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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치한 장로 ⓒ 이화자^^^ | ||
6.25당시 장사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과 동시에 양동 작전이 이루어졌으며 ,LST안에는 학도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LST가 상륙하면서 적의 저항으로 장사해수욕장 백사장에 좌초되어 꼼짝없이 적들의 기관총 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당시 학도병들의 피해는 엄청났다.
거의 다 사망하고 생존자는 몇 명 안되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박장로님께서 그당시 불과 15,6세의 소년으로 무작정 끌려가서 수류탄이 터지는 바람에 오른손과 팔을 다쳤으나 지금처럼 병원이나 보건진료소 같은 시설이 없었으므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상처가 덧나기서 급기야 벌레까지 생길 정도로 악화되어서 무척이나 고생하셨다.
그땐 전부 다 가난했으므로 큰병원이나 약을 쓸 엄두 조차내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둔 상처가 오늘날 보기 흉하게 남아 있으며, 오른손을 잘굽히지 못하는 불편한 상태로 모든 일을 해야만 했다.
워낙 가난했던 집안 사정이었으므로 혹시 오른손을 잘 못 쓴다고 일을 안시켜줄까봐 남보다 더 많이 하고 늦게까지 일해줌으로 " 박장로님" 하면 아- 그 사람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고 정평이 날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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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에서 고추 말리는 박 장로 사모 ⓒ 이화자^^^ | ||
그 당시 막일 하는 사람들은 하루 일당을 받아서 막걸리집에서 막걸리 마시느라 가난의 굴레를 좀체로 벗어나지 못하는걸 눈여겨 보셨던 박장로님께서 아- 이래서는 안되고 뭔가? 보람된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시기 시작하면서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이웃에게 자신은 부자가 아님으로 집을 고쳐준다든지, 농사일을 거들어주는등 자신의 힘으로 할수 있는 일은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며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것이 성경 공부였다고 우리집에 와서 솔직히 고백하셨다. 그 당시는 먹고 살기 바빠서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막상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성경 공부를 하여야 하는데 글씨를 잘 읽지 못하였으므로 누구에게 가르켜주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어서 목사님 말씀 하시는 걸 귀담아 들었다가 집에 와서 대강 그 뜻을 꿰맞춰가면서 성경을 읽으 셨다 하니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고 사셨는가 짐작이 간다.
양성교회를 세우기까지의 이야기는 밤을 세워해도 다 못할 정도 였다. 그러나 젊으신 목사님과 호흡을 맞춰 가면서 농촌지역에 여러가지로 교회 사정이 어려우니 박장로님의 헌신적인 봉사 와 노력으로 교회 살림을 무사히 꾸려 나가시면서 양성교회 건물도 반듯하게 잘 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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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성교회 ⓒ 이화자^^^ | ||
작년에도 급하게 서울을 같이 가야하는데 농사철이라서 사람은 없고 양성리 밭으로 박장로님을 찾아 갔더니 땀을 뻘뻘 흐리면서 일하시는데 어디 같이 가주시라고 감히 말을 못하고 우물 쭈물하고 서있는데, 장로님께서 먼저 가시겠다고 하시니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서 얼굴을 못들 정도 였다.
박장로님 편찬으시다
그러던 박장로님께서 편찬으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단순히 과로를 하셨거나 감기정도인줄 알았는데,농민에게 많이 발생하는 피부암이란 소식을 듣고 달려 가보니 마침 병원에서 퇴원 하셨다 하면서 어깨에서 겨드랑이 안쪽까지의 상처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짓물러 있어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될지 모를 정도였다.
서로 바쁜 일상이라 언제든 마음속에는 박장로님께서는 어떠신지? 늘 궁굼 했었는데, 어제 마침 아침 출근 시간에 박장로님댁에 가 봤다. 마당에 들어서니 사모님께서 붉은 고추를 다듬으시길래 "사모님" "왔능교" "예" "장로님은 좀 어떠신교" "좀 덜 하니더" 하길래 장로님 계신 방을 향해" 장로님"을 부렀더니 좀 얼굴이 부석부석한 것 같았지만 봄에 왔을 때 보다 많이 좋아지셨다.
"편찮으신 데는 좀 어떤교" "약 먹고 치료 받으니 많이 좋아졌심더" 그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박장로님과 우리집과의 관계
박장로님께서는 늘 이맘때나 아니면 좀 늦게나 우리집엘 매년 들리신다. 어떤 때는 햇밤을 가지고 오실 때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밤고구마를 가져 오실 때도 있다.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속에는 언제든지 교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같이 교회 나가지 않겠느냐? 고 하신다. 대대로 유교적인 집안에서 유교 교육을 받고 자랐고, 조상 제사도 지내므로 교회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향교에도 매년 연락이오고 해서 우리집안의 입장을 설명 드리면 언제든 마음이 편안해질 때 교회에 꼭 나오라고 하시고 가신다. 늘 가실때는 우리 집에서 마땅히 드릴 게 없으므로 국화 화분 몇 개를 드린다.
박장로님은 오른손을 잘 못써도 신기하게 오토바이를 잘 타고 다니신다. 해서 오토바이 뒤에 화분을 싣는 것이 내맘에 영 안 놓이기 때문에 내차로 갔다 드린다고 하여도 꼭 당신이 가지고 가신단다.결코 마음이 안놓이므로 반드시 무사히 도착하셨는지? 꼭 전화 드리고 확인해야 만이 마음을 놓을수 있다.
언제나 부지런 하시던 박장로님께서 병환중이시라 집안에만 계시는 것이 안타까워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면서 못들렸던 것이 마음속에 걸렸는데 오늘 건강이 많이 좋아지신 걸 뵈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박장로님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마음으로 기도 드립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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