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녹고 나면 잠시 감춰졌던 부정적인 부분들이 다시 나타나는 반면 비는 그러함들을 일거에 죄 쓸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눈을 싫어하는 원초적인 곡절이 또 있습니다. 눈만 내렸다손치면 제가 10대 후반 때의 어떤 편린이 아픔으로 성큼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일찍이 아내(필자의 생모)를 잃으셨던 선친께서는 일상의 외로움과 생활의 고달픔을 술에 의지하며 사셨습니다. 선친께서는 술을 안 드실 때면 선비도 그렇게 젊잖은 선비가 없었는데 그러나 일단 술을 한 번 드셨다 하면 보름 여 이상이나 식음을 전폐한 채 폭음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항상 지독한 가난이 떠나질 않고 머물렀습니다. 당시엔 통행금지가 존재했었지만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술 독촉을 하시는 선친께 술을 사다드리지 않으면 당장에 제가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돈이라도 많으면 미리 술을 사다놓고 드시면 되었겠지만 끼니조차도 변변치 않았던 우리집에 그런 돈이 있을 리는 만무였지요.
그래서 가게에서 사오는 술 역시도 늘상 외상이 태반이었기에 가겟집 주인은 우리 부자(父子)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역시도 선친께서는 자정이 넘어 만취하여 귀가하셨음에도 다시금 술을 사오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선친의 습관적인 주벽에 넌더리가 난 저는 그래서 처음으로 선친께 반항을 했고 격분한 나머지 무작정 상경 열차에 올랐습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차창에 부딪혔습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저 수많은 눈(雪)송이 중에 하나로서 섞여 있는 실로 미천한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자학에 그만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낯 설고 물 선 서울에서 저 같은 시골촌놈이 살기엔 참으로 버거웠습니다. 막일(노동)이 너무도 힘든 탓도 있었지만 홀아비인 가련한 아버지가 눈에 밟혀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자존심을 벗어내고 보름 만에 낙향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던 날에도 눈은 하염없이 쏟아졌지요. 엄동설한임에도 아버지께서는 그날도 동구 밖에서 저를 기다리셨다며 "이 시간부로 술을 끊을 테니 너도 다시는 집을 나가지 마라!"며 꺼이꺼이 통곡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오열해야 했지요. 그러나 '작심삼일'의 주당이셨던 아버지께서는 폭음이 원인이 되어 벌써 오래 전에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혹자는 눈이 내리면 풍성한 즐거움과 추억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면 저는 늘 그렇게 슬픕니다. 눈 속에는 제 아픈 과거의 잔영이 잔뜩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현듯 선친이 다시금 그리워집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