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이곳 교동에 왔을 때, 감나무를 보고서 무척 좋아했습니다. 우리 땅에 있으니까 '내꺼' 라고 생각를 했거든요. 가을이 되면 잘 익을 놈을 골라서 아이들하고 따먹을 생각도 했고, 추석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나무 밑에서 '호박같이 둥근달'을 구경할 마음도 먹었습니다.
1. 그런데 나무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일 주일도 안 돼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원래 주인이 나타난 겁니다. 바로 우리 집 옆에 사시는 황씨 할아버지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리로 치면 우리 집이 훨씬 가깝습니다. 우리 집 벽에서 세 걸음도 안되거든요. 그에 비해서 황씨 할아버지네 집은 감나무와 15-20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네 것이라고 하길래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다른 분들이 "원래 그 감나무는 우리 꺼였다"라고 계속 말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고추밭이었습니다. 그 고추밭 주인이 "이건 우리 거야"하면서 감을 따 먹었다지요.
그런데 그 고추밭 주인이 우리에게 땅을 팔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옆 집에 사시는 황씨 할아버지가 "이 감나무는 우리 꺼야"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웃끼리 나무 하나 가지고 말싸움하기도 멋쩍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내 꺼'라고 고집하면 그냥 내 것이 되는 거였습니다.
그 다음에 7-8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감나무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고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5년 전, 제가 교동에 왔을 때는 이미 황씨 할아버지네 것으로 정해진 뒤였거든요.
2. 결국에 감나무를 차지한 사람은?
그러다가 몇 달 전, 황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집 할머니는 집을 헐고 서울로 이사를 갔습니다. 13년 동안의 장기 독점을 끝내는 순간입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제부터 저 감나무는 내 꺼다" 하고 점찍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치도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의 또 다른 이웃인 김씨 아줌마가 "원래부터 이 감나무는 우리 꺼였어요" 하는 겁니다. 김씨 아줌마네 집하고 감나무의 거리는 4,50m쯤 됩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김씨 아줌마가 이곳에 이사 온 지는 4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김씨 아줌마가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원래는 고추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줌마가 땅을 구입한 뒤에 집을 짓고 사는 거지요.
김씨 아줌마는 "땅을 측량해 봤는데 감나무가 있는 곳까지 자기네 땅으로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황씨 할아버지하고 김씨 아줌마는 초등학교 사제지간입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오늘도 감나무는 말없이 서 있습니다. 새로운 주인이 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늘 그래 왔듯이 언제나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살면 그뿐입니다. 오히려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감나무를 볼 때마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자처해 왔습니다. 그러나 감나무는 주인을 섬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생겨서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또 바뀌게 될 겁니다. 아예 멀리 가서 100년 후 쯤 되면 '주인들' 없는 '감나무'만 남아 있을 겁니다.
3. 인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내꺼' 라고 안심하며 믿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습니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해서 '남의 것'도 아님니다. 그저 하늘이 우리들 각자에게 잠시 맡겨 주신 '귀중품'일 뿐입니다. 인생을 도둑맞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살아야겠습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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