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문제 덩어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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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문제 덩어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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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청산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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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거사 청산의 원칙

1) 과거사 청산은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추적하는 것이 원칙

과거사 청산은 현재의 시점부터 추적하여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맞다. 역사의 특정한 시대를 한정하고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며 의도적인 것은 복수극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사망자만 400만 명을 내고 1000만 명에 가까운 6.25 동란이라는 끔찍한 역사가 있다. 이 역사를 소재로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작가로서는 드물게 거대재산을 모은 부르주아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치적으로 자신이 다루었던 사실인 6.25 동란의 원흉들과 그 자손들에 대한 과거사를 정돈하자고 해야 논리가 맞는다. 자신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래는 6.25 동란이라는 비극적 과거사를 건너뛰고 김일성이 주창해왔던 친일과거사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제 시대에 부역을 했던지 친일을 했던지 친일과 관련이 있는 행위자라면 최소 30세 이상은 되었을 일이다. 1945년을 기준으로 하여 당시에 30살 이상자라면 현재 90살이 가까운 노령이거나 아니면 별세했을 터이다. 또 일제치하 36년이라면 당시의 평균수명이 60세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30세 이상의 연령층은 이미 돌아가신 고혼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아무리 막되어 먹은 후레자식이라고 해도 별세한 어른들에 대하여는 뒤를 캐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이며 후손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이다. 조정래는 공산주의자라서 한국인의 정서를 뛰어 넘는 것인가? 또 자신들이 해먹을 것은 다 해먹고 남긴 것은 자식들에게 다 남겨 주었을 시점이다. 이제 와서 일제치하에서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먹은 것을 토해 놓으라고 목을 조르는 것인가? 아니면 친일자의 후손들이니 그 이마에 주홍글씨라도 써 넣자고 하는 짓인가.

나는 확언하건데, 민족문제연구소 측과 조정래는 자신들이 친북자라는 사실에 대한 부담을 친일청산작업이라는 묘한 술수를 통해 친북자라는 부담과 쏠리는 눈길을 피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술책이 사실상은 자신들에게 더 날카로운 복수의 칼날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자신들이 행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인 촌철살인으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식들의 목에 겨눠질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한 일이다.

분명히 말하건 데 역사에 대한 평가나 비판은 좌우 수평추가 맞아야 하며 수평추가 맞는 역사가들이나 역사에 대해 비판하거나 평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 일개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조정래와 임헌영은 지금 정도를 한참 벗어나 있다.

2) 김대중(1924년생), 박현채(1934년생), 임헌영(1941년생), 조정래(1943년생)는 사상적 동지

임헌영과 조정래의 뒷심은 김대중에게서 나왔다. 김대중은 박현채(1995년 작고)와 밀접하게 지냈으며 박현채가 써준 경제학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까지 했다. 이 사실에 대해 박현채와 호형호제했던 임헌영과 조정래가 모를 리 없다. 이들은 침묵하는 대신 대통령인 김대중으로부터 엄청난 반대급부를 받았다. 임헌영과 조정래의 위치를 격상시켜 준 일과 임헌영과 조정래가 관여하고 있는 민족작가회의의 고은과 조정래를 노벨문학상 후보로 적극 지원해 준 점이다. 이로보건데 박현채 라인은 김대중과 밀착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조정래는 1차 남북정상회담에 고은과 함께 한국 작가 대표의 신분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김대중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김영삼 정부의 말기에 터진 IMF 사건을 빌미로 소위 민주화 세력들의 추대에 의해 전 국민에게 선언했던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하여 집권 했다. 은퇴 선언 번복은 김대중이 식언자라는 뜻이다.

자신이 선언한 말을 다시 집어삼키는 정도의 윤리를 가진 식언자에게 도덕과 윤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기왕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어쩌겠는가. 국민은 대통령이 된 식언자 김대중에게 최소한의 공의와 도덕과 윤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노벨평화상 수상에 야욕을 품고 전 국민을 기만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하는 대가로 5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해 달라는 김정일의 요구에 따라 정보기관인 국정원을 통해 5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했다. 김대중은 이 돈이 핵무장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으로 지급해 주었다. 따라서 김대중은 역적이다. 역적을 존경하고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자는 똑 같은 역적의 무리일 뿐이다. 김대중으로 인해 전 국민은 핵무장을 한 북한의 핵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3)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인 조정래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국가 지원금이 삭감되자 모금을 통해 5억 원을 모금하고 그것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발간 고문으로 있는 조정래는 총 30억 원이 소요되는 작업이라 했다. 국가를 대신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민족연구소에 지원해 주지 않는 것이 불만스러우나 모금을 해서라도 출간하겠다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자를 색출하여 명단을 공포하는 모습을 보았다. 과거 북한의 인민군이 남한에 쳐내려와 국군 가족들과 경찰 가족들을 색출해내어 인민 재판할 때 판결문을 읽는 모습과 동일하다. 곧 총구에서 총이 불을 뿜을 것 같이 섬뜩하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 죽이기”와 그 인맥들에 대한 처형이다.

▶ 묘한 발표 시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자 명단을 발표한 발표 시기는 상당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 날은 76년 전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당시 일본국이었던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날이다.

이날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최종 수록될 명단 1,68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2005년 8월 1차 3,090명에 이어 이번 2차 명단 발표에서는 1차 명단 수록자 포함 총 4,776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이번 명단에서는 1차 발표에서 거론된 박정희 前대통령,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과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를 비롯해 김활란, 홍난파, 애국가 작곡자인 안익태와 작사자 윤치호, 아동문학가로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선구자’작사자로 시인인 윤해영, 월북무용가 최승희, 조선독립신문 사장으로 건국훈장독립장을 받은 윤익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친조부 현준호, 서울대학교 상대 교수로 학장을 역임한 고승제,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현상윤, 해방 이후 6선 의원까지 역임한 서범석,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진의종, 신현확 전 국무총리 등도 포함됐다.

연구소와 편찬위원회는 앞으로 60일간 유족 또는 명단에 오른 친일인사 관련 기념사업회의 이의 제기를 받고 학계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다. 친일인명사전은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 7권으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 인명편 3권이 8월말 우선 발간된다. 편찬 사업은 2015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4권, 식민지통치기구사전 1권, 자료집 4권, 백서 1권 등 총 17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완간할 계획이라고 발표되었다.

▶ 신기남 선친 신상묵은 포함되고 김희선 선친 김일련은 빠져

한편, 2005년 8월 1차 명단 발표당시, 논란이 됐던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선친으로 헌병오장으로 복무하며 항일운동가를 취조(신동아 2004년10월호 참조)했던 신상묵은 명단에 들어간 반면, 독립운동사 자손을 자랑했던 김희선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선친으로 독립군을 잡던 만주국특무경찰간부로 근무(월간조선 2006년12월호)했던 김일련은 명단에서 빠졌다.

또, 일제황군헌병오장출신으로 알려진 이미경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부친인 이봉권,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부친으로 일제시대 법원서기를 지낸 이홍규도 명단에 빠졌으며, 일제시대 농협서기를 지낸 정동영 전 민주당대선후보, 훈도를 지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선친 등도 명단에 없다.

이에, 발표명단을 본 모씨는 “기준자체가 필요 없는 기준으로 국민들 간에 혼란과 분란만 자초하는 친일인사명단을 발표하고 돈 들여 친일인명사전을 만들려는 의도를 모르겠다”며 “역사는 굴러가게 돼 있고, 일제강점시대에 어쨌거나 생명 부지했기에 우리가 있는데 이제와 ‘너 잘못했다’고 따진들 무엇 하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굳이 과거를 청산하려면 친일행각이 뚜렷하게 밝혀진 친일인사만을 대상으로 해야 마땅하다”며 “친일인명사전편찬 등은 국민들 간 혼란과 분열만 야기 시키는 행위로 없어져야할 병폐다”라고 주장했다. (뉴스타운, 송인웅 대기자, 2008-04-30)

조정래는 명예스럽게도 이 단체의 “발간 고문”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소장인 임헌영을 보좌하여 책을 만들었다.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는 친북사상을 민주주의로 위장하여 전파하는 김일성교의 전도사로 살아왔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정죄함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세습까지 하며 영원히 독재를 하고 있는 세계적인 독재자 김일성 부자에 대하여는 독재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영웅으로 묘사하며 충성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이중적인 양태는 이들이 김정일의 적화통일을 준비해 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육이오 전쟁을 일으킨 살인귀 김일성이 남침의 명목으로 제시했던 명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친일파 제거이며 둘째는 미제국주의로 부터의 해방을 통한 통일이었다. 육이오 전쟁의 참패로 김일성은 고성에 있는 김일성 별장과 서해5도를 잃고 김일성의 명분은 거짓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김일성은 소련의 하수인으로서 한반도를 적화 통일시켜 소련에 바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을 뿐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박현채를 비롯한 임헌영, 조정래는 각각 문단과 언론을 통해 김일성의 유지를 착실히 받들었다. 미군철수와 반공법 철폐, 동포애를 빙자한 북한 지원을 외쳐댔다. 백낙청, 고은 등은 언론과 문단을 통해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었고 천하의 사기꾼인 김대중은 대통령까지 되어 김일성 부자의 소원인 핵무장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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