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는 이렇게 뒤집혔다
5.18 역사는 이렇게 뒤집혔다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0.01.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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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헌법조항을 유린한 원죄를 저지른 것

 
   
  ▲ 5.18 광주사태 자료사진  
 

1980년 재판 : 광주시위대는 불순분자와 연동, 무기를 탈취하여 계엄군에 발사하고 교도소를 습격하고 국가재산을 파괴한 반국가 폭동이다.

역사바로세우기재판 : "광주시위대는 헌법수호를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다. 이런 준 헌법기관을 강제진압한 것은 내란이다."

1980년의 대법원은 5.18을 반정부 폭동으로 규정했다

1980년, 한국의 법관들은 정승화에게 내란방조죄를 선고했다. “김재규가 범인인줄 알면서도 기회주의적 발상으로 김재규의 범죄를 은닉하고 김재규의 뜻에 따라 국방장관의 소관사항인 병력동원을 월권적으로 주도하면서까지 김재규의 내란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1980년의 법관들은 김대중에게도 내란음모죄를 선고했다. “80년5월의 학원소요사태는 김대중이 10.26 이후의 국가체제 공백기를 악용하여 북한 측 불순분자들과 연합하여 최규하 정권을 무너트리고 정권찬탈 목적으로 일으킨 내란음모 사건” 이라는 것이다.

1980년의 법관들은 5.18 광주사건을 반정부 폭동으로 규정했다. “5.18은 김대중으로부터 사주와 자금을 받은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 등이 자금을 살포 선동하여 폭력시위를 유발하고, 홍남순 김성용 등 반체제 인물들이 이에 편승하여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과도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폭도들을 더욱 선동하여 방화, 파괴, 살인, 강도 등의 행위를 저질러 광주를 무정부사태로 만들고 계엄군에 총격까지 가한 폭동”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1995년까지 16년간 정사로 기록돼 왔다.

김영삼의 객기

하지만 1987년부터 세상의 주도권은 민주화세력으로 위장된 좌익세력에 넘어갔다. 북한의 대남사업에 파견된 간첩들과 정권에 눈이 어두운 정치꾼들, 남한에 살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도록 훈련된 386주사파 학생들이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언론을 장악하여 전국에 민주화 돌풍을 일으켜 전국을 이성 잃은 광란의 사회로 몰아갔다.

386주사파의 숙주가 된 김영삼이 민주화의 영웅이요 화신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이들에 영합하고 꼭두각시가 되어 저들의 뜻대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을 지휘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으로 편입하여 당시 민주화세력들이 주창했던 “5공 청산”의 5자도 꺼내지 않겠다면서 노태우의 마음을 샀고 노태우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배은망덕하게도 노태우를 토사구팽했다.

인기영합에 감이 빠르다는 그는 광주사람들의 인심을 사느라 객기를 부렸다. “12.12는 쿠데타적 사건이지만 역사평가는 후대에 맡기자”는 말을 하여 박수를 받았고, 검찰은 그의 말을 받드느라 “12.12는 군사반란이지만 성공한 쿠데타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아부성 결론을 내놓았다. 이로써 기존의 역사는 그 대로 지속되는 듯 했다. 죄는 있지만 처벌은 안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박계동-김대중-김영삼 연쇄 폭발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이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하자 사회는 들끓었고, 이에 중국에 가 있던 김대중이 제발 절여 10월 27일, “나는 노태우로부터 20억을 받았다”고 선수를 쳤다. 이에 국민은 탄압받는 김대중이 20억을 받았다면 김영삼은 도대체 얼마를 받았느냐며 화살을 김영삼에 돌렸다. 김영삼은 이런 막다른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노태우와 전두환을 구속하라 했다. 김영삼에 집중됐던 국민의 관심은 한 순간에 전두환-노태우로 넘어갔다.

결국 노태우-전두환은 김영삼이 달아나기 위해 악용된 희생물이 된 것이다. 김영삼이 말을 바꾸자 권력의 시녀라는 검찰은 또 법해석을 바꾸고 사실을 왜곡했다. 감옥에 집어넣은 전두환 등에게 죄가 없다면 아주 큰일이다. 반드시 죄를 만들어 씌워야만 했던 것이다. 전두환 등에게 죄를 씌우자면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했고, 1980년의 재판을 모두 뒤집어야 했다.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도 헌법 위반이요, 일사부재리 원칙을 뒤집는 것도 헌법 위반이었다.

한국의 대통령과 국회와 법관들은 헌법이 금지시킨 소급입법을 만들고 그래도 공소시한이 걸리자 12.12로부터 5.18에 이르기까지 6개월 동안의 기간이 다단계 쿠데타 기간이었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조작해내서 전두환 등에게 중죄를 씌웠다.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바로 두 개의 헌법조항을 유린하는 원죄를 저지른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 구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 두 개의 원죄를 유린했다 해도 그 후의 실제 재판과정에서 합리성과 증거대로만 재판했다면 전두환 등에게 죄를 씌울 수 없었다. 그래서 온갖 억지가 동원된 것이다. 관심법도 동원됐다. 12.12 이전부터 신군부의 마음속에는 내란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해괴한 주장이 대두된 것이다. 그 근거로서는 신군부에 ‘집권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기록의 어디를 보아도 신군부가 사전에 집권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집권 시나리오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 낸 사람은 5공의 배신자라는 권정달과 검사다. 이들은 검찰청이 아닌 삼정호텔에서 만나 기상천외한 집권시나리오라는 새로운 죄를 만들어 냈다.

판결문에 나타난 대부분의 주요 범죄사실들은 증거도 없고 증언도 없이 작성됐다. 관심법 재판과 인민재판으로 조작된 것이다. 그래서 지나던 소가 웃을 만한 코미디 판시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다.

예비역 장군들까지도 "이미 재판에서 땅땅 친 것인데 다시 문제 삼아 어쩌자는 거야?" 이런 말들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루어 졌는지, 그 코믹한 부분들을 부각해야 할 것이다. 법절차 상으로 보나 수사기록에 나타난 사실들을 보나 필자는 1980년의 판결은 옳은 것이고, 1997년의 판결은 그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집힌 판결

1996년의 법관들은 헌법이 명시한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하고 정승화와 5.18 광주사건 모두에 대해 재심절차 없이 다시 재판했다. 이들에 의해 김대중은 민주화의 화신으로 등극했고, 전두환은 무력으로 국권을 찬탈한 반란수괴요 광주시민을 학살한 내란수괴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1997년 4월 17일(96도3376) 대법원은 이런 요지의 판결문을 냈다. “5⋅18은 전두환 일당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해가지고 최규하 대통령을 위압하여 권력을 행사하면서 내란을 목적으로 광주학살을 자행하였다.” 6개월에 걸친 다단계쿠데타였다는 것이다. 쿠데타 하는 사람이 12.12에 겨우 수사관 7명을 정승화에게 보내 서빙고로 가자고 졸랐으며, 전두환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서 재가를 해 달라고 앙청했으며, 대통령이 국방장관이 오면 결제해준다는 말을 듣고, 9시간 동안이나 숨어 다니던 국방장관이 최규하 대통령 앞에 나타날 때까지 국방장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세상에 이토록 희한한 쿠데타는 오직 한국에만 있고, 역사바로세우기 판검사들의 머리에만 있는 것이다.

해학적 판결들

판결1. “1980년 정승화가 합수부에서 했던 진술은 고문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무효다.”

판결2. “정승화가 10.26밤 김재규를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 한 것은 김재규가 권총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고 한 법정진술은 설득력이 있다.”

판결3. “12.12 밤, 최규하 대통령은 공관을 경계하는 경비 병력으로부터 공포감을 느꼈고, 밤 9시 30분경에 찾아온 6명의 장군들로부터 공포감을 느껴 자유의사를 상실한 채 꼭두각시가 되어 전두환이 원하는 대로 결재를 해주었다.”

판결4. “12.12는‘하나회’가 중심이 되어 군권을 장악하려고 사전 계획 하에 저지른 쿠데타 사건이다.”

판결5. “이학봉과 전두환이 사전에 쿠데타를 모의했다”

판결6. “정승화가 전두환을 합수부장에서 해임시켜 동경사(동해안경비사령부) 사령관으로 전보 발령하려 하자 전두환이 선수를 쳐서 12월 12일에 정승화를 불법 납치하였다.”

판결7. “5월17일, 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를 가결하기 위해 중앙청에 모인 총리와 장관들은 집총한 경비병들에 주눅이 들고 공포감에 싸여 만장일치로 가결했기에 무효다.”

판결8. “10.26의 지역계엄을 5.17에 제주도에까지 확대한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이고, 그 폭력을 내란의 마음을 가슴속에 품은 신군부가 껍데기 대통령을 도구로 이용해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내란이다. 계엄령의 선포는 그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해악의 고지행위이고 계엄업무에서 총리와 내각을 제외시킴으로써 국민은 물론 총리 내각 등 헌법기관들까지도 공포감을 가지게 되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기에 계엄령 확대조치 자체가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판결9. “광주시위대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 결집된 준 헌법기관이다” “광주시위대는 전두환의 내란음모로부터 헌법을 수호한 결집이다.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에 가서까지 직접 챙긴 광주작전이긴 하지만 최규하 대통령이 신군부의 5.18진압과정을 보고 놀라 공포감에 휩싸여 대통령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통령은 껍데기에 불과했기에 대통령 재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대통령이 서명한 것은 신군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판결10.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법률도 아니고 헌법도 아닌 '자연법'에 의한다.”

판결11.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데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착안하지 않은 분야들에 대해서까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 건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망을 얻어 대통령에 오른 것에는 처음부터 반역의 뜻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판결12. “정호용은 광주진압의 총사령관이라 내란목적살인죄의 주범이고, 12.12에는 직접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신군부 중의 한 사람으로 전두환을 추수하며 부하뇌동 한 죄가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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