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인물탐구①] 최대호 안양시장, 교육 현장에서 ‘징검다리 4선’까지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병철 인물탐구①] 최대호 안양시장, 교육 현장에서 ‘징검다리 4선’까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남에서 안양으로…교육사업가 거쳐 지방행정 책임자로
-2007년 첫 도전·2010년 당선·2014년 낙선·2018년 복귀
-두 번의 선거 패배에도 안양 지켜…19년 정치 여정의 중심은 시민
최대호 안양시장

[뉴스타운/김병철 선임기자]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일과 학업을 병행한 청년은 안양에서 교육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시민사회 활동을 거쳐 2007년 처음 안양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낙선했다. 2010년 민선 5기 시장에 당선됐고, 2014년 재선에 실패한 뒤 2018년 다시 시청으로 돌아왔다. 이후 2022년과 2026년 연이어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최대호 안양시장의 이력은 승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두 번의 선거 패배와 한 차례의 시정 공백을 지나 네 차례 안양시정을 맡았다. 현재 민선 5·7·8·9기 시장을 지낸 ‘징검다리 4선’ 단체장이다.

이번 인물탐구에서는 민선 9기 공약을 다루지 않는다. 공약과 정책은 현재 연재 중인 ‘안양 민선 9기 공약 대해부’에서 별도로 살펴본다. 여기서는 최대호가 교육 현장에서 정치로 이동한 과정과 패배 이후 다시 시민 앞에 서기까지 걸어온 길에 집중한다.

◇ 해남에서 시작한 배움

최 시장은 1958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안양시가 공개한 공식 약력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 학사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가 기재돼 있다. 방송대 전국총동문회장을 지냈으며 대학 연구와 교육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그의 학업 과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일과 공부를 함께 이어갔다는 점이다. 방송대는 직장과 생업을 유지하면서 고등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온 국립대학이다. 최 시장 역시 경제학을 공부한 뒤 교육학 연구로 영역을 넓혔다.

경제학과 교육학은 그의 이후 경력을 설명하는 두 축이다. 경제학이 조직과 자원의 흐름을 살피는 학문이라면 교육학은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다룬다. 최 시장은 이러한 학업을 바탕으로 교육 현장에 들어갔다.

◇ 안양에서 교육사업가로

최 시장은 1996년 안양 평촌에 교연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학원은 필탑학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학생의 학업과 진로, 학부모의 기대와 고민을 가까이서 접하며 교육사업가로 활동했다.

학원 운영과 지방행정은 성격이 다르다. 교육기관은 학생과 학부모라는 비교적 분명한 대상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지방정부는 복지·교통·주거·경제·안전·문화 등 여러 분야를 동시에 책임져야 한다. 예산과 법령, 행정절차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다만 사람을 만나고 조직을 운영한 경험은 정치에 입문하는 토대가 됐다. 그는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와 한국인성교육원 등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사랑의 집수리와 난치병 어린이 돕기 등 시민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교육사업의 범위를 넘어 지역의 생활 문제와 시민의 어려움을 접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대호의 정치 입문은 교육 현장과 시민사회에서 쌓은 경험을 지방행정으로 옮기려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교육사업에서의 성취가 곧바로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 2007년 첫 도전과 패배

최 시장은 2007년 12월 안양시장 재선거에 출마했다. 첫 도전의 결과는 낙선이었다. 교육사업가와 시민사회 활동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시민에게 지방정부를 맡길 준비가 된 정치인이라는 평가까지 받지는 못했다.

첫 선거 패배 뒤 다른 지역이나 다른 자리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양에 남았다. 지역활동을 이어가며 다시 시장 선거를 준비했다. 3년 뒤인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해 민선 5기 안양시장에 당선됐다.

2007년 패배와 2010년 당선 사이의 시간은 최대호가 교육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전환한 과정이었다. 지역의 요구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한 차례의 실패 뒤 같은 자리에서 시민의 판단을 다시 받았다는 점은 이후 그의 정치 여정에서도 반복된다.

◇ 교육사업가에서 시장으로

2010년 시장 취임 이후 최 시장이 맡아야 할 책임은 이전과 달라졌다. 공직조직을 운영하면서 예산을 편성하고 시의회와 협의해야 했다. 주민 민원을 처리하고 중앙정부와 경기도, 관계기관을 상대로 안양의 현안을 설명해야 했다.

교육기관은 경영자의 판단에 따라 비교적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지방정부의 결정은 법령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시장의 의지만으로 추진할 수 없는 사업도 많다. 지방의회의 예산 심의와 의결이 필요하고, 국가사업이나 광역사업은 중앙정부와 경기도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학원 운영 경력과 시장 직무를 구분하기 위한 조치도 확인된다. 안양시가 당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최 시장은 자신이 보유했던 필탑학원 주식 140만 주를 2010년 12월 29일 7억 원에 처분했다고 신고했다. 교육사업가에서 지방정부 책임자로 위치가 바뀌면서 개인 사업과 공직을 구분한 것이다.

◇ 2014년 낙선, 다시 찾아온 공백

최 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첫 출마자의 낙선과 현직 시장의 낙선은 의미가 다르다. 첫 선거가 후보자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라면 현직 시장이 치르는 선거에는 재임 기록에 대한 평가가 함께 반영된다.

그는 한 차례 임기를 마치고 안양시청을 떠났다. 2007년에 이어 두 번째 선거 패배였다. 정치적 상승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시장직을 맡은 뒤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경험까지 안게 됐다.

낙선 이후에도 지역정치 활동은 계속됐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안양동안을 지역위원장을 맡았고, 2018년 다시 안양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2014년 패배 이후 4년 만의 재도전이었다.

◇ 2018년 복귀, 이어진 시민의 선택

최 시장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선 7기 안양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 시청을 떠난 뒤 4년 만의 복귀였다. 이후 2022년 민선 8기, 2026년 민선 9기까지 연이어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의 정치 이력은 ‘4선’이라는 숫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2010년 첫 당선 뒤 2014년 낙선했고, 2018년 다시 돌아왔다는 점에서 연속 4선과는 다르다. ‘징검다리 4선’이라는 표현이 붙는 이유다.

최대호를 설명하는 핵심은 패배 이후의 선택이다. 2007년 첫 도전에서 패했을 때도, 2014년 시장직을 잃었을 때도 정치적 기반을 안양에 뒀다. 같은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다시 시민의 판단을 구했다.

◇ 박지원에게서 찾는 실용의 시선

최대호의 여정을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시선으로 읽어볼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물의 성향을 살펴보기 위한 비교의 틀이다.

박지원은 기존 관념에 머물지 않고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중국의 문물과 기술을 살피고 이를 조선 사회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명분보다 실제 생활을 바꾸는 문제에 관심을 뒀다.

최대호 역시 교육학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교육기관을 운영했다. 이후 시민사회와 정치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교육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지방행정에 적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실용을 중시하는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실용이라는 표현이 정책의 성과를 대신할 수는 없다. 행정은 의도보다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사업이 실제로 완료됐는지, 투입된 예산에 맞는 효과가 나타났는지, 시민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 김중업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기억

최대호를 안양이라는 도시와 연결해 살펴볼 때 건축가 김중업도 빼놓기 어렵다. 김중업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안양예술공원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그가 설계한 옛 유유산업 공장 건물을 활용한 공간이다.

최대호와 김중업 사이에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김중업이 건축으로 도시의 기억을 남겼다면 시장은 기존 공간을 보존하고 새로운 기능을 더해 도시의 다음 모습을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옛 산업시설이 건축박물관과 문화공간으로 바뀐 과정은 도시재생이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세우는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도시가 지닌 기억을 보존하면서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것도 행정의 역할이다.

박지원과 김중업은 이미 사용한 역사 인물들과 겹치지 않는다. 박지원은 현실을 바라보는 실용의 시선, 김중업은 도시의 기억과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최대호를 읽는 연결점이 된다. 이는 업적의 크기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행정 성향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이다.

김병철 선임기자<br>
김병철 선임기자

◇ 19년 동안 이어진 안양 정치

최 시장이 처음 안양시장 선거에 출마한 2007년부터 네 번째 당선을 이룬 2026년까지 19년이 흘렀다. 이 기간 그의 정치 활동 중심에는 안양이 있었다.

교육사업가로 지역에 뿌리를 내렸고 첫 낙선 뒤에도 안양을 떠나지 않았다. 시장직을 잃은 뒤에도 지역위원장을 맡아 활동했고 다시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패배와 복귀를 거치면서 지역과의 관계를 이어온 지속성이 최대호의 정치 여정을 설명하는 분명한 특징이다.

장기 재임은 경험을 쌓게 하지만 책임의 범위도 넓힌다. 네 차례 당선은 시민이 여러 차례 기회를 부여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시장이 결정한 사업과 예산, 행정의 결과에 대해 더 무거운 설명 책임을 요구한다.

정책의 이름이나 선언만으로 인물을 평가할 수는 없다. 어떤 문제를 발견했고, 어떤 결정을 내렸으며, 그 결과가 시민의 삶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야 한다. 완료된 사업과 추진 중인 사업, 계획에 머문 사업도 구분해야 한다.

최대호는 교육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이동했고 두 번의 선거 패배를 거쳐 네 차례 안양시정을 맡았다. 그의 강점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실패 뒤에도 지역에 남아 다시 시민의 판단을 구했다는 데 있다.

인물탐구의 목적은 정치인을 미화하거나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선택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이르렀는지를 공식 기록에 따라 정리하는 일이다. 최대호를 이해하는 첫 출발점은 민선 9기 공약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시작해 패배와 복귀를 거듭하며 안양을 정치적 삶의 중심에 둔 과정이다.

기자메모/ 최대호 시장의 이력에서 주목할 부분은 네 차례 당선만이 아니다. 2007년과 2014년 두 번의 패배 뒤에도 안양에서 다시 시작했다. 다만 정치적 지속성과 행정 성과는 같은 말이 아니다. 오래 재임했다는 사실보다 그 기간에 어떤 결정을 내렸고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2편에서는 최대호의 행정 방식을 공식 기록에 따라 확인한다.

본지는 다음 [김병철 인물탐구②]에서 최대호 시장의 일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민선 9기 공약과 중복되지 않도록 민선 5·7·8기 기록을 중심으로 공직조직 운영, 시민 의견 수렴, 현장 확인, 시의회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 방식을 조명한다. 스마트도시와 FC안양도 개별 공약이 아니라 최대호가 장기간 관심을 두고 판단해 온 행정 분야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