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고참은 영원한 고참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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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고참은 영원한 고참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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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고참과 말 터고 지내라는 아내의 순수한 배려

젊음의 허리를 덥썩 베어 먹는 것 같은, 그래서 들어 가기가 더욱 겁나는 곳인 군대를 필자 또한 무사히 다녀왔다. 잦은 외박과 연고지 배정이라는 장점으로 2년 6개월을 마다않고 공군에 근무했었다.

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공군 출신이라고 하면 활주로 청소나 참새 쫓다가 왔냐고 그러시지만 부대 개념이 아닌 기지 개념인 공군은 기지 안에서 작은 사회를 만들어 자체 생활을 함으로써 항공기 관련 업무 뿐만 아니라 시설대, 보급대, 지원대 등 그 특기가 무수하다.

그 중 필자는 취사병으로 근무했으며 전투기 점검이나 무기 장착 등의 일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지지 않는 자부심과 추억이 남아 있다. 자부심이라 함은 사병들을 위해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겼다는 것도 있지만 그 더럽고 험한 일을 무사히 해냈다는 것이요, 추억은 그래서 더 깊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혹, 특수부대 출신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지만, 나름의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누구의 평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므로 소신있게 필자의 경험을 밝히는 것이다.

아무튼 필자가 근무했던 식당이 기지 외곽에 있어서 자체 생활을 해왔던 터라 같이 식당에 근무했었던 사병들과 남다른 우정을 갖고 있다. 2년 여를 함께 일하고, 밥 먹고, 잠 자고 했으니 학교 친구와는 또 다른 끈끈함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각자 제대를 한 후에도 일년에 두번씩은 꼭 정기 모임을 가졌었다. 대부분이 아직 학생이어서 여름 방학, 겨울 방학 그렇게 시간을 내어서 회포를 풀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서울로 올라와서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최근 1년 넘게 모임에 참가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술자리가 참으로 그리웠다. 마침 부산에 계시는 고참 한분이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오신다니 기꺼이 우리집 방 한 칸을 비워드릴테니 묵고 가라고 전하였다.

필자보다 6개월 빨리 입대한 그 고참은 나이가 필자와 같다. 그런데 필자의 아내는 나이가 호적상 우리보다 1살이 더 많다. 그러니 아내로서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뜬금없이 '그만 말 터고 지내' 그러는 것이다.

또한 군에 있을 때 그 고참과의 안 좋은 기억들을 아내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주말에 오기로 한 고참을 달갑지 않게 여길까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밤 늦게 도착한 그 고참과 집에서 저녁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는데 걱정했던 대로 아내의 그 순수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나이도 같은데 그만 말 터도 되겠네요?"
"옛날에 우리 신랑이 꼽창(꼬장) 많이 당했다고 하던데, 왜 그랬어요?"

난 어이가 없어 아내와 고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노력했고, 그 고참이 무안해 할까봐 아내에게 '원래 공군 기강이 빡세다'고 한마디 해줌으로써 웃으며 그 난감한 상황을 넘겨야 했다.

물론 아내 말처럼 나이도 같고 하니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 집단 속에서 선배로서 믿고 의지하며 따랐던 그 기억들로 인해 오히려 그렇게 말 터고 지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일할 땐 고참한테 혼도 많이 나고, 욕도 먹고 그랬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은 추억이 되고 술자리에서 항상 맛있는 안주가 될 수 있음에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물론 다시 돌아가라면 그럴 자신은 없지만.

군에서의 자살 충동이나,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신병 때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 짧은 그 순간을 지혜롭게 견뎌내지 못하면 나머지 군생활도 힘들어지고, 또한 평생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필자 또한 쉴 틈도 주지 않고 일을 부려먹는 고참이 너무나 징그러워 어떻게 여길 벗어날 수 있을까만 궁리하다 어느새 그 환경에 적응되어 고참과 친해지고 후임병을 다루고 하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저 끝에서 그 순간을 관조하노라면 정말 짧은 순간임을 깨닫는다.

아내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이런 기억들로 인해 고참과 말 터고 지내라는 그 순수한 질문은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으로 끝내야겠다. 아내가 시집살이 하면서 느꼈던 그 인생의 경험을 필자가 다 이해할 수 없듯이 아내 또한 필자의 소중한 군생활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는 시집살이에 대한 기억을 잘 꺼내려 들지 않지만 필자는 술만 먹으면 그때 그 무모하고, 열정만 가득할 때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생생히 떠올리긴 싫지만 간간히 추억하고 싶은 곳, 바로 군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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