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DJ 휘하의 동계동계 정치인들의 성향은 대체적으로 중도 온건합리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학생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출신 강경파 출신들도 더러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화정도는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멤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DJ가 적절한 통제력을 구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엊그제 있었던 새민련의 전당대회 결과를 보면 이제 구 DJ 계열은 서서히 퇴조의 길로 접어들고 그 자리에 한쪽으로 경사진 이념이 몸에 배어있는 강경파 운동권 출신들이 당의 권력을 장악한 결과, 세력교체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점이 이번 전당대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새민련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문재인 지도체제가 구성된 이후 열린 첫 지도부 최고회의에 참석한 신임 지도부의 발언을 보면 앞으로 정치권은 문희상, 박영선, 김한길 이전의 새민련 지도부 보다 훨씬 더 험난한 정치지형이 전망되어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어제 최고회의에 참석한 문재인의 모두발언을 보면 박근혜 정부와의 무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문재인은 "국민의 삶을 무너뜨린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반드시 막아 내겠다면서 증세 없는 복지공약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날을 세웠다. 자신이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은 "당원과 지지자가 박근혜 정부에 맞서라는 명령"으로 간주했다. 이만하면 투쟁만을 지상과제로 삼겠다는 문재인의 속내가 확연히 드러난 셈이다.

문재인이 화두를 던지자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강경파 정청래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대국민 사기극을 펼쳤던 것에 대해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면서 노골적으로 정치공세를 퍼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강경파인 오영식 최고위원도 "공평한 조세 및 과세 확립을 위해 서민의 부당한 짐을 덜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싸워나가겠다"고 거들었다. 또한 김근태 계열의 유일한 여성최고위원인 유승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은 당을 위하는 싸움닭이 되겠다고 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서민증세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요구했다. 현 정부 성토일색이었던 이 와중에 온건파로 분류되는 주승용 최고위원만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어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잃어버린 민심을 찾자"고 주장했지만 이 소리는 강경파들의 소리에 비하면 모기소리에 불과했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강경파 지도부가 쏟아내는 소리는 정치를 오직 투쟁과 전투에만 의존하겠다는 소리로 들려 마치 현 정부와 무한투쟁을 예고하는 전주곡으로 들린다. 이들의 강경한 소리는 현 정부를 혐오 하는 골수 지지자들이나 종북잔존세력이 들었으면 속이 시원하여 잘한다고 박수를 쳐줄지 모르지만 일반국민이 들었을 땐 "글쎄, 그건 아니다"라는 소리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선 국민통합을 하라는 소리를 수시로 한다. 그렇다면 자신들부터 솔선수범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인데도 이들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무한투쟁, 굴복시켜야 한다, 전면전을 해야 한다는 소리로 도발적 발언을하고 있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긴야 운동권 시절부터 이념에 함몰되어 오다 보니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해도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체질적으로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이들 강경파들은 정치를 보는 시야도 좁을 뿐 아니라, 투쟁 방식도 스스로의 카테고리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케케묵은 과거 회귀형 투쟁방식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다.

이들에게 정치는 타협이요 대화의 산물이라고 하면 그것은 배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야합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이념 추종 운동권 출신들은 이분법적 카테고리를 즐겨 쓴다. 과거 운동권 시절에 써먹었던 독재냐 민주냐, 또는 민주냐 반민주냐 하면서 투쟁의 도구를 단순화하여 대중을 선동하던 그때와도 전혀 달라진 것도 없다.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이분법적 카테고리는 이들이 편 가르기를 할 때 동원되는 전매특허와도 같은 전술이었다.

툭하면 국민을 부자와 서민으로 편을 가르면서 부자는 악이요 서민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으로 여론을 선동하기 일쑤였고 또한 민주화가 된지 어언 30여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언제나 독재와 민주로 프레임을 구축하여 현상을 호도하기도 한다. 증세 문제에 있어서도 강자의 주머니를 털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는 식으로 모든 문제를 발생하는 상황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하기 위한 이분법적 접근만이 이들이 교감하는 정치의 요체로 인식하는 사고방식이 고착된 탓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처럼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협한 강경파 위주로 새민련의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이런 지도부에서 정부와의 전면전이라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게 볼 것도 없다. 전면전이란 말은 적대국과 선전포고를 할 때나 사용되는 법이거늘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전면전을 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을 뽑은 과반수이상의 국민과 전면전을 하겠다는 말과 같다. 북한이 들었으면 눈이 번쩍 뜨이고도 남았을 소리다.

문재인 대표는 어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강경파 최고위원들은 동행하지 않았고 등 뒤에서 쓴 소리를 마구 해댔다. 취임 첫날부터 대표의 리더십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는 반족짜리 참배였던 것이다. 이 한 장면만 봐도 강경파들로 구성된 지도부가 과연 어떻게 민심을 사로잡을 것인지, 도저히 장밋빛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