다. 물론 내 책에도 있다.  

이런 내용을 내가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당시 중국 영빈관에서 김대중과 1주일 동안 있으면서 하루 세끼를 늘 그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서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취지의 설명을 조갑제가 자기 강의에서 마치 자기의 분석인 것처럼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분석은 나의 저작권이라 감히 말 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러면 인용이 있어야 했다.

두 번째 사소한 것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도청 진압작전에 투입된 병력이 박준병이 이끄는 20사단 예하 몇 개 연대라고 강의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수부대 중에서도 소수정예로 선발한 특별한 공격팀이 족집게 식으로 특공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그래서 폭도들은 총 한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자기 말로 35년 동안 5.18을 연구했다는 사람이 이런 중요한 대목을 수많은 청중에 거꾸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을 기해야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본격적인 비열성-고도의 계산된 심리전 차원

조갑제가 부산에서 5.18 강연을 한 날짜는 2013년 5월 25일이다. 그리고 그의 강연내용에는 TV조선과 채널A라는 표현, 종편이라는 표현, 두 방송국들이 허위사실을 방송했다는 내용들이 적시돼 있다. 그리고 그의 강연목적은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요 고비마다 "나에게 동의하십니까?" 하고 청중을 자기 논리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가 종편 방송을 문제 삼고, 북한특수군을 정정당당하게 문제 삼으려면 부산 강의 당시로부터 만 7년 이 지난 탈북군인 임천용 회장의 기자회견(2006.12.20. 세실레스토랑)에서 한 발표내용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바로 강의 직전에 있었던 종편방송에서의 내용 즉 새로운 도전에 대해 문제 삼았어야 했다.  

2006년에 임천용의 발표가 있었고, 2008년 장장 1,720쪽 짜리의 다큐 역사책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책이 나왔다. 그리고 그 요약본 상하가 나왔고, 2010년에는 북한특수군이 확실히 왔다는 것을 증명한 "솔로몬 앞에 선 5.18" 이라는 책이 나왔다. 모두 내가 쓴 책이다. 나는 2013년 1-3월, 두 방송국에 몇 번 나가면서 이들 책들과 북한의 비밀문헌들을 한 아름 가지고 나가 진행자들은 물론 수많은 시청자들에 북한특수군이 왔다는 것을 인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지만원 : 5.18에서 사망하거니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그 90%가 넝마주이, 껌팔이, 구두닦이, 화물차 운전수, 재개공, 석공, 목공, 식당보이 등과 같은 소외계층입니다. 그것도 통털어 423명 뿐입니다. 이들은 시위대로 편성돼서 거리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부나비처럼 개별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자, 보세요. 1980년 5월 21일, 오전 8시, 300명의 초 정예 시민집단이 20사단 정규군 지휘부 차량부대가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톨게이트 근방에 매복하고 있다가 습격을 해서 정예부대인 20사단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의 삐까번쩍한 지프차들을 빼앗아 그걸 몰고 군용차량 생산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갔습니다. 이런 20대의 콩가루 소외집단이 300명씩이나 모여 극비 정보를 알아내 가지고 감히 이동 중인 군부대를 습격해서 혼비백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자료는 검찰의 수사결과 보고서인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진행자 : 아아~ 그건 불가능하지요. 그건 정말로 특수작전에 속합니다. 그건 광주시민이 아닙니다.  

지만원 : 그런데 아침 9시에 아시아자동차 공장에는 이들 300명과 또 다른 300명이 와서 합세하였습니다.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의 지프차를 보는 순간 공장 직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키와 함께 내주었습니다. 결국 이동 중인 20사단을 기습한 이유는 번쩍거리는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한 14대의 지프차로 아시아자동차 직원들을 말없이 제압하려는 고도의 계산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녀진행자 : 그렇네요. 무섭네요. 

지만원 : 이런 전략적인 계산, 그리고 전광석화 같은 차량탈취 행위를 이들 콩가루 20대가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남녀진행자 : 절대 아니지요.  

지만원 : 이들 콩가루 중에 장갑차 4대와 트럭 300여대를 몰 수 있을까요?  

남녀진행자 : 아니지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지만원 : 이들이 전남 17개 시군에 꼭꼭 숨어 있는 무기고 44개를 불과 4시간 동안에 다 털어 5,400여정의 무기를 탈취하였습니다. 이게 콩가루 계급이 할 수 있은 일일까요? 이 자료는 여기에 있습니다(보여주며).  

남녀진행자 : 아니지요. 그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한국군도 그렇게는 못할 걸요.

이어서 나는 TNT 이야기, 교도소 습격 이야기를 간단히 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이 모두 다 수사기록에 있는 자료라며, 그 소재를 책을 펴가면서 보여주었다. 진행자들은 100% 내 설명에 동의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처음 대하는 분들도 여기까지만 읽으면 북한특수군의 소행임을 인정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조갑제는 이 중요한 장면들은 외면하고 만 7년 전에 탈북자가 했던 기자회견 내용만 따로 떼어다가 그것이 북한특수군 600명론의 전부인 것처럼 소개하면서, "그것은 카더라 통신에 불과"한 것이니, 이후 탈북자의 말은 믿으면 곤란하다고 못 박았다.  

조갑제 강의 요지

"수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나는 5월 23일에 광주에 갔다. 가서 27일까지 105구의 시체를 확인했는데 대부분이 머리가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 광주사태가 비극으로 간 이유는 공수대의 과잉진압 때문이었다. 내가 광주시민이라 해도 총을 들어 계엄군을 쏘았을 것이다. 광주에는 수백명의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단 1명도 북한특수군을 보지 못했다. 죽은 사람 중에 북한군은 없다. 현제 신원미상이 5명 뿐인데 그 5명은 북한특수군이 절대 아니다."  

"도대체 북한군 1개대개가 어떻게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느냐, 전 해안은 모래바닥이고, 북한군이 오면 반드시 발자국이 남는다. 아침이면 모든 부대가 출동하여 비자루로 쓴다. 당시의 전방과 해안은 완전 밀봉상태에 있었다. 단 1명도 들어 올 수 없었다. 울진 삼척에 들어온 무장간첩은 130명이다. 그 다음 큰 부대가 김신조 부대다. 그런데 600명이 흔적도 없이 들어 왔다? 누가 그걸 믿겠나, 이런 사람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불통의 인간들이다. 내 말에 동의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없으시네요."  

2013.5.25. 조갑제 부산 강연 "조갑제 기자의 한국현대사" [조갑제:광주사태 북한군 개입 완전 부정]참조.

방송에서 그는 "나는 이 말을 목숨 걸고 보장한다"고 했다 북한의 침략행위를 목숨 걸고 가려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신원미상자는 12명이다. 5명이라는 것은 5.18 측의 말일 뿐이다. 그런데 그 5구의 신원미상자가 어째서 북한군이 아니라는 것인가?  

조갑제는 북한특수군 600명론을 부정하기 위해 내가 쓴 책이나 인터넷 게시글 또는 내가 했던 여러 개의 방송내용을 반박한 것이 아니었다. 이 중요한 내용은 억지로 외면하고 7년 전의 임천용의 발표내용이 600명 설의 전부인 것으로 청중을 속였다. 그리고 이는 카더라 통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간교한 특수심리전인 것이다. 

조갑제는 답해야 한다. 전국의 해안선 전부가 분명히 모래로만 구성돼 있고, 바위와 흙으로 되어 있는 해안은 없는가? 그리고 간첩은 자기가 남긴 발자국을 지우면서 뒤로 걷는다. 이것도 답하라. 

결 론

조갑제는 이 문제에서 참으로 간교하고 비열했다. 3월 19일, 직접 토론장에 나와 이 비열함에 대해 방어하지 않는다면 내가 조갑제가 없는 자리에서 그 간교함을 떳떳이 밝히겠다. 공익을 위해 조갑제의 이론이 아무 것도 아니 었다는 것을 반드시 공표해야만 하겠다.  

내가 종편에서 방송했던 600명론에 대해 조갑제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3월 19일 내가 TV 진행자들에 물었던 그런 질문을 할 테니 그날 나와서 반박하기 바란다.  

나는 600명의 근거를 수사기록과 북한의 대남공작 문헌들에서 찾아냈지, 탈북자의 카더라를 인용한바 없다. 그래서 3월 19일에는 탈북자들을 토론에 참여시키지 않는다. 간교한 자들이 탈북자 얼굴을 찍어 우리 발표회를 "카더라 발표회였다" 고 조작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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