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학살은 북한군이 저지른 것!"
"5.18 학살은 북한군이 저지른 것!"
  • 지만원 박사
  • 승인 2006.12.20 21:5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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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 임천용씨 기자회견서 밝혀...

 
   
   ▲(자료사진) 5.18 광주사태당시 무장한 시민군  
 

오늘 아침 11시부터 세실레스토랑에서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 임천용씨가 내용이 충실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격적인 내용만 요약하면 이렇다.

1. 남한의 모든 크고 작은 소요에는 빠짐 없이 북한의 공작이 개입돼 있다.

2. 5.18 때, 광주에 700명 정도의 특수군이 투입됐다. 제1진에는 300명, 제2진에는 400명, 모두 서해로 투입됐다. 서해안에 이르자 남조선 배가 마중 나와 길을 안내했다.

3. 남한에 있는 탈북자 중에는 5.18때 광주에 왔다가 돌아갔다가 탈북해온 사람이 현재 있다. 그가 오늘 기자회견장에 나오기로 돼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안 나왔다.

4. 광주 사태에 투입됐던 특수부대원 중 상당 부분이 지금도 남한에 남아 있다.

5. 광주 사태에 참여한 사람들 중 62명이 영웅으로 추대됐다.

6. 죽은 사람 사진들(현장전시) 중에는 전기톱에 의해 얼굴이 가로로 잘려진 사진도 있고, 나체 여인이 둔부를 드러낸 채 목이 잘린 사진도 있고, 나체 여인의 등에다 뒤로부터 총을 쏜 흔적이 있는 사진들이 있다. 한국의 공수부대 요원들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제주 4.3 시간 등에서 보듯이 공산당들은 공포감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가장 잔인하게 죽인다. 이 세개의 사진을 보더라도 광주 학살이 북한 특수군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7. 남파된 북 특수부대 요원들은 각 군단 소속 특수부대들에서 차출됐고, 반은 국방군 복장이었고, 반은 민간인 복장으로 내려갔다, 국방군 복장을 입은 특수부대 요원들은 진압군 행세를 했다.

8. 남한의 HID 등 특수부대 요원들도 장갑차를 몰지 못한다. 한국군 부대에서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도 장갑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한국 시민들만을 가지고는 장갑차를 몰거나, 무기고를 탈취하거나, 주요 시설에 대한 방화를 동시 다발적으로 지휘할 수 없다. 타 지역에서 발생한 시민 봉기에는 북한군이 개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장갑차를 빼앗거나, 무기고를 털거나 정부군을 상대로 일사분란하게 싸우지 못했다. 광주에서만 이런 것이 가능했다. 바로 북한 특수군이 개입됐다는 증거다.

9. 광주에 북한특수부대가 갔다 온 사실들은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남한 사람들만 이를 부정하는가?

이하 데일리안 뉴스를 전재한다. 기자회견 자료는 방대한데다 오늘은 자료를 얻을 수가 없어서 후에 입수되는 대로 올릴 것이며, 동영상은 아날로그로 찍었기 때문에 며칠 걸릴 것입니다.

이하 데일리안 기사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투입됐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 ´자유북한군인연합´ 기자회견
"5.18 광주사태는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 증명시키주는 현장"
2006-12-20 15:15:13
 

 
   
  ▲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들이 20일 광주민주화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데일리안 윤경원 기자
 
 

광주5.18민주화항쟁에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가 투입됐다는 주장이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에 의해 제기돼 충격이 예상된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자들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세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광주사태는 (북한의)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백색테러이자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을 증명시켜 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는 “광주사태의 발단과 시발점은 민주화봉기였다고 인정하지만 수많은 인명이 무참히 살상되고 끔찍하게 도륙당한 유혈적인 사건은 김정일 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테러행위”라고 밝혔다.

그는 그 증거로 ▲당시 봉기상황이 북한으로 실시간 생중계된 것 ▲봉기자들이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것 ▲현재까지 미해명으로 남아있는 신원 미상자 ▲전기톱에 의해 두개골이 파괴된 시체 ▲봉기군이 봉기군을 사살한 것 ▲봉기군의 아지트와 봉기군이 탈취한 탱크·장갑차·윤전기재 안에서 대량 발견된 술병의 진의 ▲방위산업체·감옥·방송국 등 국가기관 점거와 군 능력을 초월해 전면전을 불사한 것 등을 언급했다.

그는 또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광주사건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며 입수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임 대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서 광주가 제일 아까워. 우리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김 주석이 1986년 1월 6일 평남도 덕천 교도지도국본부에서 열린 지도국산하 여단장 정치위원을 위한 군사정치일군 상학(수업)에서 발언한 내용이며 전 인민군에 배포된 정치상학 자료에서 출처를 얻었다고 임 대표는 밝혔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 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 교도지도국은 남조선해방의 전초병이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당장 나갈 수 있게 만단의 동원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는 김 위원장이 1982년 3월 북한특전여단들이 북부지구에서 벌린 쌍방 게릴라 훈련장에서 발언한 것이며 출처는 교도지도국 각 여단 참모부 및 대대참모부라고 밝혔다.

임 대표는 당시 현장에 투입됐다 북한으로 귀대한 참가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그들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A씨:<내가 참가했던 조는 시위대 쪽에 편입되어 행동했다. 반반씩 나뉘어 절반은 시위대 쪽에서 움직였고 절반은 계엄군 쪽에서 활동했다…우리 대대에서 나갔던 사람들 중에 창석이(당시 중대장), 광만이(정치지도원)를 포함해 세 명만 돌아왔다…생사람 죽이는 일을 처음 해봤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내손으로 죽였다고 생각하니 끔찍할 정도였다…도망가는 여자들 등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정말 떨리는 일이었다…우리는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남조선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서 지원세력이 몰려오면 될 수 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 자체는 조직적인 단합이 없고 동내패거리 싸움식이었다. 우리가 드러나게 되면 일이 커지게 돼 있고 봉기의 성격이 바뀌었을 것이다.>

B씨: <우리도 죽었지만 남조선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총알에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것이다. 양쪽을 교란하고 싸움을 붙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시위대들이 많이 죽이 않으면 일이 그렇게 커지기도 불가능했다. 괴뢰군이건 시위대건 양쪽에 피해가 생겨서 서로의 마찰이 커져야 의도대로 되는 일이었다.>

C씨: <우리도 알 수 없는 별도의 특수조가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행동과 좀 다르게 현장의 분위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우리가 갈 때는 공해상에 그쪽 애들 두 척의 뜨락선이 마중 나왔는데 사복을 입었고 밤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임 대표는 “허울을 쓴 민주화 인사들이 북한정권과 입을 맞추며 광주의 희생을 자시들의 정치적 자신으로 역이용하고 특정집단의 상징적인 업보로 선동하고 있다”며 “파괴되는 국가사태 앞에서 더 이상 입을 다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북한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 김용화 씨는 “봉기 당시에 북한 인민군 중위로 있었고 황해북도 송림에 위치한 사회안전부 연봉부대에서 자동차를 관리하며 인민군의 수송을 담당했었다”며 “그 당시 ‘너구리 작전’이라고 해서 대동강 하류를 따라 남한군의 옷을 입고 자동보총을 들고 나가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밤 1, 2시가 되면 10명 정도를 태운 배가 조용히 빠져나갔고 그때는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고 그 때 빠져나간 북한군들이 광주에 가기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광주사건은 북한에서 계획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와서 그것을 민주화항쟁이라고 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교도지도국 대위출신의 최준일씨는 “북한특수부대출신들은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고 있다”며 “그 당시 나는 완전 전투태세로 무장한 채 광주사건에 대한 24시간 긴급속보 전해 들으며 20여일간 출전명령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야 상관들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희생도 많았고 공로도 있었다고 들었다. 3분의 1이 희생되고 나머지 2는 귀대했다”고 말했다.

[윤경원 기자]

조선일보 기사

"5.18 때 북한 특수부대 침투했다"

서울=뉴시스
입력 : 2006.12.20 15:25 / 수정 : 2006.12.20 15:27

5.18광주민주항쟁 당시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북한의 현역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로 침투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은 20일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80년 5월 중앙당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말한 김일성의 비밀지령 전문 등을 인용, 광주사태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투입됐었다고 밝혔다.

자유북한군연합 최중현 참모장이 밝힌 비밀지령에 따르면 김일성은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자유북한군연합은 "김일성의 비밀지령과 1980년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최 참모장은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저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속보를 전해 들으며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북한의 7군단 10사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며 "그 후로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고 덧붙였다.

최 참모장은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씨로부터 당시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들의 광주 침투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이씨에 따르면 광주사태 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로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 가운데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만이 귀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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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06-12-20 23:55:12
폭도들이 "국군이 광주에 들어오면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터뜨려 광주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였을 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가 아닌가? 북한이 툭 하면 미국에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하였을 때 누구를 인질로 삼았는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투쟁 지도부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겠다고 위협하였을 때 그 인질은 광주 시민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서울에 쏘겠다고 위협하였을 때 그 인질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광주시민의 생명을 인질로 삼은 다이너마이트 폭약--그것은 계엄군의 진압 작전의 무력화를 의미하였다. 광주시민의 생명을 인질로 삼은 다이너마이트 폭약--그리고 그것은 북한이 남침해도 미 항공모함이 우리를 도울 수 없음을 의미하였다. 1975년 월맹이 미국의 참전을 불가능하게 하고 월남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전술 역시 월남 중부 지방의 시민들을 인질로 삼았었다.
그러면, 어째서 이처럼 순식간에 광주 일대를 잿더미로, 광주시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폭약이 도청 지하창고에 설치되었던가? 朴南宣(35·당시「市民軍」상황실장의 증언을 들어보면 언제나 이런 사건 배후에 누군가의(그 자들이 간첩일 가능성을 우리가 열어두어야 하는) 자들의 선동이 있었다. 김종배 등 스스로 광주사태 유공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선동에 휩쓸려 엄청난 일들을 저질렀다. 예를 들어, 5월 21일 시민군이 국군을 깔아죽일 때 사용했던 장갑차는 이렇게 탈취된다.

>

이때 시민군은 8t트럭도 탈취하여 화순광업소에서 약탈한 다이너마이트를 가득 실어 광주에 운반하였다가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자마자 도청 지하창고에 폭파장치를 하였다. 그런데, 그 날 나주에서의 약탈에 대해 전혀 다른 두 시각이 있다. 朴南宣(당시 市民軍 상황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

그러나, 익명의 한 시민은 나주 주민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시각에서 시민군의 약탈을 증언한다:


등소평 2006-12-21 12:03:31
지만원 삼류 코매디 쓰지마 바보다 그기사 옷긴다 또다시 광주시민 학살 할건가

안쓰럽다 2006-12-21 13:16:32
지만원. 그는 이미 사고체계가 고장난 인물이다.
백번 떠들어도 누구하나 경청할 사람 없을 것이다.
불쌍한 인간.

연개쇠문 2006-12-26 14:34:13
광주 그 전두환의 길모르던 과거사에 북한의 특수부대가 참여햇엇다는것은 -알만한 소스로 다알고 지금은 별일도 아니다.
단지 김대중이가 전라도에 뱀처럼 똬리를틀고 대한민국을 엎을 생각을하고 있다는것이 무고한 국민들에게 두려운 일이다.
지만원씨 김용갑씨 2 선에서 반공을 외치고 북한의 사주를받은 한국사회와 정치의 중심의 붉은군대를 잘 지적하시고 게십니다.
그들의 깊고도 치밀한 전략이 잘 맞아 떨어져서 - 어느덧 거의 확정적 도발직전의 상태로 나아가고 있고-
김정일의 핵을 만지는 손놀림에 그들 더확실하게 힘을 받은 모양인데 -정말 대한민국은 국민성이 -6.25 사변때들린 말처럼 -급하면 빨갱이로 아니면 민주투사로 돌변하는것이 사실같소.
광주사태-그 순진환 20 대들이 전두환의 군대에 무참히 살해되고 그 와중에서 -숨겨진 북한특수부대들의 참여가 사실이라면 -노무현은
파헤치기는 커녕 -김대중의 노련함에 굴복할것같구려
다시 사회는 소용돌이로 변하고-통일은 북한은 무력으로 진주하려하고 남한은 정치판의 회오리로 대선을 해야하는데-광주사태의 새로운 국면에 정국의 가열화가 되면...김정일은 쾌재를부르겟구려-
그거참 큰일일쎄- 굶어죽는 북한주민을 인정으로 도우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속에 가려진 북한의 적화야욕을 -이제는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환영하는꼴이니..
다시한번- 엄청난 댓가를치루어야할판인데

안그러냐 대중아? 네 뜻대로 되어가는걸로 보이지....?
하지만 그리 간단치는 않을것이다.
이름알려진 강자외에도 땅은 넓은법-
소수중진들의 이를악문 대한민국사수작전이 벌어질걸로 사료되니
이른바 -시대를 잘못만난 386 세대보다 더 신선하고 현명한 젊은
참신한 인물들이 잘못된 세뇌를 피하고 자라서 대한민국의 위기를 구할것으로 믿는다

김홍알 2006-12-26 14:48:26
기자회견도 그렇고
사실로 밝혀진 일이고
미국의 핵문제 6자회담에서 마카오의 동결된 자금이 풀리면 김정일은
북한군대를 먹일 특수한 물품을구입할 기회가되고-
외화벌이로 연명하던 시대를 지나 이른바-미사일로 뭉칫돈을 벌어들이는
핵으로 위협하는 무기장사로 등극하고 만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주사파들의 몸부림이 슬슬 시작될것이고-
반공사상과 북한에대한 잘못된 사상적 뿌리와
공산주의보다 더악랄한 독재국가의 세뇌적인 교육을받은 -현 세대들의 대다수가
정치판의 혐오감을 모아서 주적인 북한에 동조할 우려가 농후하다.

광주사태를 재조명하기 보다는 김대중의 움직임을 관찰하는것이
급한 일이다
그아들들의 조직적인 인맥관리와
유사시에 사태를 맞으면 북쪽군대에 적극동조할 개인적인 인맥을 가진 김홍일-
호남인들의 비웃음을 경험한 터라
조직폭력배들의 비호아래
정치판에서 모은 자금을 관리하며
잡지못할 정권에 속심을 감추고 -북한의 준동에 남한에서의 적극동조채비를 감시하여야할것이다.
탈북자들의 입에서 나오는말이 이미 김대중선생은 김정일이가 보장하는
고려연방제의 남한측 수괴이다.

방북후의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김정일의 고려연방제를 침이 마르도록 주장한 인물도 역시 김대중이다.

한마디로 -북한가서 -정일이의 후광을 빌려온 듯한 인물 김대중-
당신은 누구요?
그 정감록에서 말한 호남인이오?
아니면 호남인들의 배경을 업은 북한의 고첩이오?
본인도 모르게 고정간첩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늙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