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이나, 작년의 추석을 생각할 때 올해의 추석은 분명 형편이 어렵습니다. 7년 전부터 학생인 저야 경제적 형편 따윌 논할 처지가 못되지만 이번엔 아내마저 수입이 없는 터라 고향 내려갈 때 손이 가벼울까봐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번 주말 아르바이트로 벌어 놓은 돈 십만원이 전부입니다. 그나마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사야 할 품목들을 정리해 봅니다. 대구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혼자 계시는 큰이모까지 세 분에 경북 왜관에 계시는 장인어른, 장모님, 처백부님, 처남까지 일곱 사람의 몫을 챙겨야 합니다.
아내의 수입이 있고, 은행에 잔고가 남아 있을 때에는 앞뒤 생각치 않고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것들로 준비를 했었습니다. 부모님들께 농사 지은 과실들을 늘 받아먹기만 하는 우리로서는 일년에 두번이라도 보답을 해 드리고 싶은지라 늘 신경을 써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영 여의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양말 셋트였습니다. 요즘 할인점에서는 포장까지 되어 있는 선물셋트를 제 키만큼 쌓아두고는 판매를 합니다. 열개를 사면 하나를 더 주기도 합니다. 그 중에 제일 실용적인 것이 양말이다 싶었습니다. 가격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3천원부터 9천원까지 만원이 넘지 않습니다.
처남은 덩치가 방대한지라(?) 팬티가 자꾸 터진다 합니다. 그래서 할인점 직원에게 가장 큰 사이즈의 속옷을 주문했습니다. 저는 105사이즈 이상은 들어보지도 입어보지도 못했던 터라 혹시나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120사이즈 속옷 몇 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희는 좋다하고는 팬티 두 장을 처남 선물로 샀습니다.
혼자 계시는 큰이모님은 아무래도 생필품이 낫겠다 싶어 비누랑, 치약, 샴푸, 주방세제가 한꺼번에 들어있는 생활용품 선물셋트를 준비했습니다. 이것도 만원이 넘질 않습니다.
양말 셋트 다섯 개와 팬티 두장, 생활용품 셋트 하나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그림 동화책을 하나 사들고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계산대까지 이르는 동안 곳곳에 값비싼 선물들이 즐비합니다.
수삼, 더덕, 벌꿀, 양주, 한우고기 등 가격에 동그라미가 잔뜩 붙은 것들이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엔 저희의 구매능력이 터무니 없이 낮습니다. '그림의 떡'들을 실컷 감상하며 지나가는데 발걸음을 붙잡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한과셋트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사시는 장모님은 한과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명절때는 꼭 한과셋트를 준비했었습니다. 이번 추석엔 양말로 대신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습니다. 가격은 3만원부터 10만원이 넘는 것 까지 다양합니다. 아내와 아무 말없이 가격만 확인한 후 슬금슬금 그곳을 지나갑니다.
계산대가 다가올 때쯤 과자류를 진열해 놓은 곳에 3천원짜리 한과 봉지가 눈에 띕니다. 맛동산봉지와 비슷한 데다가 찹쌀유과를 잔뜩 담은 것이 맛있게 보입니다. 아내는 두봉지를 집어 카트에 담습니다.
그렇게 해서 쓴 돈이 8만원이 조금 안 됩니다. 비닐봉지 두개에 나눠 담아 보니 꽉 찹니다. 잠들은 딸아이를 아내가 업고 저는 짐을 양손에 나눠 쥐었습니다. 무게는 별로 나가지 않지만 부피가 있어서인지 기분이 좋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몇 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행위가 기적이라면 저희 부부가 이렇게 명절 선물까지 챙기며 살아가는 것도 기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려울수록 서로 나누고 의지하는 마음이 그 어느 고급 양주보다 값비싸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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