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올라온 후, 동생도 서울에 직장을 잡았다. 우리 형제는 고향을 떠나서 비로소 형제다워졌다. 가끔씩 만나고, 또 가끔 맥주잔도 기울였다. 소주를 좋아하는 나는 동생이 즐겨 마시는 맥주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워낙 속병 때문에 고생을 하는 동생을 위해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었다.
한번은 동생이 만취를 했다. 동생이 술이 세진 않아도 술 마셨다고 헛소리하는 놈은 아닌데, 그날은 마음이 많이 심란한 듯했다. “형. 나 이렇게 살기는 싫습니다.” 동생은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은데. 도대체 뭐가 불만인데.” 나는 그런 꼭 막힌 소리를 했다. “형은 하루하루 이렇게 답답하게 사는 게 갑갑하지 않습니까!” 동생은 비명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사는 게 어때서, 이 놈이 배가 불렀구나.” 나는 그렇게 또 동생을 힐난했다. 사실을 나도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꼭 같은 불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살아가고 있는데 내 아픈 곳을 찌르는 동생의 소리가 나를 고문하는 것 같이 들렸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남들 직장 구하기 힘들어하는데, 그만한 직장에서 그렇게 살면 되지 더 이상 뭐가 불만이야.”
“형은 나를 몰라서 그래. 나는 답답하단 말이야. 나는 자유롭고 싶다고.” 동생은 직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국악과 친구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동생은 직장초입 생활을 많이 힘들어했다. 더구나 당시는 IMF시기였다. 누구에겐들 힘들지 않은 시기였겠는가. “너만 답답한 줄 알아.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물어봐라. 너 행복한가. 행복해서 미치겠는가.”
나는 점점 더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젠 동생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서 숨죽이던 울음이 그런 식으로 엉뚱하게 터져 나온 것이었다.
"자유? 그래 나도 자유롭고 싶다. 자유는 무엇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야. ‘무엇을 향한 자유’란 걸 생각해 보았냐. 그래 나도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내 하루하루를 지겹게 살아간다. 자유를 위해. 가족과 하루를 지키며 살아가는 자유를 위해.”
“나는 지금이 싫단 말이야.” 동생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절규를 했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떡하란 말이냐. 그럼 직장 그만두고 자유롭게 잘 살아봐라. 그럼 자유롭겠니? 그렇게 자유롭고 싶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 철든 이후 한번도 싸워본 기억이 없는 나는 그날 호프집을 나와 골목에서 동생과 주먹으로 치고 박았었다.
취중에도 나보다 훨씬 힘이 센 동생이 내 주먹을 그저 막아내기만 하고, 때리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친정나들이를 하러간 집으로 돌아가고, 동생은 독신자 숙소로 돌아갔다. 후회와 함께 왠지 모르는 후련함이 가슴을 스치고 있었다. 그날 내가 동생을 훈계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비명을 지른 것은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 그래 나는 정말로 그렇게 비명을 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새벽 무렵 전화를 했다. 동생도 자지 않고 있었다. 나는 기어 들어가는 말로 이야기했다. “미-안-하다...” 전화 저편에서 동생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오늘 무슨 일 있었습니까. 형님이 취하시더니 뭐 착각하시는 것 같네요. 걱정 말고 편히 주무십시오.” 동생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씩씩하게 이야기했다. 동생은 어느새 다시 존댓말로 돌아가 있었다.
일주일 후 동생을 만났다. 얼굴에 멍든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손가락 하나도 불편한 것 같았다. “괜찮니?” 나는 미안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회사에서 뭐 좀 들다가 넘어졌습니다. 졸병이라고 이것저것 잡일만 시켜서….” 동생은 고맙게도 그렇게 대답을 해 주었다.
그때서야 생각해보니 난 동생에게 정을 베푼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늘 동생은 훈계의 대상이었을 뿐,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것처럼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동생을 친구로 받아들였다. 물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무뚝뚝한 형이었을 뿐이지만. 나의 잔소리를 듣던 동생은 어느새 나보다 한층 더 성숙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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