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합창에 대한 그리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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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합창에 대한 그리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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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그리움에~불러보는~ 아픈 내 가슴속에 맺힌 그녀~

어스름이 찾아오면 서너 명씩 학교 잔디밭에 둘러않아, 어설픈 기타소리에 맞추어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대학 1학년 시절.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엔 유난히 잘 빠지곤 했던 나는,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모임에는 여간해선 빠지지 않았다. 동아리에서든 친구들 모임이든 기타소리가 울려 퍼지면, 나는 낄 수 있는 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곤 했다.

‘연가’ 그 노래를 참 많이 불렀던 것 같다. 그때는 가사의 뜻도 생각하지 않고 불렀었다. 막연히 그 노래의 멜로디가 좋았고, 밤하늘에 내 목소리를 울려내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느낌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지치지도 않으며, 꼭 같은 그 노래를 그렇게 열심히 불러댔던가 보다.

물론 그 노래 외에도 아침이슬이니 상록수니 하는 노래들이 있었다.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새로운 노래들이 자꾸 나왔다. 그래서보다 학교 교정을 뒤덮는 노래들은 점차 보다 생경한 가사와 강한 어조의 노래들로 서서히 바뀌어 가곤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그 시절을 추억으로 떠올릴 때는, 역시 서정성이 강한 노래들이 강한 느낌으로 떠오른다.

밤하늘이 내려준 어둠의 장막아래 친구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를 때, 가끔씩 기분 나쁜 경우가 있었다. 합창반원들이 수 십 명씩 모여서 노래를 불러대면, 그 우렁찬 소리에 우리노래는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멋진 노래에 박수를 칠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합창반원들의 거만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자리를 털고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차츰 생활이 바빠졌고, 음악은 조금씩 내 삶에서 멀어져 갔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에는 어려운대로, 생활이 안정될 땐 다른 방식으로 음악은 나에게 항상 위로와 용기를 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처럼 음악이 내 삶에 가까이 있지는 못했었다. 그때처럼 그렇게 마음껏 음악을 불러보는 여유로운 순간은, 그 후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노래방의 곡들 중에 그 당시 열심히 불러대던 노래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후 가끔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난 후, 노래방을 찾아 그 시절의 옛 노래들을 불러보기도 했었다. 그러면 왠지 철지난 노래에서는 그 시절의 그 희망과 패기보다는, 청승맞은 느낌 같은 것들이 느껴지곤 했었다. 그렇게 모든 것에는 그에 맞는 시기가 있는 모양이다.

요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한 후, 어찌어찌하여 작은 교회의 성가대에 않게 되었다. 긴 세월을 돌아서 비로소 다시 음악에 잠겨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같은 음악이라도 듣기만 하는 것과, 서투르지만 자신이 직접 참여를 해서 함께 부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성가대에 참여하게 된 기회를 참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성가대가 수련회를 가자고 했다. 나는 한사코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천성이 내성적인 나는 사람들과 가까이 어울리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면 내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수련회에 참여를 하게 되었었다.

1박 2일의 짧은 수련회의 한번뿐인 밤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식사와 간단한 세미나를 마친 성가대원들은 오순도순 숙소 앞 처마 밑에 모여 않았다. 미리준비를 해왔는지 나눠주는 인쇄물에는 바로 대학시절에 부르던 ‘연가’와 그런 비슷한 노래들의 노랫말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밤을 새우며 다시금 옛날 그 노래들을 불렀다. 성가대원의 기타반주에 맞추어서.

대부분의 단원들의 나이가 40줄, 50줄인 약간 고령화된 우리 성가대는, 내가 좋아하던 그 노래들을 나만큼이나 잘 기억하고 있었고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결국 그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듯이, 그렇게 밤을 보낸 우리는 이젠 전과는 조금은 다를 것이다.

예전 교정을 주름잡던 합창반원의 우렁찬 목소리처럼 무례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시골교회 성가대의 빈약하지도 우렁차지도 않은 그 소리에 나도 함께 목소리를 담았다. 나는 가슴 한쪽이 시원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동안 잊었던 듯 하면서도, 실은 잊지 못하고 있던 그 추억과 미련을, 이제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풀어버린 것이다.

이젠 그 합창반원들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을 털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요즘은 자꾸만 나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것들을 하나 둘씩 풀어주면서 살아간다. 별로 크지도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던 과거의 앙금들. 안타까움에 대한 기억들. 약간의 미련들. 나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벗기고 조금씩 더 편한 마음이 되어간다. 다음에는 또 무엇을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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